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2.06.15 10:52 ㅣ 수정 : 2022.06.15 10:52
회사에 대한 충성심보다 능력과 성과 중시하는 직무형 고용으로 변화하는 일본기업 트렌드 반영에 나이든 직장인들 좌불안석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모든 직원이 매력적인 업무에 도전하고 항상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 후지쯔(富士通)의 히라마츠 히로키(平松 浩樹) 인사본부장은 지난 3월 28일에 열린 회견자리에서 직무형(ジョブ型) 인사제도의 이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미 간부들에게 선행적으로 도입해서 업무 중요도에 따라 급여에 차이를 두었고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거쳐 4월부터는 모든 직원들에게 직무형 인사제도를 적용하는 한편 작년 12월부터 50세 이상 직원만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서 3031명의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올해 말로 퇴사가 예정되어 있다.
종업원만 12만 명이 훌쩍 넘는 거대기업 후지쯔가 이처럼 단기간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로 대표되는 멤버십형(メンバーシップ型) 고용을 빠르게 탈피하고 개인의 역량과 업무성과를 중시하는 직무형(ジョブ型) 고용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한편 화학분야에서는 일본 최대로 알려진 미츠비시 케미칼(三菱ケミカル) 역시 새로운 인사제도를 2020년 10월에 도입하는 동시에 50세 이상 관리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모집했다.
새로운 인사제도 하에서는 회사방침에 따른 인사이동을 최소로 하는 대신 연 4회 인사이동 희망자를 모집하여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해서 이동여부를 결정하고 모든 부서는 직무기술서를 작성하여 업무내용을 명확히 정의하고 성과를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작년 4월부터는 임금제도 개편을 통해 같은 업무를 계속하더라도 매년 임금이 오르는 연공형(年功型) 임금구조를 버리고 업무난이도와 책임 등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직무등급(職務等級)을 채택하며 사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는 후지쯔나 미츠비시 케미칼과 같은 직무형 고용이 대기업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능력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정년이 보장되고 연차가 쌓일수록 높은 연봉을 받는 기존의 고용관행을 타파하려는 의도가 명확하지만 반대로 중장년 직장인들의 압박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근속연수가 길수록 자연스레 높은 자리로 올라갔지만 이제는 사내 경쟁을 거치면서 후배들에게 역전당할 가능성이 생겼고 여기에 급여까지 추월당할 수 있다는 긴장감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당장은 이들의 아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직무형 고용이 매력적인 제도라며 향후 적극적인 도입과 활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반대로 신입사원 일괄채용과 종신고용 같은 일본 특유의 고용방식은 개선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미츠비시 UFJ 리서치 & 컨설팅 역시 116개 주요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무가치와 보수가 맞지 않는 직원이 있다’는 응답이 51%를 기록하고 ‘중장기적으로 인건비 관리필요성을 느낀다’는 응답도 49%에 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제조업에서 노무비를 적정하게 배분하기 위한 시책으로 직무형 고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국가경쟁력 강화가 시급해진 일본 정부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3월에 열린 ‘다양화하는 노동계약 조건에 관한 검토회’를 통해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장래 근무지와 업무내용을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성장가능성만을 평가해서 신입사원을 채용한 후 걸음걸이와 인사법부터 새로 가르치는 흔히 포텐셜 채용이라고 불리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내용이지만 후생노동성 측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의논을 거쳐 노동기준법에도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한참 늦은 선택을 내린 일본이지만 이러한 변화들이 앞으로 어떤 결과들을 만들어내면서 일본을 불황의 늪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