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빅테크와 공정경쟁 필요”···새 정부 ‘교통정리’ 나설까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금융권에서 빅테크(IT 대기업)와의 ‘공정 경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혁신으로 무장해 금융 시장에 뛰어든 빅테크는 빠르게 몸집을 키워가고 있지만, 기성 금융사들은 각종 규제에 얽매여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은행연합회와 여신금융협회 등 금융권 협회들은 최근 잇따라 열린 국회 정무위원장 초청 간담회에서 ‘금융권-빅테크 동일·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요청했다.
최근 몇 년 새 금융권에서 빅테크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이미 여·수신과 결제 등 금융 산업 곳곳에 빅테크가 침투해 있는 상황이다.
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인뱅) 3사는 100% 비대면 체계와 금리 경쟁력을 내세워 고객 흡수에 나서고 있다. 또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 토스페이 등도 카드업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빅테크의 가장 큰 무기는 플랫폼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의 빅테크는 기존 금융 산업과 IT 기술 결합으로 편의성 향상을 이끌어냈다. 금융권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전환(DT) 역시 기성 금융사와 빅테크의 플랫폼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기성 금융사들의 긴장감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빅테크의 빠른 영토 확장에 고객 이탈은 물론, 자칫 이들에게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작용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금융사 수장들이 신년사 등에서 공개적으로 위기감을 드러낼 정도다.
기성 금융사들의 요구는 일명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빅테크의 금융 산업 영토 확장은 가속화하고 있지만, 기성 금융사들의 비(非)금융 산업 진출은 적잖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 관련 정책과 법안들이 유독 기성 금융사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시중은행의 비은행 사업 진출은 금융위원회의 혁신 금융 서비스(규제 샌드박스)나 관련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금융자본(은행)과 산업자본(기업)의 결합을 제한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것이다. 현재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은 건 KB국민은행(알뜰폰)과 신한은행(배달앱) 뿐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인뱅들이 받고 있는 규제 강도나 카드사와 간편결제 업체의 수수료율 차이 등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며 “다른 산업으로의 진출이나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용이하게 해주고 차별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라고 전했다.
금융권에선 이날 출범한 윤석열 정부 금융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새 정부의 110대 국정 과제 중 ‘미래 금융을 위한 디지털 금융 혁신’에는 금융-비금융 간 융합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포함됐다. 금융사들의 다양한 사업 모델을 수용할 수 있는 진입 체계 마련에 나서겠단 설명이다.
최근 금융과 비금융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블러(Big-blur)' 현상이 가속하고 있는 만큼, 금융사 업무 범위와 관련한 규제 개선에 나서겠다는 게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정책 손질과 입법 등을 통한 금융사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큰 틀에서 보면 새 정부의 정책은 금융 산업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 앞서 예고한 정책이 실현될 경우 기성 금융사와 빅테크와의 운동장 역시 어느 정도 바로 잡힐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실상 정부가 공정 경쟁 환경을 통한 ‘교통 정리’에 나설 것이란 기대다.
실제 새 정부는 소상공인 등에 제공하는 빅테크의 간편결제 수수료율 공시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그간 카드사는 중소 가맹점과의 주기적인 조율로 수수료율 인하에 나섰지만, 빅테크는 자율적으로 수수료율을 산정했다. 이를 두고 카드업계는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해왔다.
지난 3일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를 발표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종합 금융 플랫폼 구축을 제약하는 제도적 장애 요인을 해소하겠다”며 “금융 산업의 자율성·역동성·경쟁력 제고 및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