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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위기관리

군인은 '정권'이 아닌 '국가안보'를 위해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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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03.16 17:53 ㅣ 수정 : 2022.03.17 21:47

군인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게 숙명
명령에 의해 보직된 군인에 대한 평가, 정치적 논리 배제해야 옥석 구분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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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 연합사에서 고별 의장행사시 사열하는 전 합참의장 박한기(학군21기) 대장 모습과 을지연습을 대비해 박 의장과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이 탱고 지휘소에서 한미 연합작전 협조회의를 했던 장면 (사진=국방홍보원)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언연구소장]  필자가 2012년 육군본부 정책실장으로 근무할 때 모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국가안보실 위기관리 비서관으로 오라는 통보였고, 필자는 정권 말기에 청와대에서 호출하는데 가야되냐고 주변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대부분의 선배들은 필자를 아끼는 마음에서 대통령 임기 말기에 비서관으로 들어가면 정권 교체후에 필자의 진로에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니 거부하라는 조언이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고민 속에서 허덕이다가 합동참모본부에 근무하는 후배 J장군의 사무실에 잠깐 들렸을 때 필자는 또 한번의 충격에 빠졌다.

 

그는 정색을 하며 “선배님이 정치군인입니까?”라며 “군인이 국가에서 필요해 보직을 정해주면 단 하루라도 그 보직으로 이동해서 근무하는 것이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아닙니까?”하고 반문했다.

 

그는 대통령의 임기 말기에 비서관으로 들어가면 본인에게 손해라고 조언한 선배들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고 군인이면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J장군의 명쾌한 조언은 쓸데없는 기우에 빠져 고민하던 필자에게 군인으로서 마땅하게 이행해야 할 정도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데 약 4개월로 예상되었던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의 위기관리 비서관 근무는 새롭게 시작되는 18대 박근혜 대통령 정부에서도 연임되어 약 1년 반의 청와대 생활을 하였다. 

 

또한 이것은 새로운 관례가 되어 대통령 교체시의 국가 위기를 고려하여 정권이 바뀐 문재인 정부에서도 위기관리비서관은 차기 정권의 요원들이 숙달될 때까지 연임하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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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대 대통령 [연합뉴스]

 

명령에 의해 중요직책에 보직된 군인은 맡은바 소임을 다하며 국가안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통상 정권이 바뀌면 청와대 비서관들은 전원이 교체된다. 하지만 과거 대통령 교체기에 대구역 가스사고, 숭례문 화재사고, 북한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의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여 필자 재직시부터 위기관리 비서관은 정권이 바뀌어도 유임되는 시스템이 되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장교들은 차기 정권에서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즉 전 정권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고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실천하고 정치개혁을 구현하기 위해 전 정부의 색깔을 지원야 한다는 정치적 의도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단지 순수한 상급부대 명령에 의해 중요 보직에서 소임을 다해 업무를 수행했던 장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필자에게 건전한 조언을 해주었던 J장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정권의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는데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한직으로 보직되어 전전하다가 간신히 준장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청와대 근무시에 국방 및 안보분야를 잘모르는 진보 성향의 비서실 직원에게 항상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설득하고 치열하게 싸웠다고 강조했다. 사실 더 나쁘게도 변질될 정책을 막아내고 지연시킨 자신의 노력을 인정 못하는 실정에 안타까워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보직 명령을 따르며 청와대 등 주요 직책에 보직된 군인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소신껏 국가안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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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장관 송영무(45대), 정경두(46대, 40대 합참의장), 서욱(47대)과 합참의장 이순진(39대), 박한기(41대), 원인철(42대) 장군 (사진=연합뉴스)

 

과오를 평가할 때는 단순한 정치적 논리를 탈피, 정확한 옥석 구분이 필요  

 

지난 2월24일 오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미사일 공격을 하며 침공을 시작했고 많은 도시가 파괴되며 엄청난 민간인들의 피해가 발생하여 국가 존망의 위기에 빠져있다.

 

우리도 과거 정부에서 연평해전이 벌어져 많은 군인들이 전사해도 대통령은 일본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했으며, 백령도 앞바다에서 공무원이 화형을 당하고 우리 대통령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막욕을 해도 아무 대응도 못하는 무기력한 국가로 전락도 했다.

