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슬금슬금' 일본 증시로…주도 업종은 반도체
일본 니케이225지수, 사상 최고가 연일 경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덕…국내도 도입 앞둬
일본 증시서 반도체섹터, ETF 수익률 10%대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국내주식 투자자들이 미국에 이어 일본 증시로 몰려가고 있다.
일본 증시가 연일 신고가를 이어가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어서다.
1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초부터 이달 16일까지 국내 투자자(개인·기관 합산, 증권사 자기자본 투자 제외)의 일본 주식 순매수액은 1734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개인·기관은 국내 주식을 9조3290억원어어치를 판 것과 대비된다.
지난달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주식 순매수액(1억221만달러)을 보면, 지난해 같은달 순매수액(738만달러)보다 14배가량 많다.
최근 일본 증시의 활력은 한국의 벤치마킹 모델로 떠오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덕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3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인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자본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침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지난해 말까지 PBR 개선 방안 등을 낸 일본 프라임 시장 상장사는 40%(660곳)에 달한다. 이들은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ROE 개선과 함께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해 5월 일본 상장기업이 수립한 자사주 매입 규모는 3조2596억엔(약 30조2500억원)으로 종전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도 버블경제가 최고점이던 1989년 12월 29일 기록한 사상최고치(3만8915)를 턱밑까지 추격하는 중이다.
일본 증시 닛케이는 지난 16일 전장 대비 329.30포인트(0.86%) 오른 38,487.24로 거래를 마쳤다. 2거래일 연속 3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증권가는 단기간 급등에도 불구하고 엔저 지속과 정부의 증시 부양책 효과로 당분간 일본 증시의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은 올 연말 닛케이225지수가 40,000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일본 증시가 반도체 업종의 선전에 힘입어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주요 요인으로는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 일본 정부의 산업 지원이다.
일본 증시에서 연초 반도체 섹터의 상승률은 26.0%로 자동차섹터 22.6%, 미디어엔터 16.3%, 금융서비스 14.1%를 크게 앞선다. 대표적으로 일본 시총 4위인 도쿄일렉트론이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반도체 장비주들이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도쿄 증시를 이끄는 큰 손은 외국인 투자자다. 1월 일본 증시에서 1조9000억엔어치를 사들인 외국인이 지난주에도 6213억엔을 순매수했다.
소진웅 삼성증권 연구원은 "일본 반도체 업종 상승 뒤에는 AI발 고대역폭메모리 특수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부흥 정책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현재 밸류에이션에는 부담이 있으나, 글로벌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확대와 업황 회복이 기대되는 하반기를 고려할 때 일본 증시의 주요 동력은 여전히 반도체 업종"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증시가 개장한 이후 닛케이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도 상승세다. 올 들어 △ACE 일본 Nikkei225(H)’는 15.02%를 △TIGER 일본니케이225는 11.68% 올랐다.
기술주 중심의 토픽스(TOPIX) 지수를 추종하는 ETF도 질주 중이다. ACE 일본 TOPIX 레버리지(H)는 24.25%로 일본 편입 ETF 중 올해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또 △KODEX 일본TOPIX100은 11.38% △TIGER 일본TOPIX(합성H)는 11.02% 올랐다.
전체 증시를 이끄는 반도체주 상승률은 모두 고공행진하고 있다. TIGER 일본반도체FACTSET와 ARIRANG 일본 반도체 소부장 Solactive, ACE 일본 반도체 모두 10%대 수익률을 냈다.
일본 증시의 신고가 행진 속에서 코스피도 1% 넘게 올라 같은날 2,650선에 근접했으나, 여전히 한국 증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슈에 갇혔다.
또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대장주는 연초 대비 상승률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분석이다. 이 기간에 삼성전자 주가는 약 7% 하락했고, SK하이닉스도 4.4% 오르는 데 그쳤다.
물론 국내 반도체 대장주는 주로 종합 반도체 기업인 데 반해 일본 반도체 대장주는 대체로 반도체 장비주인 영향도 있다. 최근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일본 반도체 업체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수입이 불가능해진 중국이 첨단기술을 포기하고 구형 공정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일본 반도체 업체는 기존 고객에게 첨단 장비를 계속 판매하되 중국에는 구형 공정 장비를 판매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엔비디아가 이번 주 4분기(2023년 11월~2024년 1월) 실적을 공개한다. 전 세계 시가총액 3위에 등극하며 반도체 훈풍을 주도한 엔비디아인 만큼 이번 성적표에 따라 글로벌 증시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시아 증시에서 시총 1위는 TSMC인데 2위이던 삼성전자가 지난 15일 기준으로 일본 도요타에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의 이러한 랠리는 향후 글로벌 증시의 방향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업종의 성장세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산업 동향에도 중대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를 앞두고 있다. 국내 증시도 저PBR주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국 증시도 랠리에 동참하려면 주주환원 정책 참여 기업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주주환원 정책에서 행동주의 펀드 주주제안 증가, 지배구조 개선 논의로 순차적으로 확장될 가능성 높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집중 매수하는 종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