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인사 부활 하나’...금융권, 정치 외풍 우려 확산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민간 금융사에 대한 정치권 외압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이 정치권이 제기한 ‘아들 특혜 의혹’에 중도 사퇴한 데 이어 연임을 노리고 있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중징계 결정이 맞물리면서 금융권 일각에서는 관치금융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중징계 결정을 두고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정례회의를 열고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징계안을 확정했다. 우리은행에 대해 업무 일부 정지 3개월, 손 회장에 대해서는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이 손 회장에 대한 문책경고 제재안을 금융위로 넘긴 이후 1년 6개월 만에 징계를 확정한 것이다.
손 회장이 이번에 받은 문책경고는 3년간 금융권 신규 취업이 제한되는 징계다. 징계가 확정되면 손 회장의 연임은 불가능하다. 행정소송을 통해 징계를 무효화 할 수 있지만 내년 3월 임기가 종료되는 손 회장에게는 부담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손 회장의 징계 시점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손 회장은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징계 취소 청구 소송에서 2심까지 승소하고 최종 판결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특히 손 회장의 임기가 곧 종료됨에 따라 회장 인사 절차가 시작되는 시점에 징계가 결정됐다.
이에 우리금융 일각에서는 이번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에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 위해 정치권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우리금융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 9일 성명서를 내고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펀드 사태에 대한 제재를 법원 결정이 나온 후 징계수위를 정하겠다며 1년이 넘기 미뤄오다 갑자기 제재를 논의하게 된 배경을 밝여야 한다”며 “더 이상 우리금융을 정치 논리의 노리개로 전락시키지 말라”고 주장했다.
김지완 BNK금융그룹 회장의 중도 퇴임과 맞물리면서 정치권 외압 의혹이 힘을 얻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아들 특혜 의혹’에 부담을 느끼고 조기 사임했다.
이와 함께 BNK금융지주는 정치권에서 지적했던 승계 규정도 변경했다.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계열사 CEO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승계 규정을 외부 인사도 회장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전 BNK회장의 자녀 특혜 의혹에 대한 현장 검사를 진행한 금감원이 규정 개정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지며 외풍 논란이 불거졌다.
Sh수협은행장의 결정이 늦어지는 것을 두고도 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7일 수협은행 차기 행장 공모를 시작한 이후 김진균 현 행장을 포함해 내·외부 인사 5명이 은행장 자리에 출사표를 냈지만 은행장 후보 추천 위원회(행추위)가 재공모를 실시하며 인선이 지연되고 있다.
수협은행 행추위는 중앙회 추천 인사 2명, 해양수산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에서 각각 추천한 3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최종 후보로 선정되려면 행추위 위원 5명 중 3분의 2 이상인 4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해 정부 측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구조다.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낙하산 인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BNK금융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 지지선언을 했던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과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 등 외부인사가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직 임기가 두 달 가까이 남은 IBK기업은행장에는 정은보 전 금감원장이 내정됐다는 소문도 나온다.
또 라임펀드 판매를 빌미로 중징계를 받은 우리금융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낙점설도 돌고 있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정권 외압에 의한 ‘낙하산 인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정권과 모피아의 낙하산 투하는 금융위기를 가속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금융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피아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로 몸살을 앓아왔다”며 “윤석열 정부 역시 금융권 첫인사였던 KDB산업은행 회장 인선에서 보듯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정치적 외압 논란과 관련해 선긋기에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금융시장 리스크 점검 및 금융회사 해외진출 지원을 위한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손 회장 징계를 둘러싼 외압 논란에 대해 “정치적 외압 등 어떤 종류의 외압도 없다”며 “혹여나 향후 어떤 외압이 있더라도 제가 정면으로 그에 맞서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거버너스를 전제로 자율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대원칙과 시장 원리에 대한 존중이 있는데 이를 손상시키는 어떤 움직임이 생기면 무조건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