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ESG 열풍' 속 장애인 의무고용 어디까지 왔나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기승전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말처럼 ESG 없이 기업경영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기업에 ESG 의무 공시를 요구한 가운데 EU(유럽연합)는 ESG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해 ESG는 이제 세계 경영계의 시대적 화두로 우뚝섰다.
ESG 중에서 특히 환경(E)에 관한 기업 성과는 두드러진다. 최근 몇 년 새 기후위기와 탄소저감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배경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사회(S)에 대한 관심은 아직 미흡하다.
기업이 마땅한 사회적 책임을 잘 수행하는 지를 판단하는 사회(S) 부문의 대표적 화두가 ‘장애인 의무고용’ 이행 여부다. 이는 ESG에서도 사회(S), 그중에서도 다양성(Diversity)을 평가하는 지표다.
우리나라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28조’에 근거해 50명 이상 공공기관·민간기업 사업주는 각각 임직원의 3.6%, 3.1% 이상을 장애인으로 채용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고용의무부담금을 내야 한다.
모회사가 장애인 고용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주식 총수(또는 출자총액)의 50%를 넘는 자회사를 세우면 자회사에서 고용한 장애인을 모회사에서 고용한 것으로 인정하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도 등장했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업은 해마다 수백개에 이른다. ‘장애인 고용 대신 돈으로 대신하겠다’는 심보인 셈이다.
그러나 ESG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트렌드로 떠오른 만큼 장애인 의무고용을 외면할 수는 없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국내 대표 기업들의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과 전망을 짚어봤다.
■ 장애인 의무고용 실천, 기업별 천차만별
기업분석 전문 한국CXO연구소가 지난해 각 기업 ESG 보고서를 토대로 정리한 ‘국내 주요 기업 70곳 대상 2018~2020년 최근 3개년 장애인 고용 현황 분석’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ESG 및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이하 ESG보고서) 등을 제출한 100여 곳 가운데 장애인 고용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는 70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70개 기업 가운데 장애인 임직원 수는 2018년 1만1704명에서 2020년 1만2598명으로 늘어났다. 2020년 기준 가장 많은 장애인을 채용한 기업은 2108(3.12%)명을 기록한 현대차다. 현대차는 최근 3년 연속 2000명대 장애인 고용을 유지해 '1위 기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현대차 외 장애인 고용 1000명대 미만 기업 가운데 LG디스플레이와 포스코가 각각 700명대, 500명대로 장애인을 대거 고용하는 그룹군에 속했다. 이 밖에 △KT(488명) △기업은행(454명) △LG전자(431명) △삼성SDS(413명) 등이 400명대를, △LG화학·LG유플러스(각 348명) △KB금융그룹(340명) 등이 300명대를 기록했다.
반면 장애인 임직원 채용이 오히려 줄어든 기업도 있다.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의 2020년 기준 장애인 고용 인원은 1465명으로 현대차에 뒤를 이어 두번째로 많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2018년·2019년 장애인 임직원 고용 인원은 1538명·1589명이다. 이에 따라 장애인 일자리가 2020년 들어 오히려 100명 이상 줄어든 셈이다.
또한 현대차와 비교해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 수가 더 많아 최근 3개년 장애인 고용률도 1.5~1.6%에 머문다. 의무 고용률 3.1%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기준 195억원을 고용부담금으로 지출했다. 당시 5년간 고용부담금 지출 규모만 61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 실천 전망은
장애인 고용의 대표적 모범 사례는 SK그룹이다. SK그룹은 한 때 중증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 대비 실제 고용률이 가장 낮은 그룹사였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 SK건설, SK네트웍스, SK㈜, SK텔레콤 등 SK그룹의장애인 의무고용 인원 대비 실제 고용률은 34.4% 수준이었다. 상시 근로자 대비 장애인 고용률 역시 SK그룹이 1.04%로 가장 낮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9년 그룹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장애인 의무고용 실천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2018년 1.63% 수준이던 SK그룹 장애인 고용률이 3년 만에 의무 고용률 3.1%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SK그룹의 대표 계열사 SK하이닉스는 전국 최대 규모인 장애인 사업장 ‘행복모아㈜’를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 두고 있다. 행복모아㈜는 방진복 제작·세탁업체로 2018년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돕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 업체는 장애인 임직원 101명(중증 장애인 91%) 고용으로 출발해 설립 3년만에 고용규모가 4.5배 정도 늘어났다. 현재 전체 직원 450명 가운데 80% 이상이 중증 발달장애 청년이다.
최 회장은 행복모아에 대해 “무조건 장애인을 고용하고 그다음에 더 좋은 방법을 찾자”고 주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가치’ 실현에 앞장선 최 회장 의지가 반영된 대목이다.
LG그룹 계열사 LG이노텍은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이노위드’를 10년째 운영 중이다. 설립 초기 38명이던 이노위드의 장애인 직원은 현재 136명까지 늘어났다. 이들 가운데 중증 장애인은 107명으로 전체의 80% 정도다. 올해도 40여명 내외의 추가 채용이 이뤄질 전망이다.
기업분석 전문가는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 전망이 장기적으로는 밝지만 고용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보통 기업이 자회사를 만들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고 있고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도 이 같은 방식을 장려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을 계속 유지하면 장애인 고용은 조금씩 향상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 소장은 "그러나 그 속도가 급격하게 빠르기보다는 점진적일 가능성이 크다”며 “장애인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 개편이 동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장애인 노동자를 즉각 채용해 투입하기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장애인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의지에 좌지우지(左之右之) 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이 장애인 일자리를 모두 책임질 수는 없지만 사회적 책임자로서 소임을 다해주길 기대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