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뉴스] ‘기술자료 유용행위’ 쿠첸·삼성SDI, 검찰고발 여부 엇갈린 속사정은

전소영 기자 입력 : 2022.04.22 10:00 ㅣ 수정 : 2022.04.22 10:00

기술자료 가치·유용행위·기술자료 유용당한 기업 피해로 제재 수위 결정
중소기업 기술유용 당해도 협력 대기업과의 거래 단절 우려로 신고 못해
공정위의 기술탈취 행위기업에 대한 처벌 수준도 '솜방망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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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최근 두 기업이 이틀 간격으로 ‘기술자료 유용행위’ 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삼성SDI는 국내업체 기술자료를 중국업체에 넘겨준 혐의, 쿠첸은 단가인상 요구 하청업체 기술 경쟁사에 넘긴 혐의다. 

 

두 기업 모두 과징금 처분을 받았지만 검찰 고발 여부에서 상반된 결과를 받았다. 공정위는 쿠첸 건에 대해 관련자를 검찰 고발 조치하기로 결정했지만 삼성SDI는 과징금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쿠첸과 삼성SDI 운명을 가른 공정위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쿠첸과 삼성SDI 소식이 알려진 후 기업의 ‘기술자료 유용행위’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실 기술자료 유용행위는 그동안 종종 있는 사례이지만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자료 유용행위가 중소기업 생존을 위협할 만큼 큰 불공정행위이기 때문에 정부는 기술보호 확대, 처벌강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 기업 사이의 ‘관계성’ 때문에 적극적인 고발이 쉽지 않은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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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 쿠첸은 왜 검찰 고발을 피하지 못했나

 

공정위에 따르면 쿠첸은 납품 승인을 위해 수급사업자로부터 부품 제작 관련 기술자료를 제공받았다. 그런데 수급사업자가 단가 인상을 요구하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기술자료를 제3 업체에 전달해 거래선을 변경하는 데 이용하는 등 기술자료를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정당한 사유로 취득한 기술자료였지만 이후 애초 취지와 다른 목적으로 약 10개월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다른 업체에 전달하는 유용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쿠첸은 하도급 업체에게 밥솥 등에 탑재되는 부품에 관한 기술자료를 요구해 현행법상 사전에 교부해야 하는 기술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정위는 지난 20일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하고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정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쿠첸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9억2200만원을 부과했다. 이와 함께 기술유용행위를 주도한 직원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보다 이틀 앞서 삼성SDI도 같은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SDI는 중국 내 법인의 현지 협력업체 요청에 따라 국내 수급사업자가 가지고 있던 다른 사업자의 운송용 트레이 도면 관련 기술자료를 전달받아 중국 현지 협력업체에 제공한 혐의가 있다.

 

삼성SDI는 또 수급사업자 8곳으로부터 2차전지 제조 등과 관련한 부품 제조를 위탁해 납품받는 과정에서 관련 부품의 제작이나 운송과 관련한 기술자료 16건을 요구했다. 이 와중에 사전에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혐의도 적용됐다. 

 

공정위는 지난 19일 삼성SDI의 기술유용 행위, 기술자료 요구 서면 사전 미교부 행위 등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27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전했다. 

 

공정위는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을 토대로 쿠첸과 삼성SDI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했다.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의 골자는 △기술자료 제공 요구 △비밀유지계약 체결 △부당한 기술자료의 사용·제공 등이다.

 

기술자료 제공 요구 때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정당한 사유없이 본인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하면 안 된다. 정당하게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도 목적, 권리귀속 관계, 대가 등을 수급사업자와 미리 협의한 후 이를 서면으로 적어 전달해야 한다.

 

또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제공받는 날까지 기술자료 범위, 보유할 임직원 명단, 비밀유지의무와 목적 외 사용 금지, 위반 때 배상 등을 포함한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아울러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취득하고 본인 또는 제3자를 위한 사용행위,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 등을 자행해서는 안 된다.

 

이를 바탕으로 두 기업 모두 ‘기술유용 행위를 저지른 점’,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사전에 교부하지 않은 점’ 등 공통된 이유로 공정위 제재를 받게 됐다. 다만 쿠첸은 검찰 고발까지 이어졌으나 삼성SDI는 과징금 선에서 마무리됐다. 공정위는 어떤 이유에서 두 기업에게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됐을까. 

 

공정위 관계자는 “쿠첸의 유용행위는 13건에 달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 동일하게 발생했다”며 “수급사업자가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 사정, 그리고 유용행위 목적과 의도가 여러 가지 증빙자료를 통해 명확하게 나온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삼성SDI는 기술적인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면도 있고 양쪽 수급사업자 모두와 거래를 지속해 피해 정도가 낮은 점 등이 감안됐다”고 부연했다. 

 

즉,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을 토대로 유용된 기술자료의 가치와 중요도, 유용행위 정도, 기술자료를 유용 당한 기업의 피해 정도 등이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구체적인 척도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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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으로 가는 길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대기업의 기술자료 유용행위는 종종 목격된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벤처부가 공개한 ‘중소기업기술 보호 지원계획’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국내 중소기업의 1.7%가 기술 유출·탈취를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평균 피해금액은 5억8000만원에 달한다. 

 

원사업자가 하도급 거래때 정당한 사유 없이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유출·유용한 경우도 각각 0.7%, 0.5%에 이른다. 

 

그러나 기술자료 유용행위 대비 신고 비율은 높지 않다. 지난해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공받은 ‘2017년∼2021년 6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유용행위 적발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술유용행위 사건은 총 14건이었지만 이 가운데 신고에 의한 사건은 단 2건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기술유용을 당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 단절 등을 우려해 신고가 쉽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이 때문에 저조한 신고 결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공정위는 기술탈취 행위에 무관용 원칙을 기조로 삼고 있지만 실제 처벌 수준은 경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상생협력법 시행령)에 따르면 기술유용 행위 기업이 피해 기업에게 손해액의 최대 3배에 이르는 금액을 배상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14건 가운데 원사업자의 기술 유용 행위가 인정된 5건이 모두 해당 조항을 적용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윤 의원은 “중소기업 기술자료가 더욱 두텁게 보호될 수 있도록 유용 행위에 대한 징벌실효를 강화하고 피해업체가 신고를 이유로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같은 이유로 하청 중소기업 기술자료 보호장치가 다수 포함된 하도급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돼 올해 2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에 상충되지 않도록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도 개정돼 적용되고 있다. 

 

중기부는 올해 3월 ‘중소기업 기술보호 정책보험’을 도입했다. 기술 침해를 당하고도 대응 여력이 되지 않아 적극적인 대응을 못했던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취지다. 

 

영업비밀, 특허권 등 보호대상 관련해 △제3자가 제기한 법률 피소대응을 위한 변호사 선임 등 제반 비용 △보호대상 기술을 침해한 자에 대한 법률제기 비용 등을 국내 법원으로부터 최대 1억원 한도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이 밖에 공정위는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보복 우려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하도급 분야 기술유용 익명제보센터’를 열어 운영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2015년부터 하도급 분야 익명제보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7년 동안 기술유용 행위에 관련 익명 제보는 단 3건에 불과해 효과가 미미했다. 하도급 익명제보센터를 통해 기술유용 익명 제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라 발생한 문제라고 판단해 이같이 별도의 센터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관계 부처 노력이 닿아 기업 간 기술탈취에 취약한 국내 산업 환경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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