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분 기자 입력 : 2022.04.22 10:49 ㅣ 수정 : 2022.04.28 08:47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업무만 볼 수 있는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그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요즘은 주주들이 전화로 항의하는 건 그나마 애교고 사무실에 들어와 온갖 업무 지시는 물론 회사 통장 명세·회사 기밀 사항까지 다 보고하라고 난리예요. 다른 업체는 아예 트랙터랑 지게차 등으로 회사 입구까지 막아 놓는다는데 말 다했죠” (A업체 직원)
“회사 주식이 오르면 하나도 안 좋아요. 기대치가 높다가 떨어지면 주주들이 난리가 나서 일을 못해요. 주식이 오르면 더 잘하라고 간섭, 떨어지면 왜 일을 안 하냐며 거의 몰매 맞는 수준이에요” (B업체 직원)
“주주들이 겁난다” “주주들이 너무 극성맞다”···보기 드문 말이 아니다. 특히 제약·바이오 업종에서 더 두드러진다. 댓글로 응집하거나 도넘는 업무 관여로 눈살을 찌푸리는 일은 다반사다. 어쩌다 일어나는 그런 일이 아니다.
물론 일부 주주들의 비뚤어진 행태다. 회사의 공식 자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국 자료나 유사 자료들을 만들어 언론에 뿌려대기도 한다.
실제로 C업체의 주주들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조금만 회사의 이미지가 안 좋을 것 같은 기사를 쓰면, 사실임에도 아닌 것처럼 댓글 전쟁과 해당 언론사에 기사 삭제를 당당히 요구한다.
그러면서 SNS 카페 등 주주들의 모임 공간에서 언론 매체와 기자 이름을 들먹이며 공격을 모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막무가내 주주들도 있지만 숨죽이는 주주들도 있다. 상장폐지 여부에 운명이 달린 신라젠, 코오롱티슈진, 오스템임플란트 주주들이다.
한국거래소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기업의 판단 연기 결정을 잇달아 내렸기 때문이다. 거래재개나 상장폐지에 대한 최종 결정까지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려 주주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등 애를 태우고 있다.
기자는 2년 전 우연히 들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신라젠 행동주의주주모임을 만났다. 항의와 비난보다는 신라젠 직원들과 해결 방법을 놓고 의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자가 아닌 척 앉아 있었는데 티가 났는지 서류 하나를 건네며, 언론이 신라젠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당시 투자자들은 신라젠 이슈로 회생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 분위기였다.
기자는 지난 2월 기업심사위원회로부터 상장폐지 결정이 있던 날 신라젠 측과 전화 통화를 했다. 신라젠 측은 회사의 인력과 자본 그리고 파이프라인이 건재하기에 이 결정이 확정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며 최선을 다해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은 이미 MZ세대(1980년~2000년대 출생)들의 놀이터가 됐다. MZ세대들은 주주총회에서 당당히 마이크를 잡는다. 증권사들은 MZ세대를 잡기 위해 서비스 개편에 분주하다. MZ세대는 SNS를 기반으로 유통 및 시장 전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비 주체가 됐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일각에서는 도넘는 주주들의 행동이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고 불신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회사와 주주들은 권한밖의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개미들이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된다.
금융당국은 자본시장에서 기업과 투자자가 공정하게 성과를 향유할 수 있도록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과 물적분할 등 각종 법안을 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바꿔나가자는 움직임이 증권가 안팎으로 일어나는 추세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