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2.05.12 05:00 ㅣ 수정 : 2022.05.12 05:00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정년퇴직제 도입하지 않는 업체 속속 등장 노련한 전문인력 확보하고 젊은이에게 정년 제한 없다는 이중효과 거둬 삼성전자, 우수 인력 정년 후에도 일할 수 있는 '시니어트랙' 제도 도입 SK하이닉스, '기술전문가 제도' 도입해 정년없는 엔지니어 육성 나서 정부,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맞서 '고령자 계속고용제' 도입 추진 재계, 고령자 고용 의무화에 반대...기업 자율성 침해 우려도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한 분야에서 수 십년 간 몸담으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흔히 ‘베테랑’이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정년퇴직이라는 나이의 벽 앞에서 능력이나 역량에 관계없이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나이가 찬 직원이 나간 빈자리를 새로운 인력들이 채우는 선순환이 당연하다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반도체처럼 퇴직한 고령자 뒤를 이을 새로운 전문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는 분야에서는 그저 정년이라는 이유로 업계 최고 능력자들을 놓쳐야 하는 상황이 아쉽기만 하다.
이에 따라 최근 우수 기술 인재에 정년을 적용하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숙련된 전문 인력을 계속 고용해 젊은 인재들에게 정년 제한이 없다는 미래 비전을 심어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정년이 지나도 일할 수 있는 ‘고령자 계속고용제’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기업은 고령자 계속고용제에 반대표를 던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삼성전자·SK하이닉스 베테랑 인재 놓칠라 ‘인사제도’ 개편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우수 인력들이 정년 이후에도 근무를 유지할 수 있는 ‘시니어트랙’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내년 2월까지 정년퇴직을 앞둔 임직원 가운데 △최근 3년 평균 '나'등급 이상을 받은 성과 우수자 △삼성 최고 기술전문가 ‘삼성 명장’ △소프트웨어 전문가 등 우수 자격 보유자 등을 추려 시니어트랙 대상자로 선발할 예정이다.
시니터트랙을 도입하는 취지는 첨단 기술을 놓고 기업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경험이 풍부하고 업무에 숙련된 인력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다.
베테랑 인력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비단 삼성전자만의 과제는 아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인 만큼 SK하이닉스에서도 ‘정년 없는 엔지니어’ 육성을 추진한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2월 우수한 기술 전문가가 60세 이후에도 계속 현직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기술 전문가 제도(Honored Engineer·HE)를 도입했다. 이는 우수한 엔지니어가 정년이 지나도 회사에 남아 자신이 보유한 기술력을 발휘하고 후배 엔지니어들을 양성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2020년 1호 전문가가 배출됐으며 그는 향후 주로 중장기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미래 기술개발 선도와 후배들의 어드바이저(Advisor) 역할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훌륭한 기술 인재에게 정년이 없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밝히며 정년 이후 고용 연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별도의 정년 이후 고용제도는 없다. 그러나 컨설팅 계약을 통해 자문역할을 맡기는 등 탄력적인 방식으로 우수 인재 고용을 유지한다.
■ 정년 이후 고용정책, 기업 자율에 맡겨야
정부에서도 기업들과 비슷한 취지로 ‘고령자 계속고용제’ 도입을 추진해 왔다. 생산연령인구가 가파르게 줄어드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고령자 계속고용제도는 기업에 60세 정년 이후 일정 나이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하되 재고용·정년연장·정년 폐지 등 고용연장 방식은 선택할 수 있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은 정부의 고령자 계속고용제에 반대 목소리를 낸다. 현재로서 정년 연장제는 반도체처럼 숙달된 전문인력이 필수 분야에서만 국한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용시장 전반에 이 제도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해 5인 이상 기업 1021개사를 대상으로 ‘고령자 고용정책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의 58.2%는 ‘60세를 초과한 정년연장은 부담된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1000인 이상 기업처럼 큰 기업의 응답 비율은 71.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연공급제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50.3%로 가장 많았고 △‘현 직무에서 고령 인력의 생산성 저하 21.2% △‘조직 내 인사적체’ 14.6% 순으로 나타났다.
경총 관계자는 “응답 기업 10개사 가운데 약 6개사가 현시점에서 60세를 초과하는 정년 연장에 부담을 느낀다"며 "이런 기업의 절반 이상은 신규채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측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지금은 60세를 초과하는 정년연장을 포함해 기업 부담을 키우는 정책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책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2016년 정년 60세가 법적으로 의무화되면서 기업 상당수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9월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의 89%가 ‘정년 연장 후 중장년 인력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고령화 사회에 따른 정부의 고령자 계속고용제 도입 취지는 이해하지만 기존 정년에서 고용을 더욱 확장하는 문제는 기업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도 과거 퇴직한 일본 전문가를 데려와 노하우를 전수받은 게 성장 동력으로 작용했다"며 "기업이 퇴직자를 방치하면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고급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금도 중국에서는 한국의 퇴직 전문 인력을 데려가려고 혈안이 돼 있다"며 "이에 따라 시니어트랙 등 기업이 우수 인력 고용을 연장하는 제도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노인 인구의 최대 문제는 경제활동인데 근무기간이 연장되면 국가 차원에서 짐을 덜어내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으로서는 부담될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정부가 강제적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시장경제와 기업 자율성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고령자 계속고용제 도입이 의무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