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익 96% 폭락에 '메모리 감산’ 카드 꺼낸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전자가 예상보다 더 낮은 올해 첫 성적표를 거머쥐어 충격을 안겼다.
전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반도체 수요 부진과 이에 따른 가격 하락 영향으로 어닝쇼크(earning shock·실적 충격)는 예상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14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삼성전자는 결국 '메모리 반도체 감산(減産)'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경쟁사들이 몸을 사리는 가운데에서도 삼성전자는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결국 메모리 생산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다.
문제는 기록적인 메모리 수요 침체로 가격이 지금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는 만큼 2분기 역시 난항이 예상돼 삼성전자의 시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 ‘반도체 한파 이정도였나’…삼성전자 1분기 영업익 6000억원 '충격'
7일 삼성전자가 공개한 2023년 1분기 잠정 실적 자료에 따르면 연결기준으로 매출액은 63조원, 영업이익은 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할 때 매출은 10.59%, 영업이익은 86.08%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19%, 영업이익은 95.75%까지 추락한 셈이다.
삼성전자 1분기 실적 부진은 이미 예견됐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이후 증권사에서 1~2월 사이 내놓은 올해 1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키움증권 2조5000억원 △하이투자증권 3조원 △미래에셋증권 1조5000억원 △하나증권 2조4000억원 등이다.
하지만 지난 3월 말이 되자 △하나증권 5000억원 △SK증권 3000억원 △한화투자 1조2800억원 △하이투자증권 1조2100억원 등 예상 영업이익이 더욱 낮아진 흐름을 보였다.
그리고 이날 실제 영업이익이 공개되자 여론은 충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1조원대 이하로 추락한 것은 5900억원을 기록한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에 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실적 부진의 주된 배경으로 IT(정보통신) 수요 부진 지속에 따른 부품, 즉 반도체 부문에서 실적이 악화된 점을 지목했다. 이날 사업별 세부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보통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0∼70%를 차지해온 반도체 부문에서 4조원 안팎의 적자를 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 메모리는 매크로(거시경제) 상황과 고객 구매심리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다수 고객사의 재무 건전화 목적 재고 조정이 계속돼 전분기 대비 실적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며 “시스템 반도체 및 SDC(삼성디스플레이)도 경기 부진 및 비수기 영향 등으로 전분기 보다 실적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 “감산 없다”던 삼성전자, 결국 메모리 생산 감축 공식화
이날 삼성전자는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업계 불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줄줄이 투자 축소 혹은 반도체 감산을 해법으로 내놨다.
미국 반도체업체 인텔은 오는 2025년까지 최대 100억달러(약 14조2200억원) 규모의 비용을 축소하고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 20%, 설비 투자 30% 이상 축소하는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SK하이닉스도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50% 수준으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24% 축소하는 ‘반도체 어닝쇼크’ 위기를 맞아 ‘삼성전자 반도체 감축설(說)’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감산 가능성을 일축했다. 여전히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기조로 올해도 반도체 투자를 이어가 위기에 정면대응한다는 전략을 고수한 셈이다.
다만 ‘삼성전자 반도체 적자론’이 계속 이어지면서 결국 감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에 무게가 실렸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실적은 1분기를 저점으로 삼아 인위적 감산을 통해 실적을 언제든지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 중장기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투자와 감산 규모를 결정할 때가 됐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이날 삼성전자는 메모리 감산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동안 메모리 시황에 전략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특히 난이도가 높은 선단공정 및 DDR5/LPDDR5 전환 등에 따른 B/G(비트 단위로 환산한 D램 생산량 증가율) 제약을 대비해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를 통해 특정 메모리 제품은 향후 수요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했다”며 “미래를 위한 라인 운영 최적화와 엔지니어링 런(Engineering Run·시험생산) 비중 확대 외 추가로 공급이 확보된 제품 중심으로 의미 있는 수준까지 메모리 생산량을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단기 생산 계획을 조정하기 위한 조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는 중장기적으로 견조한 수요가 예상돼 필수 클린룸 확보 등 인프라 투자는 계속 이어간다”며 “기술 리더십 강화를 위한 R&D(연구개발) 투자 비중도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반도체 2분기도 먹구름…가격 회복이 아닌 재고소진이 우선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여전히 낮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1년 9월까지 4달러대를 보이던 D램 평균판매단가는 하락과 보합을 오갔다. 그러다 업황이 본격적으로 얼어붙은 지난해 7월 가격이 2.88달러, 10월 2.21달러 등 점점 낮아지다 올해 1월 1달러대까지 추락했다. 올해 1분기에만 20%가량 급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낸드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낸드 가격은 2021년 3분기 4.81달러까지 오른 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분기 하락폭은 5~10% 수준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가격 하락 흐름이 아직 끊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분기 D램 가격 하락 폭을 10∼15%로 예상했다. 이는 1분기 20%와 비교하면 하락 폭이 줄어들었지만 하락세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트렌스포스는 “공급업체 재고 수준이 높아 D램 평균판매단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생산량이 크게 줄어야만 가격이 반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업황은 올해 상반기까지 하락세를 지속하다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트렌스포스는 D램을 기준으로 올해 하반기 수요가 회복될 수 있을 지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메모리 가격 회복이 불투명하다 보니 업계에서는 출하량 증가에 따른 재고 소진이 우선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삼성전자의 감산 공식화 이전부터 제기돼 왔던 지적이기도 하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업체들이 기존에 계획한 투자 축소와 감산을 시행하지 않으면 기대하는 수요 증가가 실제 발생하더라도 현재 과도한 수준의 재고를 하반기까지 청산하기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고영민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그동안 감산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다음 메모리 업사이클(호황)때 점유율 및 경쟁사와의 경쟁력 격차 확대, 이를 통한 이익 극대화에 있다”며 “하지만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면 경쟁사 대비 재고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