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더 좁아진 코인마켓, ‘죽느냐 사느냐’ 생존 갈림길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가상자산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국내 거래소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거래 규모는 물론 벌어들이는 수익도 급감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코인으로 다른 코인을 거래하는 코인마켓 시장의 타격이 두드러졌다. 실제 돈으로 거래를 하는 원화마켓에 밀려 존재감이 미미해지면서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에 시장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등 타개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11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달 발표한 올해 상반기 가상자산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계 전체 영업이익은 6301억원으로 작년 하반기(1조6400억원)보다 62% 감소했다.
이 중 원화마켓은 1조6600억원에서 6629억원으로 이익이 줄었고 코인마켓은 200억원 손실에서 300억원 손실로 적자폭이 커졌다.
■존재감 사라진 코인마켓, 시장 비중 고작 2%
거래규모도 크게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일평균 거래액은 11조3000억원에서 5조3000억원으로 53% 감소했다. 원화마켓은 10조700억원에서 5조2000억원에서 50%가량 줄어든 가운데 코인마켓의 경우 6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무려 95%나 감소했다.
코인마켓은 거래규모 뿐 아니라 원화마켓에 밀려 시장 비중은 더 줄어들었다. 원화마켓도 거래규모가 줄었지만 일평균 거래금액은 5조2000억원으로 전체의 98%을 차지, 작년 하반기보다 3%포인트(p) 상승했다. 반면 코인바켓의 일평균거래금액은 전체마켓의 2%에 불과하다. 전체 시장 비중은 더 줄었다. 반년만에 시장 침체와 동시에 쏠림현상도 가속화된 것이다.
가상자산거래소는 크게 원화마켓과 코인마켓으로 나눠진다. 원화마켓은 가상자산을 구매나 판매 시 원화를 사용하는 거래시장을 말한다. 흔히 5대 거래소라 부르는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코인마켓은 가상자산 거래 시 원화를 사용할 수 없는 거래소를 말한다. 가상자산을 구매하거나 판매할 때 거래 수단이 원화가 아닌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자산을 이용한다.
현재 국내 코인마켓 거래소는 코어닥스, 프로비트, 비트레이드 등 총 21개소가 운영중이다.
거래소 수는 많지만, 국내 가상자산 거래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나 비중은 원화마켓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FIU조사에 따르면 업계 선두권인 업비트와 빗썸을 제외한 26개 거래소 모두 적자를 보고 있다. 이 중 3곳의 원화마켓을 제외한 대부분은 코인마켓이다.
코어닥스 등 일부 코인마켓 거래소들은 거래 수수료를 인하하거나 NFT(대체불가토큰)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등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로 근본적으로 원화마켓과 격차 좁히기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거래규모나 영업이익 등 실적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현금성 자산으로 거래하는 원화마켓을 더 선호한다는 뜻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시장 가치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투자 수단으로서 안정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1000만원을 들여 비트코인을 충전해도 비트코인 가치가 떨어지면 실제 거래를 하기도 전에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반대로 가치가 크게 상승하면 투자자가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가치 변동성으로 원화마켓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코인마켓의 장점이지만 그만큼 큰 손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 ‘기울어진 운동장’, 생존 대책 마련 시급
코인마켓은 원화마켓보다 거래방식도 복잡하다. 원화마켓은 계좌에 있는 현금으로 가상자산을 구매하면 된다. 판매 시 대가도 계좌로 받으면 된다.
하지만 코인마켓은 우선 거래 수단인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채굴한 자산이 아니라면 먼저 원화로 비트코인을 충전해야 거래할 수 있다. 코인마켓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 두 차례의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원화마켓 진입도 쉽지 않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작년 3월 25일 개정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등 요건을 갖추고 FIU에 사업자로 신고해야 한다.
이들 중 시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만이 가상자산을 원화로 거래할 수 있다. 시중은행이 실명계좌를 발급하기 위해선 가상자산 거래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격조건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또 시중은행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데다 자체 영업전략 등에 따라 발급 여부가 결정돼 실명계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특금법 시행 이후 올해 고팍스가 추가된 이후 원화마켓 신규유입은 없는 상황이다. 전체 거래소 중 원화마켓이 5곳에 불과할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는 뜻이다.
시장 안정성을 이유로 높은 진입장벽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코인마켓 거래소 등은 이 같은 독과점 구조로 인한 시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규제 완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블록체인협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가상자산거래시장의 쏠림현상은 플랫폼시장 경쟁 특성상 ‘네트워크 효과’에 기인한 바 없지 않다”면서 “그러나 원화마켓 진입의 과도한 규제와 장벽에서 비롯된 ‘기울어진 운동장’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책당국은 한국 블록체인 생태계가 더 왜곡되기 전에 조속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특단의 대책을 내어놓길 바란다”며 “시장이 침체될수록 공정한 경쟁상황을 회복시켜,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산업 내 혁신이 일어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가상자산업계를 대변하던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지난 7월 5대 원화 거래소가 탈퇴하면서 코어닥스, 프로비트 등 코인마켓거래소 회원을 중심의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블록체인협회는 시중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규정 및 발급 기관을 확대 등 정책개선에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원화마켓 사업자 신규 진입이 늘면 독과점 우려가 해소될 것이라고 봤다. 다만 거래 안전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전제를 제시, 적극적인 규제 완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 6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관련 시정 및 처리 요구사항으로 ‘시장 독과점 방지’와 ‘중견 거래소의 실명계좌 확보’ 문제가 거론됐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일부 사업자의 독과점 문제는 시장 형성 초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 은행은 객관적인 평가를 거쳐 안정적인 자금세탁방지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 사업자에게 실명확인입출금계정을 발급하고 있다”며 “향후에도 평가를 거친 사업자가 원화마켓에 추가로 유입돼 원화마켓 사업자 간 건전한 경쟁의 활성화를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