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규제 완화 시동···금융권은 ‘기대감’, 시장은 ‘위기감’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정부가 금산분리 규제 완화 검토를 공식화하면서 금융권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어느 수준까지 규제를 풀어줄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금융사의 비(非)금융 사업 진출길을 열어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사 입장에선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따른 성장성을 노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지만, 기존 시장 참여자들의 반발 등 사회적 갈등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주현 신임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취임식 기자간담회에서 “기술 환경이나 산업 구조가 많이 변했기 때문에 종전과 같은 금산분리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는 게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원칙은 은행 등 금융 자본이 제조업 등 산업 자본을 소유하거나, 지배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금융사가 기업의 주식을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는 것도 금지한다.
최근 금융 시장에 빅테크(금융+IT)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기성 금융사들 사이에선 금산분리 규제 완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 ‘금융업’만 영위하도록 제한하는 건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다.
현재 은행 등 금융사가 비금융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선 금융위의 ‘혁신 금융 서비스’ 승인이 필요하다. 조건·기간에 제한을 두고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 샌드박스’ 방식이다.
현재 은행권에서 혁신 금융 서비스로 비금융 사업을 펼치고 있는 건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 모바일(리브엠·Liiv M)’과 신한은행의 배달앱 ‘땡겨요’ 2개 뿐이다. 국민·신한은행도 승인 기간이 만료되면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은행이 비금융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건 데이터 경쟁력 확보 목적이 크다. 당장 큰 수익이 발생하진 않지만, 통신·유통 사업 과정에서 축적될 데이터는 금융사의 큰 재산이다. 플랫폼·데이터로 무장한 빅테크와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비금융 사업 진출이 절실하다.
일례로 신한은행은 땡겨요 서비스 과정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매출이나 고객 소비 패턴 등의 데이터 확보가 가능하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상공인 특화 금융 상품을 설계·출시하는 등 금융업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다.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 검토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금융권 기대감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은행법 개정을 통해 금융그룹의 비금융 자회사 소유 허용, 부수 업무 확대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제2의 리브엠이나 땡겨요가 나올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 없이는 경제가 돌아가기 힘든 만큼 금융업과 연계한 비금융 사업 범위는 무궁무진할 것”이라며 “가장 큰 목적은 비금융 사업을 통한 본업 경쟁력 제고”라고 말했다.
다만 기성 금융사가 비금융 산업에 진출하면 기존 시장 참여자와의 마찰도 예상된다.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이 참전할 경우 생태계가 교란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고객·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영세 사업자에겐 위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대표적인 갈등이 국민은행과 알뜰폰 업계다. 자본·고객을 앞세운 국민은행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저가 요금제 출시로 중소 알뜰폰 사업자(MVNO)는 고사할 것이란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철수까지 요구하고 있다. 금융위를 향해선 리브엠 사업 인가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4개 알뜰폰 사업자와 손잡고 쏠(SOL) 고객 대상 알뜰폰 요금제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다만 신한은행은 요금제 출시로 ‘수익’을 얻는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 정식 진출했다고 보긴 어렵다.
한편 금융당국은 금산분리 등 금융 규제 완화 논의를 위해 금융협회들과 테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은행과 보험 등 업권법 법안 개정 준비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