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현대차와 쌍용차 파업 손배 파기 판결, 노동계에 '노란봉투법' 효과 준다

박희중 기자 입력 : 2023.06.15 16:20 ㅣ 수정 : 2023.06.15 16:27

대법원, 현대차의 금속노조원 손배소송 원심 파기...불법 행위 정도에 따른 손배 판단
대법원, 쌍용차의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금 당초 100억원에서 크게 감액한 판결 내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기업의 손배폭탄에 제동을 건 판결 환영, 노란봉투법 통과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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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15일 오전 서울 대법원 법정을 나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대법원 3부는 쌍용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금속노조가 회사에 33억114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박희중 기자] 쟁의행위로 인한 노동조합과 노조원의 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대법원 판단이 나와 주목된다. 노동계는 일제히 환영의사를 표명하고 나섰지만 정부 여당은 곤혹스러운 분위기이다. 

 

이날 나온 기업과 노동계 간 손해배상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이다. 첫째,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현대자동차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또 쌍용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금속노조가 회사에 33억114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금속노조가 지급해야 하는 총 배상금은 당초 100억원까지 늘어났으나 이날 대법원 판결 덕분에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두가지 판결 중 현대차 노조 관련 판결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 3부는 현대자동차 관련 판결에서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사측이 생산 차질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불법 행위의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4명의 조합원에게 일괄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 것은 노조의 의사결정과정이나 실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영향력의 차이를 배제한 태도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또  "노동조합원으로서는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돼 방침이 정해진 이상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고 해도 노동조합의 지시에 불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면서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라고 해석했다. 이 부분도 노조원에게 유리한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노조원이 노조의 쟁의결정에 대해 개별적으로 그 정당성을 판단할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사측이 추후에 불법파업 여부를 판단해 그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 개인들에게 손배 등의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요소로 보인다.  

 

특히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과 달리 참여 조합원 개인에 대해서는 참작할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 쟁점 조항의 입법 취지와 방향이 유사하다. 노란봉투법에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하다가 사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이 이날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노동자마다 개별적인 책임 제한이 가능하다는 판례를 수립하면서 노란봉투법이 입법되지 않더라도 사실상 효력을 갖게 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대법원 판결은 법리 해석에 대한 일종의 기준점을 제공해 하급심 판단은 물론 각종 법률 사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피고 조합원들은 2010년 11월∼12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참여해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다. 현대차는 공정이 278시간 중단돼 손해를 봤다며 파업 참여자들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조원들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은 조합원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해 전체 배상금을 135억7000만원으로 산정했으나 법원이 판결하는 배상금이 현대차의 청구액을 넘을 수 없어 총 20억원의 배상금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또 이날 현대차가 2013년 7월 파업과 관련, 노조원 5명을 상대로 낸 다른 파업 손해배상 사건의 상고심도 선고했다. 대법원은 불법 쟁의행위에 따라 생산량이 줄었더라도 이것이 매출 감소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되면 손해액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판단을 새롭게 내놨다. 이 역시 파업한 노조의 손해배상 부담을 더는 판결로 해석된다.

 

제조업체가 쟁의행위로 손해를 봤다고 소송을 내면 손해배상 책임의 인정 여부와 더불어 손해액을 얼마나 인정할지도 큰 쟁점이다. 그간 보통 법원은 '생산 감소가 매출 감소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전제로 손해액을 계산하면서 업체가 낸 임차료 등 고정비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생산에 일시 차질이 빚어졌을 뿐 매출은 줄지 않았다면 이 같은 전제는 깨진다. 대법원은 불황, 적자제품, 결함 등 특별한 경우만을 매출이 감소하지 않는 예외로 인정해왔다. 

 

이날 대법원은 이 법리를 보다 폭넓게 적용해 '매출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간접적으로라도 증명된다면 업체의 고정비용을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에 넣을 수 없다고 봤다. 추가 생산으로 부족한 생산량을 메꾼 경우 등을 예시로 들었다.

 

노동계는 15일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한 대법원 판단을 환영했다. 나아가 이번 판결이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입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한국노총은 논평에서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 폭탄에 제동을 건 판결을 환영한다"며 "쟁의 행위에 대한 사측의 '묻지 마' 식 손배 청구에 경종을 울리는 중요한 판결로, '노란봉투법'의 정당성을 대법원이 확인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여당은 신속히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노란봉투법'을 처리하라"며 "대통령도 국회 입법권을 존중하고, 국제 노동 기준에 부합하는 노조법을 제·개정하는 데 협조하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도 대법원 판결을 반겼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오늘 판결은 향후 대법원이 헌법상 노동3권 보장 취지를 충분히 살려 쟁의행위로 인한 손배 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주노총은 "국회는 더 이상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본회의에 상정된 '노란봉투법'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라"며 "정부·여당은 더 이상 억지 주장을 반복하지 말고 법 개정에 동참하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등 야권이 노란봉투법을 강행처리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이번 2개의 대법원 판결로 인해 사실상 노란봉투법 시행효과가 작동됐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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