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1박12일간의 유럽 출장길에 방문했던 곳은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업체 ASML, 유럽 최대 반도체연구소 IMEC, 헝가리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공장, 자동차 전기장치 부품 회사 하만 카돈 등이다.
방문 기업들은 모두 반도체와 배터리, 전장 등 삼성이 미래 핵심 산업으로 점찍은 분야의 주요 기업·기관들인 만큼 확실한 성과내기에 공을 들였다.
특히 ASML은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세계 유일의 회사로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도 장비를 받으려고 줄을 섰다. 삼성전자 역시 시스템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해선 ASML 장비가 꼭 필요하다.
이 부회장은 또 이번 유럽 출장에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SDI 최대 고객사 BMW와의 만남도 성사됐다.
삼성SDI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에코프로비엠(247540) 가리공장이 지어지는 인근에 신규 양극재 공장을 설립할 예정인 가운데 전기차·배터리·소재 등에 이르는 폭넓은 밸류체인 파트너십이 구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BMW 등 협력사들을 만나 자동차산업 동향을 살피고 자회사 하만을 방문해 사업 점검에 나선 것 역시 전장 경쟁력 강화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로 해석된다.
하만은 지난해 달성한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독일의 증강현실(AR)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아포스테라(Apostera)'를 인수했다. 하만 부문의 영업이익은 5990억원으로, 전년 대비 979% 증가했다. 2017년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한 이후 최대 규모다.
■ M&A 속도 붙나...NXP·ARM·인피니언 등 물망 등 관심
이 부회장이 반년 만에 나선 유럽 출장 복귀 후 대규모 인수합병(M&A) 등 성과가 조만간 가시화될 수 있을지 재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8일 유럽에서 귀국한 이후 M&A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출장 소회에 대해 "첫번째도 기술, 두번째도 기술, 세번째도 기술 같다"며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불거진 반도체 관련 대형 M&A가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앞서 한종희 부회장 또한 우회적으로 M&A를 준비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의 유력 M&A 대상 기업으로는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 회사 NXP와 독일 반도체 회사 인피니언,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 ARM,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여러 후보 기업이 인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출장 중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반도체 연구소 벨기에 imec(아이멕)에서는 AI와 바이오·생명과학, 미래 에너지 기술 진화의 방향성을 공부하고 왔다.
이를 볼 때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을 통해 자율주행차나 AI 기술을 한층 진화시킬 시스템반도체 설계업체나 차세대 에너지 기술업체, 자동차 전장 기술 관련 업체 등을 M&A 후보군으로 점찍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대형 M&A를 추진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실탄'은 넉넉하다는 의견이다. 삼성전자의 지난 3월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124조원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자동차 전장 및 오디오 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그동안 10조원 이상의 '대규모 M&A'가 없었다.
■ 귀국길, 기술 강조한 이유...복귀 후 사장단 8시간 회의, 왜 했나
이 부회장은 2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이틀 만에 삼성그룹 전자계열사 사장단과 긴급 회동한 가운데 대내외 경영의 불확실성을 해소할지에 여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귀국길에서 이 부회장은 뉴삼성을 위한 동력으로 ‘기술’의 중요성과 ‘인재 영입’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던진 만큼 향후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사장단 회의에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SDS 사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등 전자 관계사 핵심 경영진 25명이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이날 회의에서는 △ 글로벌 시장 현황 및 전망 △ 사업 부문별 리스크 요인을 점검 △ 전략사업 및 미래 먹거리 육성 계획 등 삼성의 미래 전략을 짰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 업계 우위를 지키는 동시에 시스템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목표로 구체적인 안건이 다뤄졌다. 아울러 미국 오스틴시 제2파운드리 공장 착공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 삼성전자 30% 조정에도 ‘5만전자’...실적 전망치 좋은데, 증권가 하향 조정
이 부회장 출장 전후 폭풍 행보로 인한 여러 호재 가능성에도 삼성전자(005930) 주가는 내내 6만원대 머물렀다가 최근 2거래일 연속 5만원대로 내려앉았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길에 오른 지난 7일에도 6만5500에 마감한 데 이어, 지난 17일 5만9800원, 지난 20일 5만8700원에 마감했다.
전일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5만8100원이 되면서 지난해 8월 5일 장중에 세운 직전 고점(8만3300원) 대비 30%가량 하락했다. 2020년 11월 4일 이후 장중 최저치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7조9471억원어치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의 삼성전자 보유율은 49.97%로 2016년 4월 28일 이후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증권가는 최근 삼성전자에 대해 목표주가를 일제히 하향 조정하면서도 현 주가 수준은 현저히 저평가됐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펀더멘털 훼손에 따른 하락이 아닌 글로벌 증시 불안 등 대외 이슈에 의해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충분히 저가매수가 가능한 가격대라고 조언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를 기존 60조7000억원에서 58조3000억원으로 4% 하향했다.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49조7000억원에서 40조8000억원으로 18% 낮춰 잡았다.
DB금융투자는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메모리 가격 하락이 전망돼 투자의견은 '매수' 유지와 목표주가 기존 10만원에서 8만7000원으로, BNK투자증권은 투자의견은 '매수' 유지와 목표주가 기존 8만7000원에서 7만7000원으로 내렸다.
한편 증권업계는 삼성전자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평균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25조8947억원, 63조504억원이다. 전년 대비 매출 16.6%, 영업이익 22.1% 늘어난 수치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고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