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증권사 수난시대…자금 조달 난항에 조직 폐쇄까지
지난 2일 CP 금리 4.74%…금융위기 이후 ‘최고치’
정부 시장 안정화 정책 내놨지만…시장은 ‘시큰둥’
“환매 본격화 시 유동성 프로그램으로 해결 힘들어”
케이프투자증권, 사업 효율화 위해 일부 조직 ‘폐쇄’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중소형 증권사들이 비상에 걸렸다. 국제적인 금리 인상 기조에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치며 자본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긴급 자본 조달 수단인 기업어음(CP)의 금리가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고 증권사들도 일제히 단기차입금 한도를 높이는 가운데, 일부 증권사는 사업 부서를 폐지하기도 하며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상황이다.
■ 전일 CP 금리 4.74%…11일 만에 0.72%포인트 ‘급등’
3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2일 CP 91일물 기준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7%포인트 오른 4.74%를 나타냈다.
CP는 기업이 단기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융통어음 형식의 채권으로, 흔히 1년 미만의 급한 자금이 필요할 때 활용한다. 융통어음이란 상거래 활동 없이 순수 자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어음이다.
지난 십여 년간 0% 후반대에서 2% 초반대의 금리를 형성하던 CP 91일물 금리는 최근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지난달 19일 4.02%로 장을 마치며 4%대를 돌파했다. 최근에는 상승세가 가팔라져 지난달 19일부터 전일까지 단 11거래일 만에 0.72%포인트 급등했다.
CP 91일물 평균 금리가 4%를 웃돈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월 28일 이후 약 13년 9개월 만이다.
이처럼 CP 금리가 급등한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난달부터 자금난을 겪는 증권사들을 위한 유동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산업은행이 증권사 CP 매입에 2조원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한국증권금융이 중소형 증권사에 환매조건부채권(RP)와 증권담보대출 등을 통해 3조원을 공급한다.
또 대형 증권사 9곳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약 1조원을 출자해 중소형사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를 매입하기로 하고 세부안을 논의 중인 상황이다.
■ 정부, ‘50조원+α’에 ‘제2 채안펀드’ 제안했지만…투심은 싸늘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투자심리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로 일부 부실이 누적된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CP를 평균 금리의 두 배가 넘는 연 8~9%에 발행해도 미매각 매물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금줄이 마른 일부 증권사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부동산이나 CP,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보유 자산들을 매도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에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관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신평 측은 “이번 유동성 대책에 따른 효과가 중소형사의 유동성 안정화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며 “최근 우량한 신용도의 채권 수급도 악화된 상황인 만큼, 대책에 따른 채권 시장 안정화가 중소형사 유동성 위기 해소로 이어지기까지는 어느정도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소형사의 경우 자금 동원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해 위기 시 유동성 대응력이 취약한 것이 사실이며, 최근 부동산금융 의존도가 확대된 점도 리스크 요인”이라며 “자금 동원력이 열위하거나, 우발채무 현실화 우려가 높은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유동성지표나 유동화증권 차환 및 채무보증 이행, 차입현황, 대체자금조달능력 확보 여부 등 관리 상황에 대해 지속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시장의 문제들을 단기적인 안정화 대책으로 풀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전부터 여러 불안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단기 자금 경색 사태가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촉발된 측면이 크지만, 본질적으로는 긴축의 경로에서 ‘마켓런(Market Run)’이 발생한 것”이라며 “채무가 과다한 상태에서 긴축의 불확실성이 시장의 경계감으로 표출돼 자체적 모멘텀을 형성하며 연쇄하락하는 이른바 폭포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이 같은 과정에서 가장 약한 연결고리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ABCP부터 타격을 받은 것”이라며 “주요 수요처인 CP 편입 비중이 높은 신종형 MMF(초단기금융상품)와 기업의 자금 수탁고로 기능한 거대 수요처인 증권형 금전신탁 등에서 자금 환매가 본격화된다면 회사채·CP 유동성 프로그램 지원 규모로는 시장 안정화를 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헀다.
■ 케이프투자증권, 일부 사업 조직 폐지…증권사 감원 비율 담은 ‘정보지’ 돌기도
한편, 케이프투자증권은 지난 1일 자사 법인부(법인 상대 영업부)와 리서치사업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케이프투자증권 측은 사업과 인력 효율화를 위한 결정이었다면서, 향후 투자은행(IB)과 자기자본투자(PI)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폐지되는 부서의 소속 임직원은 약 30명으로, 그중 일부는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조직 개편을 두고 시장에서는 불황 국면에 구조조정 한파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일부 증권사들이 최대 50%까지 감원을 할 것이라는 정보지가 유포되면서 공포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대다수 증권사들은 해당 정보지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설명했다. 감원 계획도 금시초문이며, 제시된 감원 비율도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 금융시장 전반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중소형 증권사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 부문을 축소하거나 정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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