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재확인한 은행의 공공성···책임의식 키워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발생한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로 세계 금융시장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에선 이 문제가 은행 산업 리스크로 번질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유로는 각국 정부·중앙은행의 민첩한 대응이 지목된다.
미국 정부는 SVB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즉시 전액 인출할 수 있도록 하고, 위기 징후가 있는 금융사에 자금도 대출하기로 했다.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까지 조성했다.
공공(公共)의 성격을 갖는 은행이 위기에 직면할 땐 국가가 움직인다.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보니 웬만하면 은행을 망하게 두지 않는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라 부를 만큼 필수적인 분야다.
우리나라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약 16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으로 지원한 경험이 있다. 은행 심폐소생에 쓰인 돈은 모두 국민이 낸 혈세다. 경영·재무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일단 은행은 살려야 했다.
IMF 사태는 현재 대형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만든 시발점이기도 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흔히 말하는 5대 시중은행의 체급은 빠르게 커졌고, 이들 은행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위기 때 도와주고 장사하기 편한 환경까지 조성해줬으니 어마어마한 혜택이다.
은행은 공공성과 함께 사회적 책임 의무도 가진다. 국민들이 맡긴 재산(예금)을 관리하고, 이를 대출 재원으로 활용해 이익을 얻는 구조인 만큼 신뢰는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이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은행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다만 최근 은행들의 행태는 책임에 대한 무게감이 떨어져 보인다. 은행들은 지난해 시장금리 상승에 올라타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게 비판받자 부랴부랴 대출금리 인하에 나섰는데 딱히 자의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시장 개입은 왜곡을 부를 것이라며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또 사회공헌에 인색하다는 말이 나오자 취약계층 대상 10조원대 상생금융 보따리를 풀었는데, 보증배수 효과로 가득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자 장사 논란으로 여론이 들끓자 금융 지원으로 진화에 나섰지만 역풍으로 작용한 셈이다.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의 호실적이 박수받지 못 하는 이유는 배신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은행이 어려울 때 국가는 손을 내밀었지만, 국민들이 어려울 때 은행은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민간기업”이라며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은행에 대한 스탠스가 관치(官治)로 급변한 건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은행들도 그동안 공공성에 부합한 책임의식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거의 26년 전 흑역사까지 소환되며 개혁 필요성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은행들은 위기 때마다 국가가 도와주는 걸 보험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혈세 투입으로 회사는 정상화될지 몰라도 돈으로 신뢰를 살 수는 없다. 공공성을 이유로 국가로부터 받은 막대한 혜택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돌려줄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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