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없다, 직격 인터뷰②] 김성주 한국암환자 권익협의회 대표 “의사 단체들의 파업, 환자 중심 의료는 어디 있나”
환자와 국민이 볼모가 된 정부와 의사 단체의 싸움
지방의료 붕괴에도 서울 5대병원만 배불리는 정부 정책
지금 이대로 의사 늘리면 비필수 의료 쏠림현상 심화
의료단체와 비정부기구(NGO)를 중심으로 의사 수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에서 의사 수가 부족한 데다 지역별 의료 수준 격차가 심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선진국보다 우리나라가 의사 수도 많고 의료 수준도 수준급이라며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한 의사 수를 늘리자는 목소리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의사 수 부족으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의사 수 부족과 관련해 전문가 연쇄 인터뷰로 해법을 찾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보건복지부가 최근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했다. 이에 의사 단체(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가 똘똘뭉쳐 강한 반대 의사를 내보이며 보건복지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갈등은 봉합되지 않고 수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자칫 의사들이 파업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주 한국암환자 권익협의회 대표는 13일 뉴스투데이 인터뷰에서 "보건복지부와 의사 단체의 갈등으로 결국 환자와 국민에게 불편을 끼쳤다"면서 "갈등이 발생했지만 책임 전가만 할 뿐 환자와 국민에게 어떤 누구도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진정성 있는 사과도 없었다"고 질타했다. 김성주 대표는 "갈등의 골이 깊어져 사태가 악화된다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단체 행동도 고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환자의 권리, 혼자 주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함께 머리 맞대고 행동해야
한국암환자 권익협의회는 지난 2018년 소위 '웃픈' 상황에서 발족한 민간 단체다. 한국암환자 권익협의회는 구성원이 암 치료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 의료 현장에서 필수 의료 인력 부족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환자 입장에서 가장 현실성 있게 말할 수 있는 단체 중 하나다.
암환자들 상당수가 2‧3차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요양병원 입원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는 주기가 3주인데 그 기간 동안 환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2‧3차병원은 항암치료만 할 뿐 환자를 입원시키지 않아 요양병원에 입원해서라도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한다. 항암치료 받은 후 3~4일이 지나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각종 질병에 취약해져 요양병원에 입원해서라도 치료를 받고 싶어 한다.
문제는 보건당국이 요양병원 입원 규정을 여반장 식으로 자주 바꿔 암환자들이 의탁할 수 없게 해 놓았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요양병원에 입원한 항암치료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지난 2018년에 무작위로 환자를 선정해 진료비를 통으로 삭감해버렸다. 이 때문에 요양병원에서 쫓겨나간 사람들의 얘기를 들은 김 대표는 심평원에 개별 민원을 신청할 것으로 조언했다. 심평원이 "환자 개인의 민원은 들어줄 수 없고 단체만 소통이 가능하다"고 해 부랴부랴 한국암환자 권익협의회가 발족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의료서비스가 낙후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료 서비스 중심에 있는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로 돈 벌이를 할 수 있는 비 필수 의료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비 필수 의료에 의사들이 몰리다보니 필수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인력들의 소명의식도 굳건하지 않다는 게 김 대표의 지적이다.
김 대표는 "의료 현장에 의사가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면서 "대학병원 교수도 개원을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제주도에 거주하는 식도암 환자의 경우 제주대학교병원에 관련 전문의가 없어 치료를 위해 비싼 교통비를 지불해가며 서울 소재 병원을 내원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섬에 거주하는 사람 중 어로 작업을 하다 신체 일부가 절단됐는데 의료기관이 헬기를 보내주지 않고 공중보건의에게 할 수 있는 치료만 하라고 지시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 서울 5대병원만 키워주는 의료시스템 개선해야
지방 인구 소멸과 함께 지역 병원들의 폐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에서 필수 의료 병원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비해 서울 5대병원(삼성‧아산‧서울대‧연대‧성모)은 몸집이 커지고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김 대표는 "암 환자들이 관리 받을 병원이 없어 서울 5대병원에 몰리자 보건당국이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면서 "의사 수를 늘려 필수 의료 분야로 흘러들게 하는 것도 필요하며 지방 병원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당국은 의대 정원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면 지방 병원 필수 의료 인력을 확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 대표가 우려하는 서울 5대병원 환자 쏠림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1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당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2‧3차병원과 1차병원 간 괴리감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 대표는 "보건당국은 단순히 의사 수 1000명 늘리겠다는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다"면서 "하다못해 지역 병원 의사 수 부족을 다룬 통계도 없고 실질‧현실성 있는 대책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당국이 필수 의료 분야 인력을 늘리기 위해 10조 원을 쓴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성도 없다"면서 "늘 그랬듯 서울 5대병원에 예산만 지원해주는 전례만 반복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개탄했다.
■ 의대 증원 반대 의협 주장, 김 대표 "근거가 잘못됐다"
의협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우수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례로 의협은 OECD 가입 국가 평균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5.9회인데 우리나라는 14.7회로 높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미 의료서비스가 좋은데 굳이 의대 정원을 증원해 의사를 늘리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급여진료와 비급여진료를 동시에 하기 때문에 국민 1인당 진료횟수가 많은 것"이라면서 "미국과 일본은 급여진료와 비급여진료가 구분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가 국민 1인당 진료횟수가 높은 것은 돈벌이를 중심에 둔 병원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협은 또 환자들의 의료소송 때문에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개선한다면 자연스럽게 필수 의료 분야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의료소송에서는 반드시 의료인의 자문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제 식구 감싸기를 종용하는 꼴"이라면서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면 소송 걸 환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의료 사고에 대한 의사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강조했다. 대다수의 환자와 가족들은 의사가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아 억울해서 의료소송을 벌인다는 것이다. 최근 보건당국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소송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의사가 사과하지 않아 생기는 일 때문에 건보재정만 위협을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 의대 정원 증원 15년 후 내다보고 신중히 결정해야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을 증원했다가 수도권 의사 과밀화와 비필수 의료 인력 증가라는 역효과가 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 대표도 이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역 병원에서 공공의료를 진행하고 지방에 개원할 수 있는 의사를 늘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공공의대를 만들어 군 사관학교처럼 필수 의료 분야에 지역 병원에 의무 복무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필수 의료 분야 의사들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먼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면서 "무작정 의대 정원을 늘리면 15년 뒤 어떤 결과를 낳고 또 15년 뒤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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