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전자 '재생 플라스틱'에 눈돌리는 이유 알고보니...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방식이 시대적 화두가 되면서 가전업계는 ‘재생(재활용) 플라스틱’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탄소중립(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과 순환경제(자원 절약과 재활용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경제 모델)를 위해 수거된 폐가전에서 재생 플라스틱을 추출해 사용하는 방식이 주목 받고 있는 셈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전기·전자기기 업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장기적인 재생 플라스틱 확대 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폐가전에서 재생 플라스틱을 추출해 활용하기 까지 생산 단가가 높고 재생 원료를 생산하는 인프라도 부족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재생 플라스틱 활용에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재생 플라스틱 입은 ‘전기·전자’ 상품 쏟아진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단단하며 내구성이 뛰어나다. 여기에 가격도 저렴해 활용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하거나 폐기할 때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을 그대로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해 새 제품을 생산하는데 활용하는 ‘재생 플라스틱’이 새롭게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ESG경영 추세를 따라가려면 재생 플라스틱 활용이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산업 분야 가운데 하나가 ‘전기·전자’다. 이에 따라 국내는 물론 세계 주요 전자·가전 기업들은 재생 플라스틱 활용 계획을 앞다퉈 수립해 이미 도입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모바일 기기에 유령 그물(Ghost nets)이라고 불리는 ‘폐어망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 플라스틱 제품은 인도양 인근해에서 폐어망을 수집한 후 분리해 절단, 청소, 압출 과정을 거친 후 폴리아미드 수지 펠릿으로 가공해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된 재생 플라스틱은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 S22 시리즈와 갤럭시 탭 S8 시리즈, 갤럭시 북2 프로 시리즈에 적용됐다.
이 밖에 삼성전자는 ‘지구를 위한 갤럭시(Galaxy for the Plane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는 2025년까지 △모든 갤럭시 신제품에 재활용 소재 적용 △제품 패키지에서 플라스틱 소재 제거 △모든 스마트폰 충전기의 대기 전력 제로(zero)화 △전세계 MX(모바일경험)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재활용해 매립 폐기물 제로화 등을 목표로 정했다.
LG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LG전자는 지난해 이후 향후 10년에 걸쳐 폐전자 제품에서 회수한 플라스틱을 이용해 가전제품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2025년까지 20만 톤, 2030년까지 추가로 40만 톤을 사용해 누적 60만톤에 이르는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재활용 플라스틱이 그동안 TV, 모니터,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다양한 제품의 일부 모델에 들어가는 내장부품 원료로 사용됐지만 앞으로는 제품 외관부품에도 사용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LG전자는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는 제품 라인도 넓히기 위해 LCD(액정표시장치) TV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이 적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라인업(제품군)을 기존 14개에서 지난해 18개로 늘렸다.
■ 재생 플라스틱 추출 어렵지만 환경 보호 효과에 시장 계속 커진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하는 것이 환경에 이롭다는 것을 알지만 폐가전에서 이를 추출해 내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면 플라스틱 순도가 높아야 하는데 폐가전은 불순물이 다량으로 섞여 있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순물을 제거하려면 후처리 과정이 필요하고 여기에 필요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생산 단가가 그만큼 올라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후처리 과정에서 사용되는 약물에 따른 오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생 플라스틱은 수요가 늘고 있지만 제조 기업은 수요에 따라갈 만큼 공급을 충분하게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재생 플라스틱 활용에 따른 환경적, 경제적 측면의 긍정적 효과는 매우 크다.
삼성전자 폐어망 재활용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비교해 이산화탄소(CO2)를 약 25%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안전인증기관 UL(Underwriters Laboratories)이 진행한 ‘전과정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 결과에 따르면 일반 플라스틱을 1톤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4.4톤의 탄소가 발생한다. 이에 비해 폐어망 재활용 플라스틱은 탄소 배출량이 3.3톤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각종 전자제품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1톤을 생산할 때 폐어망을 재활용하면 기존 방식 대비 1.1톤, 약 25%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며 “탄소 1.1톤은 30년생 소나무 120그루가 약 1년동안 흡수하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효과도 크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폐기물부담금 대상이 되는 플라스틱 제품․재료․용기 제조·수입업자와 환경부 장관이 체결한 2015년도 플라스틱 폐기물 회수·재활용 자발적 협약 제도를 운영한 결과 약 19만8000톤의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해 총 1717억 원의 이익을 냈다.
구체적으로 매립·소각 처리비용이 439억원 절감됐으며 재활용시장에서 재생가치를 가지고 유통·판매할 수 있는 재활용품의 경제가치는 1278억원에 이른다.
산업계 골칫거리였던 폐플라스틱이 재생 플라스틱으로 탈바꿈해 ‘미래 먹거리’로 등장하면서 관련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업체 아큐먼 리서치 앤드 컨설팅에 따르면 글로벌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18년 68억달러(약 8조원)에서 2026년 125억달러(약 16조원) 수준으로 2배가량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전자 제품은 2017년 7063만달러(약 909억4318만원)에서 연평균 성장률 5.4%로 증가해 올해에는 9206만달러(약 1185억3645만원)에 이를 것으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은 전망했다.
■ 재생 플라스틱, '기업 미래 먹거리'로 우뚝
환경부 자원순환정보시스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재활용 가능한 압축 페트(PET) 가격은 kg당 전국 평균 291.3원인 반면 올해는 같은 기간 394.3원으로 오름세를 나타냈다.
대세로 등장한 재생 플라스틱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내 주요 기업이 재생 플라스틱을 미래 먹거리로 정하고 관련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오염된 페트병을 100% 재활용하는 해중합 기술로 유명한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은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을 핵심 먹거리로 육성하기로 하고 울산을 세계 최대 ‘도시 유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플라스틱을 여러 번 재활용해도 품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기술개발(R&D)에 들어갔다.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재생 플라스틱 시장을 더욱 키우려면 이해관계자 간 긴밀한 파트너십과 통합관리가 필수다.
관계 부처인 환경부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촉진하려면 안정적인 시장창출이 필요불가결하지만 석유가격, 1차 플라스틱 가격 변동성에 대한 재활용 시장의 취약성과 운송·수거 등을 위한 생산비용, 폐기물 불법거래와 기존 폐기물 규제에 따른 제약 등 여러 문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또 “시장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모든 이해관계자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토대로 재활용 관련 투자 촉진, VAT(부가가치세) 감면, 조세제도 활용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플라스틱 재활용 업체가 대부분 중소업체이다 보니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수익성도 낮다"며 "플라스틱 재활용 및 자원화 산업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업계의 대형화와 통합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