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독점체제 타파한다는 '황당한 인수위', 적자시장에 뛰어들 기업은 있을까?
[뉴스투데이=모도원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심각한 적자구조에 빠져있는 전력판매시장에 민간기업 진출을 허용해 한국전력의 '독점구조'를 타파하겠다고 밝혀 '정신나간 인수위'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현재 전기생산의 원료가 되는 유가 및 LNG가격이 폭등해 한전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에서 전력판매시장을 개방한다고 해도 들어올 민간기업이 있을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인수위는 물론 전기요금 산정에 '원가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발전단가가 낮은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는 등의 조치를 통해 전기판매 기업의 적자요인을 최소화해나가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현행 제도와 법규 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원가주의를 실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지배적인 여론이다.
■ 비경합성, 비배제성 못갖춘 전기는 공공재 아냐 / 경제원론에 집착해 한전 문제의 핵심을 놓친 듯
물론 전기는 비경합성, 비배제성이라는 공공재의 특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민간기업을 전기시장에 유치하겠다는 것이 경제원론적으로 틀린 주장은 아니다. 이로인해 인수위의 경제학자들이 전기는 공공재가 아니라는 경제학 원론적 입장에만 함몰돼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한전 독점체제 개방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화두를 던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독점체제는 하나의 기업이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독차지할 때 쓰는 용어이다.
그러나 현재 당면한 문제는 한전이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팔아서 천문학적인 적자를 떠안게 됐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한전 독점체제 타파는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정책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한전 독점체제 개방이 '한전 민영화'를 뜻한다는 해석까지 흘러나왔다. 이에 인수위는 "한전 민명화를 의미한 것은 아니다"고 황급하게 해명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한전을 민영화하면 천문학적인 적자를 떠안고 인수할 기업은 없다. 정부가 온갖 특혜 및 부채탕감 조건을 달아도 시장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가 미지수인 상황이다.
■ 인수위 김기흥 부대변인, 전력구매계약(PPA) 확대 및 전력판매 시장 개방 강조 / 박주원 경제2분과 전문위원, 다양한 전력판매 허용 및 독점 시장 완화 주장
사태의 발단은 지난 달 28일 김기홍 인수위 대변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기자회견장에서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중점 과제를 발표한 자리이다.
특히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력판매 시장을 개방하고 다양한 신생 기업을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전력구매계약(PPA) 허용범위를 확대해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 구조를 확립한다는 계획이었다.
전력구매계약은 전력의 판매과 구매를 규정하는 계약이다. 보통 전력을 판매하기 위해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기업과 전력을 구매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가정이 공급사업자와 계약해 전력을 공급받는 제도다. 현재까지 공급사업자는 한전이 유일해 PPA가 확대되면 한전의 독점 구조가 깨진다.
박주원 경제2분과 전문위원은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선진국에서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관리를 적극적인 벤처 에너지 관리 기업이 한다”며 “새 정부에선 PPA를 확대해 다양한 거래를 허용함으로써 독점 시장을 완화하고 이를 위한 신생 기업이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전력시장 개방 위해 전기요금 '원가주의' 강조 / 전기요금 원가대로 받으면 전기요금 폭등 불가피, 3만원 내던 가구 5만원 내야
이와 관련 인수위는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함으로써 민간기업의 전력판매 시장 진출을 위한 환경조성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유연탄, LNG 등 발전 연료의 가격 변동에 따라 요동치기 마련인데, 한전은 그 변동액을 전력판매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화력발전 연료비가 오르면 전기요금 가격을 인상토록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지난해 도입했으나, 소비자 보호 장치에 따라 분기당 3원까지만 올릴 수 있어 유명무실한 제도로 평가받아 왔다.지난달 산정된 올해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도 33.8원/kWh으로 집계됐지만 올리지 못했다.
이로인해 한국전력의 적자는 커져만 가는 상황이다. 메리츠증권은 한국전력의 2022년 1분기 영업손실을 -6.7조원으로 전망했다. 한전은 유일한 전력 공급사업자로서 원가의 상승분을 우선적으로 부담한 뒤, 이후 전기료를 서서히 올려 부채를 경감한다.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이기 위해 한전이 발행한 사채는 올해들어 이미 12조원에 이르렀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가격인 전력시장 도매단가(SMP)는 지난 28일 기준 4월 평균 kWh당 201.16원이다. 분기별로 평균 도매단가를 계산할 경우, 지난해 3분기 전력 도매단가는 93.5원으로 판매단가보다 낮았지만, 4분기 들어 125.9원으로 올랐으며 올해 1분기 들어서는 181.5원을 기록했다.
결국 올해 1분기를 기준으로 한전은 전기를 팔 수록 kWh당 71.0원의 손실을 입어 적자 규모는 점점 커져만가는 상황이다.
인수위의 '원가주의'를 액면 그대로 실행한다면, kWh 당 전력판매단가를 71원 이상 인상해야 한다. 그럴 경우 전기요금은 폭등하게 된다. 가령 3만원 정도 전기요금을 내던 가정은 5만원 안팎의 전기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처럼 전기요금마저 큰 폭으로 인상될 경우 새 정부는 엄청난 비판여론에 시달릴 게 뻔하다.
■ 인수위 '원가주의' 전환과 전력판매 시장 개방 서두르는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위는 전기 가격을 원가주의에 입각해 결정하는 체계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급격한 원가 상승분을 요금에 반영할 것이라는 큰 방향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안은 아직까지 부재한 상황이다.
박 위원은 "올해 하반기 국제 에너지 시장을 살펴보고 가격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것도 전기위원회에서 원가주의에 입각해 결정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기요금이 급하게 오를 때는 물가 인상 압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전기요금은 원가에 입각해서 결정한다는 기본 원칙은 꼭 지켜나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인수위는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원전 비중을 확대할 방침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노후 원전 계속 운전, 원전 이용률 조정 등을 통해서다.
박 위원은 “차기 정부가 원전을 적정 비중으로 유지·확대하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20조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전 적자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당면과제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