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등 주 52시간제 완화한 '주 최대 60시간' 추진…한노총과 민노총 반대로 노사정 대화 '난항' 예상
박진영 기자 입력 : 2023.11.13 18:46 ㅣ 수정 : 2023.11.13 18:46
정부, 올해 6월~8월 국민 6030명 대상 ‘주 52시간제’ 관련 현장 면접 조사 실시 주 52시간제 유지하지만, 제조업·건설업·생산직·보건의료직·연구직 등 근로 시간 유연화 노사정 합의 원하는 정부vs설문 결과에 반박하는 노조…내년 4월 총선 넘길 가능성 커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이 유지되면서 제조업, 생산직 등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주 최대 60시간 이내’ 한도로 업무량에 따른 근무 시간 유연화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부가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답만 해) 설문에 근거해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려한다"고 반발하고 있어 근로 시간 제도 개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제도 개선 방안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난항이 예상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13일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국민 6030명에게 방문 면접 방식으로 진행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52시간제(법정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에 대해 국민의 48.2%가 ‘장시간 근로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한 반면, 54.9%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이 곤란하다’고 응답했다.
먼저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장시간 근로가 예전에 비해 감소하고, 업무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많았다. 반면 업무량이 갑자기 늘어날 경우 유연하게 대응하기가 어렵고, 업종‧직종별로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
현행 주 52시간 제도로 근로자 48.5%, 사업주 44.8%, 국민 48.2%는 장시간 근로가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또 근로자 45.9%, 사업주 45.1%, 국민 48.5%는 업무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근로자 28.2%, 사업주 33.0%, 국민 39.0%는 업무량이 갑자기 늘었을 때 유연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답했고, 근로자 44.2%, 사업주 44.6%, 국민 54.9%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근로시간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주52시간제를 유지하되, 일부 업종‧직종은 연장근로 시간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현행 주52시간제와 같이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총량은 유지하되, 1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근로자 41.4%, 사업주 38.2%, 국민 46.4%가 동의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를 일부 업종 및 직종에만 적용하자는 방안에 대해서는 근로자 43.0%, 사업주 47.5%, 국민 54.4%가 동의했다.
어떤 분야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해야 하는지를 질문한 결과, 업종의 경우 △제조업(근로자 55.3%, 사업주 56.4%) △건설업(근로자 28.7%, 사업주 25.7%)등이 높았다. 직종으로는 △설치‧정비‧생산직(근로자 32.0%, 사업주 31.2%) △보건‧의료직(근로자 26.8%, 사업주 22.8%) △연구‧공학 기술직(근로자 22.2%, 사업주 26.4%) 등에서 응답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주52시간제로 인해 실제 어려움을 경험한 기업들에게 대응방식을 묻는 설문에 기업들은 ▷포괄임금 활용(39.9%) ▷추가인력 채용(36.6%) ▷수주포기(30.6%) ▷법・규정 무시(17.3%) 순서로 답변했다.
정부는 연장 근로 시간을 확대하면서 이번 설문 결과에 나온 국민의 의견을 전폭 수용할 방침이다.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 범위를 설정하고 일한 만큼 확실한 임금 보장을 하게 된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시 근로자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민은 주당 상한 근로시간 설정(근로자 55.5%, 사업주 56.7%)과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근로자 42.2%, 사업주 33.6%)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서는 노사와 국민 모두 실제 일한 만큼 확실한 임금보장과(근로자 57.0%, 사업주 49.5%, 국민 63.7%) 평소보다 더 일했을 경우 확실하게 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근로자 34.3%, 사업주 29.6%, 국민 44.8%)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주당 최대 상환 범위는 60시간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69시간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 근로시간 제도 개편 위해 대화 나서는 정부와 강하게 반발하는 양대 노총의 대립
정부가 이번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제조업 △건설업 △생산직 △보건의료직 △연구직 등 특정한 업‧직종에 대한 근로 시간 연장을 추진하기 위해 대화에 나서지만 질문 문항 생성부터가 잘못됐다는 양대 노조의 거센 반발에 순탄한 협상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발표에서 “업종·직종별 근로시간과 근로형태에 대한 객관적인 실증 데이터, 추가 실태조사가 필요한 만큼 신속하게 준비해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해 당사자별로 견해차가 클 것으로 예상돼 다음해 4월 총선까지 근로시간 개편이 확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답정너 설문에 시간과 국민혈세만 낭비했다”고 평가했다. 한노총은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가 집중적인 장시간노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국민을 우롱하는식의 설문조사였다”며 “답을 정해놓고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데 참여할 노동계가 어디인지 되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한노총은 설문지 곳곳에 정부가 원하는 답을 받기 위한 의도된 질문이 보인다며 근거를 제시했다. 한노총은 “설문지가 ‘실제 일하다가 주52시간을 잘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 않은가?’, ‘바쁜 시기에 연장근로 더하고 나중에 쉴 수 있게 단위 기간을 확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라고 이어서 묻는 식이다”며 “이렇게 질문하면 '동의한다'라는 대답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노총은 “주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필요가 있다면 현행법상 탄력근로시간제나 선택근로시간제를 활용하면 된다. 이미 2018년 노사정 합의로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했고, 노사합의로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노동시간 정책의 핵심은 5인 미만으로 사업장 쪼개기, 포괄임금제, 특별연장근로,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 등 노동시간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며 노동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를 위한 근로 시간제 개편을 요청했다.
민주노총의 반발은 더 거세다. 민노총 또한 설문지 문항에서 그 원인을 찾으며 “최근 주4일근무제 등 노동시간 추가 단축의 국내외 흐름, 주 52시간 현장안착을 위한 인력고용 대책, 생산성을 높이는 지원방안, 원‧하청 납품구조 공정화 방안 등 여러 실노동시간 단축과 주52시간 현장안착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질문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3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발표당시 청년, 여성, 직장인들 중심으로 주 52시간은커녕 법정 노동시간을 40시 이하로 더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연장 개악을 추진하는 질문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노총은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장시간근로 비율이 17.5%로 유럽연합 국가들 7.3%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장시간 노동자 비율이 OECD 상위 5위, 연평균 근로시간도 1901시간으로 OECD 상위 5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장근로를 더욱 쉽게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요구하는 기업들의 민원을 정부가 수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또 “정부는 답정너 설문조사에 4억 6000여만원의 예산을 쓸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추가 단축, 기본임금 인상, 포괄임금 금지 법제화, 고용확대지원, 일-생활균형지원 등 장시간-저임금 현장을 양질의 일자리로 바꾸어 청년 고용 확대 등 일자리 지원에 예산을 투여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근로시간제 개편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것인 만큼, 경영단체는 물론 노동단체도 대화에 참여해 실질적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필요한 업종 및 직종 선정 등을 위한 실증 데이터 분석과 추가적인 실태조사에 조속히 착수해 노사정 대화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그동안 진통을 겪었던 한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 결정에 대해 이날 입장문을 발표하고 “그간 사회적 대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온 노동계 대표 조직인 한국노총의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노총이 지난 6월1일 사회적 대화 탈퇴를 선언한지 5개월여 만의 일이다.
더불어 “변화와 혁신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시대적·국민적 요구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노사정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대화 복원을 위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