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3.10.15 05:00 ㅣ 수정 : 2023.10.15 05:00
대한항공, EU 승인 얻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전체 매각도 검토 운수권·슬롯·아시아나 화물사업 매각 추진하면 합병 시너지 줄어들 우려 커 아시아나 화물사업 국내 두 번째로 국제 화물기 운송량 차지하는 '알토란' 양사 합병 무산되면 한진칼 경영권 분쟁 재발 가능성 우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대한민국 매가캐리어 탄생’이라는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의 꿈이 아득하기만 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 인수합병(M&A)이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머물며 결국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당초 지난 8월 3일까지 합병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지만 경쟁제한 우려를 이유로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10월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이 이달 말까지 EU 집행위원회에 시정조치안을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M&A를 성사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여론은 이제 메가캐리어 탄생에 대한 기대보다는 대한항공이 EU 경쟁당국 승인을 받기 위해 제시한 시정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EU에 제출할 시정조치안으로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전체 매각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승인이 반드시 필요해 아시아나항공은 이달 말 이사회를 열고 논의를 계획 중이다. 이와 함께 대한항공은 LCC(저비용항공사) 등 잠재 매수인을 적극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대한항공은 14개 유럽 노선 가운데 4개 노선의 여객 슬롯(시간당 이착륙 허용 횟수)을 반납하는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모두 취항하는 인천~파리,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로마, 인천~바르셀로나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운수권(항공사가 여객이나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는 권리), 슬롯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을 전제로 한 양사 합병이 자칫 시너지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합병으로 '1+1’이 2가 아닌 1에 머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분리 매각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국제 화물기 총 운송량은 144만8412톤이며 이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운송량은 32만9887톤으로 전체의 22.78%를 차지한다. 국적사 기준으로 하면 31.88%이며 이는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은 글로벌 경기 악화로 매출이 크게 줄었지만 대한항공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은 국제 화물기 운송량을 자랑한다. 이에 따라 화물사업이 여전히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사업부문인 만큼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가장 유력한 매수 후보는 국내 LCC와 물류업체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설령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이 매물로 나오더라도 이를 품을 새 주인이 나타날 가능성에 회의적 반응을 보인다.
업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현재 FSC(일반항공사)가 화물사업을 선점하고 있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은 매수 대상으로 매력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만일 화물사업을 인수하면 운수권도 함께 따라오는 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운수권은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매각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설령 운수권이 함께 넘겨져도 화물사업은 후발 주자가 뛰어들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보니 여객사업을 운영하는 LCC가 쉽게 추진할 수 없다"며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물류업체나 LCC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매각 금액이 적지 않아 LCC로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악화된 재무구조 상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EU 경쟁당국과 현재 경쟁제한성 완화를 위한 시정조치안을 면밀히 협의 중이며 늦어도 10월 말까지 시정조치안을 확정해 제출할 계획”이라며 “다만 현재 협의 중인 시정조치안 세부 내용은 경쟁당국 지침상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시너지 반감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합병에 총력을 기울이는 배경에는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자리잡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20년 11월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불붙었을 당시 조 회장은 산업은행과 연합해 투자를 통한 우호지분 10.58%를 확보하며 승기를 들었다.
당시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8000억원 투자를 해주는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만일 양사 합병이 최종 무산되면 산업은행이 한진칼 투자 지분을 처분하는데 이는 한진칼 경영권 분쟁 재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의 관계자는 “합병이 무산되면 가장 큰 위기를 맞는 건 조원태 회장”이라며 “합병이 계속 더뎌지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제3자 매각설까지 나돌아 더욱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원태 회장으로서는 반드시 합병이 필요하다. 만일 합병이 실패로 끝났을 때 불거질 수 있는 경영능력 평가를 고려해 ‘합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