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야기] '회장을 회장이라 부르지 못하고'...기업 호칭·직급 파괴 갈수록 거세지는 이유
조직내 세대 다양해지며 원활한 소통 추구하기 위한 추세
삼성전자, 수평호칭 사용범위 일반 직원에서 경영진까지 확대
이재용 회장, 회사내 권위주의 떨쳐내고 실용주의에 초점 맞춰
SK이노베이션, 프로페셔널 매니저라는 단일 직급 사용해 '눈길'
직급·호칭 파괴가 조직을 열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문화로 이끌어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회사 내 직급· 직책에 따른 피라미드 구조가 와르르 무너졌다.
기업 내 사원, 대리, 과장, 부장 등 전통적인 직급체계를 대신해 매니저, 리더, 프로 등 다른 호칭을 사용하거나 이름에 접미사 ‘님’을 붙여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직원을 중심으로 ‘직급체계 간소화’ 분위기가 형성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최근에는 임원, 경영진까지 수평호칭을 사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대부터 60대까지 조직 내 세대가 다양해지며 서로 간 원활한 소통을 추구하며 두드러졌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권위주의를 깨기 위한 취지인 셈이다. 이에 대해 실제 업무 현장에 있는 직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 삼성전자 임직원, 이제 이재용 회장 아닌 'JY'로 부른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하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원 간 수평호칭 사용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공통적으로 ‘(이름)님’ 부르지만 부서 업무 상황에 따라 ‘(이름)님’, ‘프로’ 또는 영어 이름 등 수평적 호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팀장과 그룹장, 임원 등 직책 사용은 제한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임직원 간 호칭을 아예 ‘(이름)님’으로 통일했다. 또 사내망에서 직원 조회 때 직위, 사번 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바꿨다. 아울러 직원들이 서로 직급을 알 수 없도록 상호 높임말 사용을 공식화했다.
이러한 수평호칭 분위기는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를 보여주듯 삼성전자는 최근 사내에 수평호칭 사용 범위를 일반 직원에서 경영진과 임원을 대상으로 넓히기로 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에 따라 경영진들 간에도 이제는 수평호칭을 사용한다. 타운홀 미팅(비공식 공개회의)이나 간담회, 임원회의 등 경영진이 모이는 자리에도 서로 ‘사장님’, ‘상무님’ 등 직책이나 지급 대신에 영어 이름이나 이니셜(약자), ‘(이름)님’으로 불러야 한다. 다만 자신이 선호하는 호칭을 내부에 공지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의 호칭은 ‘JH’(영문 이니셜),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 호칭은 ‘KH’(영문 이니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직원들은 이재용 회장을 ‘회장님’이 아닌 ‘JY’(영문 이니셜)로 불러야 한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변화는 임직원 요구사항이 아닌 주요 경영진 의사가 강력히 반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용주의’ 경영철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재용 회장은 인사·조직에서도 권위주의가 아닌 실용주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임직원을 직접 만나 고충과 건의사항 등에 귀 기울이는 등 적극적인 ‘스킨십 경영’을 펼치고 있다. 이번 수평호칭 확대 역시 이 회장의 실용주의 철학이 반영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한종희 부회장도 지난해 4월 임직원 소통행사에서 “조직문화는 수평적 문화가 기본 근간이고 수평적 문화 근간에는 상호존중이 있다”며 “부회장님 대표님보다는 ‘JH’라고 불러달라”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 “전통적인 직급 체제 붕괴, 조직 내 열린 소통 효과로 이어져”
전통적인 직급·직책 체계 붕괴는 2000년대 초반부터 두드러진 추세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들이 이미 기존 직급체계를 축소하거나 수평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임원제도 혁신안'을 적용해 계열사 임원 직급을 없애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는 직원 호칭을 각각 PL(Project Leader·프로젝트 리더)와 TL(Technical Leader·테크니컬 리더)로 만 나뉜다.
SK이노베이션은 ‘PM(Professional Manager·프로페셔널 매니저)’이라는 단일 직급을 사용한다. 실무를 책임지는 ‘팀장’만 ‘PL(Professional Leader·프로페셔널 리더)’로 칭한다.
현대자동차는 일반 임직원 직급을 6단계에서 4단계로 축소했다. 기존에는 5급사원-4급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이었다면 일부를 합쳐 G1(5급사원+4급사원)-G2(대리)-G3(과장)-G4(차장+부장)으로 구분한다.
LG전자는 임직원 직급을 P1, P2, P3 등 3단계로 나눈다. P1은 사원·연구원, P2는 선임·선임연구원, P3는 책임·책임연구원을 뜻한다. 이는 업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의 차이를 나타낼 뿐 수직적 상하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LG전자 측 설명이다.
직급 및 호칭이 수직에서 수평체계로 바뀌고 이러한 분위기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일반 직장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30대 직장인 A씨는 “수평 조직을 지향해 각자 입사 전 영어 이름을 선택해 사용하고 있다”며 “처음엔 상사 이름을 부르는 게 후배 입장에서 선뜻 입 떼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으며 특히 한국 이름이 아닌 영어이름을 사용하니 부르기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B씨는 “직급이 명확히 구분됐을 때 친한 후배들은 간혹 이름만 부르기도 했는데 그런 경계가 애매해져 오히려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느낌이 든다”며 “업무 효율성 부분에서 도움 될지 모르겠지만 대인관계에서는 변화를 체감한다”고 전했다.
반면 20대 직장인 C씨는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데 입에 잘 붙지 않아 여전히 습관적으로 직급으로 부른다”며 “사실 부르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 관계 자체 변화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 구인구직 포털 '사람인'이 962개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직급 호칭 파괴’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5.4%가 효용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는 기업들 가운데 25%는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경영 전문가는 전통적인 직급 및 호칭 체제 붕괴가 조직 내 열린 소통 문화 정착에 효과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는 “호칭의 벽을 허물면 선후배 간 경계심이 낮아져 ‘동료’라는 동질감을 형성하기에 좋다”며 “이에 따라 업무 과정에서 각자 생각을 더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다만 단순히 호칭만 바뀌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며 “호칭 변화 배경에 구성원이 모두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수평적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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