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 넓히기' 치킨게임에 왕좌 누가 차지할까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반도체 시장 전망은 올해도 매우 밝다. 사실 올해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과 떼려와 뗄 수 없는 반도체는 큰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미래가 탄탄대로(坦坦大路)인 산업임에는 틀림없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는 말 처럼 반도체 가치가 최근 상승곡선을 그려 관련 기업들도 앞다퉈 생산라인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종합반도체기업(IDM)이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시설투자가 곧 기업경쟁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IDM과 파운드리 사업을 함께 하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 ‘인텔’, 대표적인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 등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모두 반도체 공장(팹) 증설 계획을 내놓고 있다.
축구장 25개 크기부터, 반도체 클러스터, 복합 공장 단지에 이르기까지 각 기업별 반도체 시설 확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련 업계 관심도 증폭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반도체 시설 확충 게임에서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 삼성전자, 핵심 생산기지 평택에서 키운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시에 반도체 사업의 핵심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현재 P1(평택1공장)·P2(평택2공장)로 불리는 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이다. P1은 메모리 반도체 위주 생산라인, P2는 EUV(극자외선) D램과 6세대 V(버티컬)낸드부터 5나노급 EUV 기반 초미세 파운드리 제품까지 아우르는 복합 생산라인이다.
평택 캠퍼스는 총 289만㎡(약 87만4000평) 용지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P2는 연면적 12만8900㎡(약 3만8992평)로 축구장 16개 크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이 곳은 2020년 가동 당시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으로 우뚝 섰다.
삼성전자는 이로부터 불과 2년 만에 P2를 뛰어넘는 P3(평택3공장)를 짓고 있다.
하반기 완공이 예상되는 P3 건축허가면적은 70만㎡(약 21만1750평), 길이 700m다. 이는 축구장 25개에 버금가는 규모다. 축구장 16개 면적에 달했던 P2보다도 1.5배가량 넓다. 이에 따라 P3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단일 반도체 공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P3 규모가 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P3는 메모리·파운드리 복합 첨단 생산시설로 활용될 예정이다.
EUV 노광공정이 적용된 10nm(나노미터·10억분의 1m) D램을 시작으로 176단 이상 7세대 V낸드, 3nm 초미세공정 파운드리 등에 이르기까지 최신 기술이 P3에 집약될 예정이다. 시설 구축은 낸드플래시, D램, 파운드리 순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P3가 완공되면 평택캠퍼스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부지의 절반 이상을 채우게 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P4(평택4공장) 착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P3와 마찬가지로 P4는 최신 기술과 생산역량은 물론 5㎚ 이하 초미세공정 파운드리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것으로 점쳐진다.
P4 공사 진행 현황에 따라 P5(평택5공장), P6(평택6공장) 등 착공 시기도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이미 평택시에 증설에 필요한 공업용수 확보를 미리 요청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94조1600억원 가운데 시설투자에만 46.3%를 쏟았다.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기술 초격차(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없는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시장에서 지금의 왕관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공격적인 투자를 보여줄 지 기대가 된다.
■ SK하이닉스, 우여곡절 속 ‘반도체 클러스터’ 첫 삽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시에 무려 120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다음 달 첫삽을 뜬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9년 용인시 원삼면 일대 448만㎡(약 135만평) 부지에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골자로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개를 설립하고 국내외 장비·소재·부품 협력 기업 50개 이상이 입주하는 상생형 단지를 만들겠다는 게 SK하이닉스의 '빅 픽처'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인근 지역주민과의 토지보상 문제로 공사에 차질을 빚었다. 결국 토지 보상이 70% 이상 완료된 3년 만에 SK하이닉스는 착공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착공식은 다음 달 중순이며 정식 토목 공사는 내년 초에 시작될 예정이다. 산업단지 조성은 기존 계획대로 2025년 마무리 되고 이후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면 첫 결과물은 2027년에야 만들어질 전망이다.
용인 반도체 공장은 웨이퍼(Wafer)를 월 최대 80만장 양산하는 SK하이닉스의 핵심 생산 거점지역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웨이퍼는 반도체 재료가 되는 실리콘이나 갈륨비소 등 단결정(單結晶) 막대기를 얇게 썬 원형 판이다.
이와 함께 용인 반도체 공장은 50여개 기업이 입주하는 상생형 단지로 자리매김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계의 협업의 장으로 거듭난다. 이를 통해 이 곳은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갈 혁신 거점지가 될 전망이다.
■ 인텔, 美 오하이오주(州)에서 파운드리 재도약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포하며 'IDM 2.0 비전'을 발표한 인텔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오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오하이오주(州)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200억달러(약 24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 두 곳을 설립할 계획인 인텔은 오하이오 반도체 공장을 최첨단 공정 제공을 위한 회사의 주력 생산기지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서비스를 위한 거점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랜디르 타쿠르 인텔 수석 부사장 겸 파운드리 서비스 사장은 오하이오 공장에 대해 “옹스트롬(0.1나노) 시대를 활짝 열기 위해 설계됐다. 이에 따라 인텔은 ‘18A’ 등 최첨단 공정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은 현재 반도체 공장 2곳을 설립하겠다고 밝혔지만 인텔이 확보한 공장 부지는 1000ac(에이커, 약 122만4000평)로 공장 8곳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이에 따라 추가 시설 투자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 밖에 인텔은 향후 10년간 유럽에서도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170억유로(약 23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프랑스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울 예정이다. 또한 이탈리아에 포장 및 조립시설을 구축하고 아일랜드에 120억유로(약 16조원)를 투입해 생산시설을 넓힐 계획이다.
삼성전자에게 반도체 왕좌를 빼앗긴 인텔의 파상공세가 본격화된 셈이다.
■ TSMC, 美 애리조나주 공장 건설 5개 추가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6개 반도체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로이터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TSMC는 2020년 5월 120억달러(약 15조원)를 들여 애리조나주에 5nm 공정 반도체 공장 설립을 계획했다. 이 공장은 오는 2024년부터 12인치 반도체 웨이퍼 양산을 목표로 설계됐으며 생산 규모는 매월 실리콘 웨이퍼 2만장에 이를 전망이다.
그런데 TSMC가 당초 계획보다 확대해 최대 5개 공장을 추가 건설한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TSMC가 1차 공장 부지 취득 당시 확장 가능 여부를 파악했는데 이는 공장 6곳을 건설하는 복안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아직까지 생산 일정이나 규모, 투자 금액 등 구체적인 청사진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처럼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모두 반도체 생산 시설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만 토지보상 문제로 계획 발표 3년 만에야 첫삽을 뜬 SK하이닉스처럼 완공까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변수 탓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반도체 사업은 속도전'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최고 시설을 가장 발 빠르게 갖추고 반도체 시장 주도권 장악에 나서게 될 주인공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 중 누가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