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엑시노스, '스마트폰 두뇌' 시장에서 찬밥 신세된 사연은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스마트폰에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연산을 위한 'CPU', 영상 연산을 위한 'GPU', 그리고 통신 기능이 하나로 통합돼 흔히 ‘스마트폰의 두뇌’라고 불린다.
최근 AP 시장을 놓고 업체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14일 관련업계에 다르면 그동안 AP시장을 주도해 온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퀄컴의 뒤를 최근 대만 업체 미디어텍이 바짝 추격하며 이른바 '2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퀄컴은 AP '스냅드래곤'을 주로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납품하는 반면 미디어텍은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며 시장점유율(M/S)을 계속 늘리고 있는 모습이다.
퀄컴과 미디어텍이 선두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정상급 스마트폰 강자 삼성전자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AP 브랜드 ‘엑시노스(Exynos)’ M/S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전자가 준비 중인 차세대 스마트폰 '갤럭시S23'에서 엑시노스가 배제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엑시노스가 해외는 물론 안방에서도 밀리는 신세가 되면서 AP시장에서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 글로벌 AP 시장, 퀄컴-미디어텍-애플이 주도
엑시노스는 삼성전자에서 설계한 시스템온칩(SoC)을 포함한 모바일 프로세서 브랜드다.
최초의 엑시노스는 ‘엑시노스 3 싱글’이다. 이 부품은 2010년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상 첫 번째 명작 '갤럭시S'에 탑재돼 시장에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엑시노스는 4·5·7·8·9·10 등 시리즈를 거쳐 올해 초 공개된 ‘엑시노스 2200’에 이르기까지 출시를 이어왔다.
퀄컴은 삼성전자보다 2년 가량 앞선 2008년 스냅드래곤 계열 프로세서 첫 작품 'QSD8650', 'QSD8250'를 출시했다. 퀄컴은 지금은 폐지된 S시리즈와 2XX 시리즈, 4XX·6XX·7XX·8XX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인업(제품군)으로 AP 시장을 공략했다.
이에 따라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은 수많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스테디셀러 AP 시리즈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비슷한 출발선에서 출발한 두 회사의 현주소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현재 글로벌 AP 시장의 ‘빅3’는 퀄컴, 미디어텍, 애플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어낼리틱스(SA)에 따르면 이들 3개 업체의 합산 점유율은 2019년 72.3%, 2020년 88%에 이어 지난해 90%를 넘어섰다. 업체별로 살펴보면 퀄컴 스냅드래곤 37.7%, 미디어텍 디멘시티 26.3%, 애플 바이오닉 26.0% 순이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 엑시노스는 올해 M/S가 6.6%를 기록해 4위에 머물고 있다. 6.6%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 포인트가 줄어든 성적표다. 삼성전자는 2018년 12%, 2019년 9.7%, 2020년 8.7%로 AP시장 점유율이 갈수록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이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AP 기준으로 2019년만 해도 전 세계 점유율이 14%대를 달성해 3위에 올랐으나 2020년부터 감소세를 보여 7%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마지막 분기에는 4%에 그쳤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디어텍의 눈부신 성장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4%를 기록하며 5위에 머문 가운데 미디어텍은 33%로 1위에 올랐다. 가격경쟁력으로 승부수를 띄운 미디어텍은 2020년 3분기 처음으로 M/S가 1위를 차지했다. 미디어텍은 또한 지난해 2분기 점유율 40%를 달성했다.
■ 그동안 '갤럭시 전용 AP' 지위 누려온 엑시노스의 향후 운명은
AP 시장이 퀄컴-미디어텍-애플 등 3강 구도로 굳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선두 경쟁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다.
이처럼 엑시노스가 부진을 거듭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갤럭시A와 갤럭시M 등 중저가 스마트폰 비중 확대에 있다. 삼성전자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중화권 ODM(제조업자개발생산) 물량을 확대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다른 업체 AP가 탑재된 것이다. 또한 삼성전자 MX사업부도 퀄컴·미디어텍 등으로부터 조달 비중을 높인 점도 주된 이유다.
실제 삼성전자는 갤럭시S22 시리즈 가운데 국내와 유럽, 남미 국가에 출시되는 모델에 엑시노스를 탑재했다. 반면 미국 등 북미, 중국, 인도 등에 출시되는 모델에는 스냅드래곤을 사용했다. 이는 통신 모뎀 인증 규제가 강력하거나 법적 절차가 복잡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결국 경쟁사 점유율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차세대 스마트폰 갤럭시 S23에 엑시노스를 탑재하지 않을 거란 전망도 나왔다.
정보기술(IT)전문매체 나인투파이브맥, 안드로이드폴리스 등에 따르면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퀄컴이 삼성 갤럭시S23의 유일한 프로세서 공급업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개발 단계에 있는 엑시노스 2300이 모든 면에서 스냅드래곤과의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범용 AP 엑시노스를 대신해 애플처럼 갤럭시만을 위한 모바일 전용 AP를 개발할 거라는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과의 성능 차이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AP는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산 AP는 엑시노스뿐인데 투자가 덜 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투자 대비 결과도 부진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학계 전문가는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의 성능 차이는 거의 비슷하지만 스냅드래곤 공급량이 증가해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는 양상"이라며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공급량이 줄어들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문가는 갤럭시 전용 AP설(說)과 관련해 “엑시노스 자체도 애플처럼 완전 자사용으로 만들어져 주로 삼성전자 제품에만 사용되고 있다”며 “(이 같은 설이 사실이더라도)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삼성전자가 AP, 특히 모바일 AP 부분에서 경쟁업체를 앞지르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아키텍트(Architect, 설계부터 시공까지 총괄하여 감독하는 지위)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