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2017년 처음 출현한 인터넷전문은행(인뱅)에 대해 시장이 기대한 건 혁신으로 금융권을 뒤흔드는 ‘메기 역할’이었다. 소중한 점심시간이나 휴가를 쪼개 은행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두드리면 해결되는 금융 경험은 혁신적이었다.
플랫폼에 기반한 비대면 체제는 인뱅이 빠르게 체급을 키울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고, 이른바 MZ(밀레니얼+Z) 세대를 중심으로 고객 수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중복 가입자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계산으로 케이·카카오·토스뱅크의 합계 고객은 거의 3600만명에 달한다.
인뱅의 또 다른 역할은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통한 ‘포용 금융’이다.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한 중저신용 차주들이 2금융권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지원하라는 특명이다. 시중은행 대비 작은 자본금 요건 등 특혜 논란까지 겪으며 금융시장에 인뱅을 투입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인뱅들은 출범 이후 박수 받을 만한 성과를 꽤 많이 거뒀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급변하는 금융시장에 인뱅의 혁신·포용 정책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불확실성 돌파 전략을 들어보면 그동안 보여준 차별화는 실종됐다.
올 1분기 인뱅 실적 발표 때 관심이 집중된 건 연체율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연체율은 각각 0.82%와 0.58%로 상승했고, 토스뱅크는 1.32%까지 치솟았다. 시장에선 금리 상승기 중저신용 차주들의 경제적 고통이 인뱅까지 전이된 탓이다.
인뱅들은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로 부실 방파제를 쌓는 한편 중저신용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서는 분위기다. 1분기 말 기준 전체 신용대출 잔액에서 중저신용 비중은 케이뱅크 23.9%, 카카오뱅크 25.7%, 토스뱅크 42.06%인데, 지난해와 비교해 증가세가 둔화됐다.
이와 함께 인뱅들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등 담보대출 비중을 늘리겠다고 한다. 신용만 믿고 내주는 대출에서 잠재 부실 우려가 잇따르니, 사실상 떼일 걱정 없는 담보대출 취급 확대로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얘기다.
고객 자산 보호를 위해서라도 은행 건전성 관리는 필수적이지만, 이게 인뱅의 숙명인 혁신·포용 약화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량한 고신용 차주나 안전한 담보대출 확대는 기성 금융사들이 수십 년간 해온 모델이다. 전혀 혁신적이지도, 포용적이지도 않다.
지난 3월 인뱅들이 금융당국에 건의한 중저신용 대출 의무 비중 완화와 대면 영업 채널 허용 등도 설립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고 있다. 건전성 관리를 빌미 삼아 위험 영업은 줄이고 수익은 늘리고 싶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유독 인뱅에 가혹한 환경이라거나 지금의 경기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말에도 일부 공감한다. 일단 은행이 건전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도 무조건적으로 맞다. 다만 위기 돌파 전략에 본업 회피가 녹아있는 것 같아 아쉽다.
그동안 인뱅 성장과 동행했던 중저신용 차주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이자)를 적용 받는다. 역으로 보면 인뱅들이 걷어 들인 이자 규모가 크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곳간을 채운 인뱅이 중저신용 대출에 소극적 태도로 전환할 경우 누가 비판 받을지는 자명하다.
호의나 예외가 이어지면 인뱅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한 이자 장사에 매몰되는 건 지금까지 충분히 목도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 정책에서 혁신이 나올리 만무하다.
시중은행 모바일뱅킹 고도화가 빨라지면서 인뱅의 혁신 한계론마저 나온다. 판을 뒤흔들 만한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 기성 금융사가 전개하는 사업 모델로 역행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랫폼 경쟁력까지 따라 잡히면 생존을 고민할 차례가 온다.
인뱅은 미래 금융을 이끌 선도자라는 기대로 시장에 출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경쟁력에 혁신·포용 성과가 맞물리면 성장도 가속할 수 있다. 당장 고통감이 크겠지만 달콤한 유혹에 빠져 정체성을 잃진 말기 바란다. 시장에선 인뱅이 미꾸라지보다 메기로 활동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