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한국전력 개혁과제 (1)] 정승일 사장에게 던져진 도전...SMP는 낮추고 전기요금은 올려라
비상경영 선포하고 자산매각 등 나선 한국전력, 적자구조 해결은 못해
시장원리 회복이 근본 해결책, 전기요금 규제 풀고 SMP는 판매가격에 맞춰야
연료비 상승 요인도 민간발전사에게는 호재...공공발전사에겐 악재
[뉴스투데이=모도원 기자]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극심한 적자난에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부동산과 해외자산을 매각하는 등 실적 방어에 나섰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한국전력의 고립된 자구책만으로는 현재의 비현실적인 적자를 탈출하긴 어렵다고 평가한다.
이는 한국전력의 적자 자체가 최근 급등한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해 빚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기를 사들이는 도매가보다 판매하는 판매가가 더 값싼 비상식적인 구조에서는 정부 주도로 정책을 개선해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시장원리에 맞게 대수술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즉 한전이 전기 사용자(가계와 기업)에게 받는 전기요금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한전이 민간 발전사들에게 전기를 사들이는 가격인 전기 구매요금(SMP)을 시장논리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전기요금은 인상되고 SMP는 인하돼야 한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기는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 규제에 막혀 전기요금 인상 못하는 한국전력...정부가 나서 경영 정상화해야
최근 한국전력은 산하발전자회사들과 함께 긴축경영과 부동산 및 출자지분 매각을 통해 6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고강도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한전이 보유한 부동산 15개소(3000억원) 및 그룹사 보유 부동산 10개소(1000억원)을 즉시 매각하고 해외에서 운영중인 석탄발전소와 합작사업 등을 정리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는 한전의 독자적인 자구책만으로는 현재의 적자 규모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전의 자구책으로 확보 가능한 자금은 6조원 정도로 예상되지만, 한전의 1분기 적자만 7조8000억원에 달한다. 무엇보다 유동자산을 현금화해 적자를 메우겠다는 목표는 당초 적자를 유발한 근본 원인과 맞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나민식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23일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한국전력의 부동산, 해외자산 매각과 같은 비상경영 체제는 현재의 적자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복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며 “적자에 빠진 주 원인 자체가 원재료 가격은 올라가는데 그 가격을 판매 가격에 전가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다”고 말했다.
■ 한전은 202원에 전기를 사서 110원에 팔고 있어
현재 한국전력의 전력판매 구조는 발전회사들에게 사들이는 전기 구매요금(SMP)보다 전기를 판매하는 판매 단가가 훨씬 값싼 구조다. 구매비용보다 판매비용이 낮기 때문에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쌓이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전력도매가격(SMP)은 지난달 kwh(킬로와트시)당 202.11원으로 전력 도매시장 개설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분기별 평균 도매단가를 계산할 경우 올해 1분기 도매단가는 kwh당 181.5원이다. 특히 화력 발전에 사용되는 유연탄 연료비 단가는 kwh당 101.38원으로 전년 같은 동기(53.07원) 대비 2배 가까이 올랐다.
이에 비해 한국전력이 상승한 연료비를 판매가격에 반영한 비중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 이는 현행 요금제도 자체가 분기별로 3원씩 밖에 못 올리도록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승한 연료비를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제도인 연료비연동제를 본래 취지대로 적용할 경우 한전이 지난 4월 올려야 하는 금액은 kwh당 33.8원이지만, 직전분기 연료비 조정제한 제도에 따라 한전이 인상할 수 있는 금액은 kwh당 최대 ±3원 범위로 제한돼 있다. 올해 1분기 판매단가는 110.5원에 그친다.
직전분기 연료비 조정제한은 소비자보호의 일환으로 실행되고 있는 제도다. 급격한 전기요금 인상이 소비자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고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 압박으로 작용한다. 결국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경우 바로 전기료를 올리기도 어렵지만, 정부 주도로 전기 판매 구조를 개선해 수지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나 연구원은 “도매가격을 바로 소매가격에 전가하기도 쉬운 상황은 아니다”라며 “현재 전기요금은 도매가격이 120%, 150% 올랐다고 가정한다면 소매가격을 20~30% 올리는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라며 “결국 근본적인 처방은 정부 주도로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고려하는 동시에 현재 요금제도 자체를 바꿔 도매단가와 판매단가의 수지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연료비 폭등하자 민간 발전사는 영업이익 고공행진...한국전력 만 모든 부담 짊어져
최근 급등한 연료비가 한국전력과 같은 공공기관에겐 악재로 이어진 반면, 정부 규제에서 벗어난 민간 발전사에게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모양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민간 발전사인 SK E&S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5806억원으로 지난해 1년 영업수익(8301억원)에 인접한 수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 분기만에 1년치 이익 가까이 매출이 상승한 것이다.
더불어 SK E&S의 발전 자회사인 파주에너지의 경우 1분기 영업이익이 2310억원으로 지난해 1년치 영업이익(933억원)을 넘었다. GS EPS 역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2555억원으로 지난해 1년치 영업이익(2123억원)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민간발전사가 상승한 SMP를 곧이곧대로 한국전력에게 청구해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한국전력은 규제에 막혀 상승한 SMP를 판매가에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빚어진 상황이다. 결국 한국전력이 연료비 상승의 모든 부담을 독자적으로 지게된 셈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해 SMP 상한제를 고려하는 중이다. 현재 SMP는 상한선 없이 연료비 도입가격 및 시장 수급 등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SMP 상한제가 도입될 경우 올라간 연료비를 판매가격에 전가하지 못해 발전사의 이익이 감소하게 된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SMP상한제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이미 국내 에너지 기업들은 이런 동향을 미리 눈치채고 직수입하는 가스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 팔아버리고 있다”라며 “결국 공공기관은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민간기업은 떼돈을 벌고 있으니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데, 지금은 한전에서 일방적으로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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