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3.04.28 10:15 ㅣ 수정 : 2023.04.28 10:15
2007년 우체국 민영화이전 개설된 예금계좌들 가운데 만기 20년 지난 예금들 주인이 돈 찾아가지 않아 예금주 권리 소멸로 매년 5000억원씩 국고 귀속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상식적으로 은행에 맡겨둔 예금은 오랫동안 인출하지 않더라도 휴면계좌로 전환될 뿐 예금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일본 우체국은행의 예금은 이런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나는데 2021년 한 해 에만 무려 우리 돈 5000억 원에 달하는 457억 엔이 예금주도 모르는 사이에 소멸되면서 뒤늦게 애를 태우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소멸대상은 우체국이 민영화된 2007년 10월 이전에 개설된 예금계좌들이다. 이 10년 만기 예금계좌들은 만기로부터 20년 2개월이 지날 때까지 예금주가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旧 우편저금법(郵便貯金法)에 의해 예금주의 권리 자체가 소멸되고 주인이 없어진 예금은 경비를 제외한 대부분이 국고로 귀속된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내 예금이 동의도 없이 저절로 소멸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문제는 자신도 모르는 은행계좌를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어릴 때 계좌를 새로 개설하여 용돈이나 목돈을 넣어놓고 돌아가시는 경우인데 당사자로서는 들은 내용이 없거나 들었더라도 워낙 오래 전 일이기 때문에 우연히 발견하지 않는 이상 성인이 되어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이라면 전산시스템이 발달한 덕분에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자신의 명의로 개설된 은행계좌들을 한 번에 조회하고 인출 후에 해지할 수 있지만 아날로그 사회인 일본에서는 당장 한국과 같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도 없다.
때문에 우체국이 민영화되기 이전에 예치된 예금들이 자연스레 소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독립행정법인 우정관리지원기구가 설립되어 예금권리가 소멸되기 2개월 전에 예금주에게 관련 통지서를 발송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80% 이상은 주소변경 등의 사유로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시나 아날로그 사회답게 예금주의 현재 주소나 연락처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우정관리지원기구 측의 해명인데 이 쯤 되면 통지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조차 의심스러울 법도 하다.
여기에 30년 전에는 예금계좌를 개설할 때 소멸제도에 대한 안내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실제로 예금이 소멸된 후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 중에는 소멸제도에 대한 안내문구가 전혀 쓰여 있지 않은 예금증서를 갖고 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 푼이 아쉬운 서민들에게 연일 사회이슈로 다루어질 정도로 논란이 되고 있다면 일본 정부나 관계부처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예금인출을 장려하거나 소멸된 예금을 일부라도 돌려주지 않을까 싶지만 당장은 모두가 방관 중인 상황이다.
2011년에는 치매환자 가족들의 항의를 받아 이미 소멸되었던 예금을 늦게나마 환급해준 사례가 있었지만 지금은 천재지변이나 장기입원과 같이 특정한 경우로만 환급사유를 오히려 한정시키면서 예금주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소멸되는 예금액은 해마다 커지고 예금주들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했더라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데 마지막 예금계좌가 소멸되는 2037년 말까지는 지금과 같은 지지부진한 항의와 싸움들이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