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고령자 임금 깎는 임금피크제는 위법" 판단...노사 간 재협상 불가피
"취업규칙에 '임금피크제' 합의했어도 고령자고용법 4조4에 위배돼 무효"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
[뉴스투데이=박희중 기자] 고령자의 임금을 낮춰서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에 절감된 인건비를 활용해 청년층 일자리를 늘린다는 취지로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개별 사업장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시행 방법 등을 두고 노사 간 재논의·협상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존폐기로에 섰다는 관측이 대두된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은 사업주로 하여금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갖고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날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며 고령자고용법이 규정한 연령 차별의 '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기준을 설정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1991년 A씨는 B연구원에 입사한 뒤 2014년 명예퇴직했다.
연구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A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과 역량등급이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지급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B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임금이나 복리후생 분야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 때문에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 4조의4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이 사건 성과연급제는 원고(A씨)를 포함한 55세 이상 직원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 때문에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 관해 차별하는 것"이라며 "고령자고용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하고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B연구원 측은 고령자고용법에는 모집과 채용에서의 차별에만 벌칙 규정이 있으므로 임금에 관한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1심과 2심 재판부는 "피고(B연구원)의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거나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근속 기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사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B연구원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 노동자 과반으로 조직된 노동조합과 장기간 협의를 거친 뒤에 노조의 동의를 얻었다고 해도 취업규칙의 내용이 현행법에 어긋난다면 그 취업규칙은 무효라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효력 인정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여부, 감액된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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