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환율 1300원, 위기의 징후로 보긴 어렵지만 경계해야
[뉴스투데이=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 환율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원달러환율은 반년 만에 9.1% 올랐는데, 코로나19 이후 저점 대비 상승률은 20%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6월 들어 원달러환율이 1300원을 넘나들면서 외환시장으로부터 출발하는 위기에 대해 정부와 투자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원달러환율 1300원대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기록하는 것으로, 불확실성과 위기감이 증폭됐던 코로나19 직후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위기감의 근원은 아픈 추억에 있을 것이다. 이미 25년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IMF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와 사회를 송두리째 변화시킨 사건이었고, 이로 인해 많은 기업과 가계의 운명이 바뀌었다.
국민적 단합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그 경험이 이후 다양한 글로벌 경제 위기 하에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도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은 경제 주체들을 생각할 때 이러한 위기의 재현을 우려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1300원을 넘나드는 현재의 환율은 위기의 징후일까?
• 현재의 원달러환율 상승은 주로 달러화 강세에 의한 것, 국내 경제 위기 해석은 섣부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번 환율 상승이 지난 10여년의 고점을 상회하는 지점에 이르긴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위기 징후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환율 상승의 배경이다.
이번 원달러환율 상승은 주로 우리나라 고유의 위험보다는 달러화 강세라는 전세계적인 현상을 반영한 것이고, 이 경우 통화가치 변동은 그 자체로 위기를 의미하진 않는다.
물론 모든 환율의 변동은 양 국가의 경제적 상황과 정책,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반영한다. 온전히 한 나라, 또는 한 통화의 움직임만을 반영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원달러환율 상승에도 글로벌 제조업 경기 사이클의 약화에 취약한 우리 경제 구조,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취약한 우리의 높은 수입의존도, 또한 이를 반영해 적자로 돌아선 무역수지, 높은 가계부채 비율까지 다양한 국내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달러화 강세는 현재 주요국 통화에 비슷한 정도의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유로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9% 이상 절하됐고,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에 비해 18% 떨어져 원화와 거의 비슷한 폭으로 움직였다.
그런가 하면 엔화는 더 절하됐다. 올해 들어 절하 폭만 17%를 넘어섰고 2019년 말 대비 엔달러환율 상승률은 32%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채 투자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브라질 헤알화도 2019년말 대비 32% 절하됐음을 감안할 때 원화의 움직임은 오히려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환율 상승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보여 준 미국의 압도적 정책 수행 능력, 최근 들어 진행되는 연준의 금리 인상 여력과 의지,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신뢰, 고유가가 부각시킨 미국의 에너지 독립 등 달러화 가치에 긍정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것이라 판단된다.
게다가 국가의 위기와 연관이 있는 외환보유고나 순대외채무 규모, 특히 단기 외채 비중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높은 건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최근 외환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4500억달러 내외를 유지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보다 거의 2천억 달러 많은 상황이다. 또한 우리는 이미 4천억 달러 이상의 순대외채권국이고, 총외채 중 단기 외채 비중은 26%대로 안정적이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는 것은 결국 자본시장인데, 국내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외국인 순매도와 달리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 순매수가 꾸준하다.
• 다만, 글로벌 경기 침체에 취약한 한국경제를 감안할 때 환율변동에 계속 주목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해야 할 점 역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코로나19 사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능력 대비 부채를 많이 늘렸던 저개발 국가들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남미의 일부 국가들은 이미 디폴트 상태에 빠졌거나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높은 유가와 탈세계화에 따른 공급망 변화는 이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와 같이 가계 부채가 많은 중간적 위치의 국가들에 대한 우려감도 커질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미·일 동맹을 중심축에 놓으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생겼다. 반도체 등 최첨단 산업 부문에서 아직 뒤처져 있는 중국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대만과 달리 그나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대상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가 강화될 경우 한중 관계의 악화를 배제할 수 없다.
올해 들어 조금 낮아졌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25%를 넘나드는 대중국 수출 비중을 감안할 때 위험 요인이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가계 부채가 많고, 글로벌 경기 침체기에 거의 항상 먼저 더 심하게 앓았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글로벌 달러화 강세가 초래한 1300원의 원달러환율 하에서 수치만으로 위기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여전히 우리 달러 조달 여건은 안정적이고, 외국인 자금의 대량 이탈도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주식시장으로부터의 이탈 역시 국별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닌 자산별 포트폴리오 조정의 일환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가 취약해질 때 불거질 수 있는 우리 경제의 약점을 감안하면 아직은 안도감보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할 때로 보인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