 

또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한미 연합훈련도 못하게 통제하고 압박하여 작금에도 북한의 눈치를 보며 훈련을 축소하는 실정이었고, 그런 가운데 묵묵히 숨은 노력을 하고있는 국방 관계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다.

 

하물며 전 기무사령관 故 이재수(육사37기) 장군은 정치적 의도에 따라 희생양이 되어 온갖 수모와 망신을 당해도 버틸려고 했으나 죄없는 부하와 상관까지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검찰 수사에 항거하여 운명을 달리했다.

 

그래서인지 체력단련장이나 각종 모임에 소위 고위직에 근무했던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그곳에서 만나는 후배 및 선배 장교들의 따가운 눈초리나 간과하며 무시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하지않게 청와대로 선발되어 그곳에서 근무했던 군인중에도 많은 장교들이 J장군처럼 나름대로 국가안보를 위해 노력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명령에 의해 보직된 군인을 평가할 때는 단순한 정치적 논리 보다는 정확한 옥석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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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합참의장 박한기 대장(학군21기), 수방사령관 김선호 중장(육사43기), 기무사 민병삼 대령(육사43기) (사진=연합뉴스)

 

우리 국민들도 이런 정직한 참군인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군을 존중해야 한다  

 

지난 3월9일 대선에 맞춰 정치에 몸 던진 예비역 장군들 뒤편에서 조용히 빛나는 별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한명이 바로 박한기(학군21기) 전 합참의장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돼 임기를 다한 합참의장, 참모총장, 군사령관 중에서 어떤 캠프에도 발 들이지 않은 육군대장이다.

 

박한기 전 합참의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벌어지던 2018년 9월에  의장으로 임명됐으나 남북미 대화가 잇따라 열리면서 연대급 이상 한미연합 실기동 훈련이 중단됐다. 

 

게다가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여권은 연합 지휘소 훈련마저 취소하라고 압박했지만 박 의장은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과 협력하며 버텼다.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연합 지휘소 훈련이라도 할 수 있었던 데는 박 의장의 공이 컸다.

 

또한 훈련 기피로 미군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때 박한기 의장의 군사 외교력이 돋보였다. 합참의 한 장교는 "박 의장은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을 비롯한 주한미군 지휘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면서 한반도 상황을 공유하고 이해를 구했다"라고 말했다.

 

사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공격적인 군인인데 결국 박 의장의 1등 팬이 됐는데 그이유는 박 의장 재임기간 동안 놀랍게도 연합사령관과 무려 170여회의 직접 소통의 시간을 가지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박 의장은 2019년 10월 국감에서 북한이 파괴했다는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해 "3, 4번 갱도는 보수해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복구에 수주, 수개월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풍계리는 폐기됐다"며 북한의 진심을 대변했으나, 박한기 의장은 북한 핵실험장 폐기의 기만된 의도를 국민에게 알렸고,“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라고도 명확히 했다. 또한 그의 임기말에는 장관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2020년 5월 수도방위사령관에 당시의 9.19군사합의를 주도했던 국방부 대북정책관인 김도균(육사44기) 육군소장이 발탁됐고,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에 파격적으로 5군단장을 마친 안준석(육사43기) 육군중장이 임명됐다.

 

그런데 당시 수방사령관 김선호 육군중장은 이보다 먼저 국방개혁비서관 보직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했다.

 

그 이유는 의전상 차관급인 현역중장이 1급인 청와대 비서관으로 가면 일반공무원들은 장군의 직급과 권위를 전보다 낮춰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참모총장에게 보고하고 정상적으로 인사가 이루어지길 건의했으나 관철되지 않아 전역을 선택했다.

 

또한 2018년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대령은 “송영무 장관은 계엄검토문건이 수사를 할만한 사안이 아니라 해놓고 그런말 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국회에서 팩트를 증언했다.

 

그는 “진실이 진실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이 말하는게 곧 진실이 될까봐 우려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비록 문재인 정부에서 상급 명령에 의해 근무했지만 박한기 전 의장, 김선호 수방사령관, 민병삼 기무부대장 등을 비롯한 많은 군인들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소신껏 국가안보를 위해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숨은 인재들이 국방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군은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이런 정직한 참군인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다고 믿으며, 이런 인재들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하길 기대한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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