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 시각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분석 ②] 현대전 및 북한의 총력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배경
전쟁은 국가 수준의 큰 일이며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일
[뉴스투데이=송재익 국가전략연구소 전문요원] 전편에서 총력전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면, 전쟁은 국가 수준의 큰 일이며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1835년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연속으로 하나의 수단으로서 폭력행위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전쟁의 3중성을 고려하여 정부, 군대, 국민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최고사령관은 나폴레옹과 같은 군사적 천재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루덴도르프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방해하는 집단이 정부, 정당, 협회, 기업가, 신문사들이라며 이들을 강력하게 전시에 통제할 군사독재자가 필요하며 정부, 군대, 국민들까지 거대한 군대병영과 같은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총력전 대표적인 사례로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전의 총력전은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 침공에 의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보면 현대 총력전을 이해할 수 있겠다.
분명히 루덴도르프의 총력전은 로마시대의 전시 독재관으로 로마시대에도 공화제냐 아니면 황제 체제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현대 국가 총력전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루덴도르프의 총력전이 아니라 클라우제비츠의 총력전 개념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루덴도르프의 총력전은 효율성만을 강조하면서 현대 민주주의체제에서는 맞지 않는다.
그가 주장한 총력전은 나치와 같은 전제주의, 군국주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19세기에 철도와 전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듯이 21세기는 육지뿐만 아니라 해상 및 수중, 공중 및 우주에서의 이동수단의 발전, 인터넷의 발달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현대 및 미래의 총력전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추가되어 정부, 군대, 국민과 국제사회의 지원(무기 등 장비 및 물자, 자금, 국제의용군, 우주인터넷, 민간 상용이미지 등)을 포함한 총력전이 될 것이다.
현대 총력전은 국가 총력전을 의미하며 한국의 총력전은 충무계획에 의하여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심리 등 각 분야의 힘을 전체적으로 종합해서 전쟁목적에 투입하는 것이 요구되어 군인뿐만 아니라 정부, 국민까지 전 구성요원, 기관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 및 비상사태에 국가가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평시에 준비하는 범국가적인 비상대비 계획이 충무계획이다. 충무계획은 국가비상시 군사작전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전시 정부기능을 유지하며, 국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가기반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 대비 계획이다.
■ 북한의 총력전
북한의 위협을 분석함에 있어서 아군에 대하여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적의 능력과 기도로서 적의 군사사상, 군사전략,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전술 및 군사력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군이 미래전에서 적용할 것으로 예상하는 군사전략으로 기습공격, 속전속결의 단기전,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하는 배합전, 그리고 총력전 등이 있다.
북한이 구사할 것으로 예상하는 총력전은 북한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각 분야의 총체적인 힘을 전쟁에 투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적은 장차전에서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투입함은 물론 외교전, 심리전, 선전전 등을 통해 군사작전을 지원할 것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루덴도르프가 총력전에서 나라 전체의 남녀노소 모두가 각기 자기 직책에서 군복무를 하는 하나의 거대한 군대병영과 같은 국가조직을 제시하였는데 루덴도르프가 제시한 국가체제가 현재의 북한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초기 독일제국이 군사작전에 효율성을 발휘하며 전쟁, 군사작전을 연합군에 대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루덴도르프의 군대병영과 같은 총력전으로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총력전 군사전략은 초전에 성과달성 시 한국군에 치명적인 위협요소가 될 수 있겠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배경
우크라이나 전쟁 배경을 우크라이나 역사와 정치, 지정학, 경제적 관점으로 분석해보면, 첫째,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30년 전쟁 후 맺어진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에 속해 있었다.
당시 폴란드 통치 하에서 코사크 봉기가 일어나고 카자크 수장국(Hetmandate, 군사국가)이 1648~57년 수립되며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는 현대 독립국가가 형성되는 선구로 인식하고 있다. 안드루소보 휴전협정(1667년)으로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동부 일부를 모스크바 공국에 넘겨준다.
이후 러시아와 폴란드는 평화조약을 맺고 카자크 수장국은 분할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코사크 족은 친폴란드, 친러시아, 친오스만파로 분리되는데 현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시기를 ‘암흑의 시대’로 부른다. 이후 러시아제국은 동부 카자크 수장국을 없애고 영토를 완전히 합병하고 폴란드에 넘어가 있던 서부 우크라이나도 흡수하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는 독립선언을 하였지만 1921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점령하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우크라이나는 나치독일과 싸우다가 많은 희생을 치렀으며, 나치가 물러가고 나서는 소련에 의해 나치 독일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타타르계 우크라이나인들이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 추방되었다.
1953년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쵸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으로 이양하였으며 계속하여 1960년대 소련 폭압에 대한 무력저항이 일어났으나 소련군의 강제진압으로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1972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시 소련은 사실을 숨기어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희생되었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는 1991년 우크라이나는 독립되었다.
정치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속국으로 생각하며 독립을 방해하고 탄압하였으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시에는 숨김으로써 우크라이나인들로부터 반감과 저항, 독립의지는 계속 싹트고 있었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으로 분석하면, 우크라이나는 현재 푸틴이 추구하는 유라시아 건설과 유럽 서방국가의 관계에서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부 유럽의 북부는 폴란드와 벨로루시가 있으며, 남부에는 우크라이나가 위치하고 있다. 남부지역은 카르파티아 산맥을 지나면 동부의 우크라이나는 평야지대로 남쪽에서 모스크바를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에 크림반도가 있어 흑해로 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유럽의 서방국가들 간의 지역 선점을 위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있다.
셋째,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는 유럽, 아니 전 세계의 곡창지대이다. 영토가 약 60만㎢로 프랑스보다 크며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국가 중에 제일 큰 영토를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땅은 흑색을 띄고 있다. 검은 색 땅을 초르잼(흑토)이라고 부르는데 밀, 옥수수, 콩 등 농작물이 자라는데 많은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어 비료 없이 농작물들이 잘 자란다.
우크라이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러시아와 밀, 옥수수, 콩 농작물의 4대 수출국의 하나이다. 특히 밀과 옥수수의 수출이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서 막히자 국제사회 밀과 옥수수 값이 상승하기도 하였다. 또한 청광석 및 석탄, 니켈 등 광물자원의 보고 국가이다.(다음편 계속)
◀송재익 정치학 박사 프로필▶ 현 한양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대한민국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예비역 대령, 육사3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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