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82)] 시험평가 제도개선 성공하려면 업체 의견 반영할 통로 만들고 합참의 전문성도 강화해야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2.12.12 13:04 ㅣ 수정 : 2022.12.12 13:04
업체 의견 제기할 기회 차단된 상태에서 합참의 전문성 부족으로 쟁점 해결 의지도 미약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달 29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과 함께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무기체계 시험평가 제도 선진화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경수 방사청 방위사업정책국장이 ‘무기체계 시험평가 제도개선 방안’을, 고영관 LIG넥스원 시험평가지원실장이 ‘업체 주관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한 시험평가 제도개선 제언’을 주제로 발표한 후 이어 본격적인 토론회가 진행됐다.
신원식 의원은 환영사에서 “시험평가 제도의 경직된 운용이 첨단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무기체계 개발의 발목을 잡아 핵심전력 공백 사태까지 야기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고, 엄동환 방사청장 또한 “첨단무기의 신속한 전력화를 위해선 기존의 시험평가 틀을 벗어나 유연하면서도 성능과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의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방사청, 합참이 시험평가 문제 해결 나서지 않자 직접 제도개선 나서
이런 관점에서 이날 방사청은 ① 시험과 평가의 구분 및 평가 기능 강화, ② 시험평가 전문기관 지정, ③ 시험평가 판정의 개념 전환, ④ 시험평가위원회 운영 방안 개선, ⑤ 개발시험평가 수행 주체를 방사청 통합관리팀(IPT)으로 전환, ⑥ 시험평가 인프라 구축 및 효율적 관리, ⑦ 운용시험평가 항목 필수·선택 구분, ⑧ 3계절 운용시험평가의 유연성 확보 등 8가지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에 의하면, 시험평가 계획 수립 및 판정은 국방부에서 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실제는 합참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최종 판정도 합참의 판정(안)을 국방부가 승인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시험평가 방법과 판정에 여러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합참이 제도개선에 나서지 않자 사업관리를 맡아온 방사청이 이번에 직접 나선 것이다.
시험평가 업무는 2006년 방사청 개청 이후 2014년까지 연구개발 절차의 일부로 간주해 방사청(분석시험평가국)에서 주관했다. 그러나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사업관리기관과 시험평가기관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2014년 11월부터 현재까지 국방부(전력정책관실)에서 합참(시험평가부)을 통해 시험평가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최근 5년간(2018∼2022) 시험평가 현황을 살펴보면, 연평균 50여 건의 시험평가가 진행되는데 ‘기준 미충족’(개발시험평가) 또는 ‘전투용 부적합’(운용시험평가) 판정을 받는 사례가 매년 1∼3건씩 발생하고 있다. 방사청은 그 이유를 규정과 절차에 과도히 치중하거나 책임에 대한 우려로 경직된 판정을 하는 데다 기술적 전문성 부족으로 종합적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현행 훈령으로도 업체 의견 반영할 여지 있으나 실제 적용되지 않아
방사청이 이번에 제시한 개선안은 이런 인적·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시험평가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정하는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토론 과정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고 시험평가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업체의 의견도 상당수 제기됐다. 하지만 시험평가 전 과정에서 업체가 느끼는 애로사항들을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진짜’ 문제는 국방부의 위임하에 실질적으로 시험평가를 주관하는 합참 시험평가부가 전문성이 부족하여 쟁점 발생 시 해결하려는 의지가 미약한 데다, 시험평가 현장에서 직접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의 의견이 충분히 논의되고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업체가 좋은 무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란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고영관 실장(LIG넥스원)의 발표자료에는 ‘통합시험평가팀’ 위원 선정 시 연구개발주관기관(업체) 관계자가 배제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현행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 62조(통합시험평가팀 구성·운용)에는 “∼방산업체·일반업체·전문연구기관·일반연구기관 등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통합시험평가팀을 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시험평가 결과 판정(안) 마련을 위한 합참 ‘시험평가(실무)위원회’ 구성 시 훈령 상에는 업체가 포함돼 있지 않다. 단, 위원장이 업체 인원을 지명할 경우 포함할 수는 있다. 업체들은 “위원회에도 참여해 시험평가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시험 결과가 왜 이렇게 나왔는지 설명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결과 판정에만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 합참의 쟁점 해결 의지 미약해 사용군 담당자 판단이 최종 판정 좌우
이처럼 현재는 업체가 통합시험평가팀에도 시험평가(실무)위원회에도 참여할 수 없다. 즉 시험평가 권한을 가진 합참과 사용군의 의도에 따라 진행된 시험 결과만 반영되고 업체의 의견은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합참은 사용군이 시험한 내용을 근거로 판정(안)을 만들게 됨으로써 사용군의 시험평가 담당자 판단이 곧 최종 판정을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사용군의 시험평가 담당자가 경험이 부족할 경우 현장에서 업체의 합리적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시험절차나 기준을 달리 해석함으로써 왜곡된 시험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한때 합참에서 시험평가 업무를 담당했던 한 예비역 장교는 “사용군의 시험 결과가 공학적·통계적으로 맞는지 합참이 판단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이와 관련, 합참이 시험평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시험평가 지원조직을 별도 편성해 계획 수립단계부터 지원하는 체계가 강구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구나 합참 시험평가부 소속 장교들은 순환보직 직제여서 사용군에서 판단한 시험 결과로 인한 쟁점이 발생하더라도 해결하려는 의지가 미약해 관련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시험평가 제도개선의 방향은 업체 의견을 반영할 통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와 합참의 전문성을 어떻게 강화해 쟁점 발생 시 해결해나갈 것인지로 귀결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방사청이 제시한 방안 중 개발시험평가 수행 주체를 IPT로 전환하는 것보다는 업체 의견 반영과 합참의 전문성 보완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