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쩍 않는 은행 정기예금 금리···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나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시중은행들이 지난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분을 정기예금 금리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분위기다. 상승세를 기대했던 주요 정기예금 금리가 오히려 하락 전환하며 가입 시점에 대한 고객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시장에서 정기예금 금리에 대한 고점론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추가 인상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은행권에선 금융당국 정책 방향과 금융시장 환경에 따라 정기예금 금리 수준도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9일 기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4.45~4.93%로 나타났다. 가입 기간 2~3년보다 1년 상품 금리가 높은 역전 현상은 유지되고 있다.
올해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에 은행권 수신금리는 고공행진했다.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분을 수신 상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정기예금 금리가 한 때 연 5%대 중반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단 11월 24일 기준금리 연 3.00%에서 3.25%로 0.25%포인트(p) 인상된 뒤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는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보통 기준금리 인상 결정 전후로 수신금리 인상을 발표해온 은행권도 요지부동이다.
은행권이 선뜻 정기예금 금리 조정에 나서지 못하는 건 금융당국의 ‘인상 자제령’에 따른 것이다. 은행들이 고객 및 수신고 확보 차원에서 벌인 정기예금 금리 경쟁이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변동금리는 코픽스(COFIX)를 준거(기준)금리로 한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다. 실제 취급한 예·적금 등의 금리가 인상 또는 인하될 때 이를 반영해 움직인다.
실제 올 3월 1.72%였던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달 3.98%까지 치솟았다. 결국 ‘기준금리 인상→정기예금 금리 상승→코픽스 상승→대출금리 상승’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도 사실상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분은 수신금리에 반영하지 않도록 방침을 굳힌 분위기다. 금융당국 자제령이 여전히 유효하고, 먼저 총대를 메는 은행도 없어 눈치싸움만 이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1월 기준금리 인상분을 반영한 건 인터넷전문은행 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며 “타행의 금리 인상 발표도 나오지 않고, 기준금리 인상도 꽤 지났기 때문에 정기예금 금리를 섣불리 올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은행권의 이 같은 태세 전환에 정기예금 금리 고점론도 제기된다. 최근 5대 시중은행에서 연 5%대 상품이 모두 사라진 걸 두고 금리 하락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당국의 압박이나 조달 비용 증가 등에 따라 정기예금 금리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내년 1월 13일 예정된 한국은행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정기예금 금리도 오를 여지가 있다. 은행들이 두 번 연속 기준금리 인상분을 반영 안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은행채 발행 자제령도 내렸다. 은행 입장에선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힌 만큼 예·적금 확대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간 은행들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수신고 확대에 나선 이유기도 하다.
은행권도 내년 1월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과 자금 조달 환경 악화,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 차이) 등을 고려했을 때 정기예금 금리를 머지않아 올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인상폭에 대해선 금융당국 정책 방향성에 따라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 은행채 발행은 거의 막혔기 때문에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출금리는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에 예대금리차 관리를 위해서라도 정기예금 금리를 올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내년 기준금리가 어느 시점에 오를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점에 대해서 판단하기 어렵다”며 “내년 사업 계획에 자금 조달 전략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