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평가 비용 업체 부담과 지나친 저가 경쟁 유도하는 국내구매사업 개선방안 마련 시급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근 국내 드론업체가 군이 요구한 성능에 맞춰 제작한 ‘근거리정찰드론’ 및 ‘해안정찰용 무인항공기’ 구매사업이 중국산 부품 사용, 시험평가 공정성 시비 등 이런저런 이유로 표류하고 있다. 이 사업들은 시험평가가 완료된 이후에도 기종 결정이 미뤄져 업체를 선정하지 못하거나 업체를 선정했음에도 제안서상 허위 사실이 드러나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이면에는 국내구매사업의 경우 시제품 제작을 비롯한 시험평가 소요 비용을 오롯이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데다, 2차에 걸친 가격 제안으로 지나친 저가 경쟁을 유도하는 현실이 한 몫을 차지한다. 입찰에 참여한 드론업체들은 수억 원의 돈을 투자해 시제품을 만들고 시험평가를 받지만,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손실이 너무 커서 영세한 업체일 경우 도산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 시험평가에 시제품 제작 등 큰 비용 발생하나 외국처럼 비용 보전 없어
국내구매사업에서 시험평가를 받으려면 업체는 통상 서너 개의 시제품을 제작하고 시험평가를 받는 기간 동안 필요한 인력과 장비 등을 지원한다. 이 과정에서 수억 원의 비용이 발생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지 않는다. 미국, 호주 등 외국에서는 업체가 시제품을 제작할 경우 소요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 주고 있다. 호주에 레드백 장갑차를 수출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시험평가용 시제품 제작비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송방원 우리방산연구회 회장은 “국내구매사업의 경우 시제품 제작비를 포함해 시험평가 관련 비용을 모두 정부가 보전해줘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면서 “중소기업 위주인 드론업계가 시험평가 비용 부담과 최저가 경쟁으로 점차 망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방산 전문가는 “구매는 완성품을 전제로 하는데, 방사청이 시제품 제작이 필요한 무기체계를 연구개발이 아닌 구매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드론구매사업도 방사청은 2∼3개 업체를 경쟁시키면서 시험평가용 시제품을 여러 대 요구했지만, 경쟁에서 탈락한 업체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사업을 수주한 업체는 양산 비용을 통해 간접 보상을 받을 수 있으나 탈락한 업체들은 시제품을 상용으로 판매할 수도 없어 결국 업체의 손실로 남는다. 현재로선 시제품 제작비용을 정부가 보전해 주는 제도가 없으니 방사청도 보상해줄 방법이 없다.
■ 기술경쟁 유도하는 종합평가도 저가 경쟁으로 가는 상황이어서 대안 필요
게다가 2차에 걸쳐 가격을 제안하게 하는 종합평가 방식이 저가를 유도하는 상황처럼 업체에 인식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종합평가 방식은 구매사업의 제안서 평가에서 최저가 경쟁의 문제를 보완하고 기술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나온 평가방법이다. 이 방식은 비용(가격)만 평가하는 최저가 경쟁방식과 달리 가격 대비 성능 배점이 30:70이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성능 배점 비율을 높일 수도 있지만, 실제 평가에서는 가격이 결정하는 구조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론상 성능평가 과정에서 경쟁 제품 간 성능 차이가 점수로 반영돼야 하나 기성품인 해외구매와 달리 국내구매는 군 요구 성능에 맞춰 신규로 제작하는 것이라서 경쟁 제품 간의 성능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성능평가는 대부분 평가위원이 정성 평가하기 때문에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으나 가격평가는 정량 수치로 상대평가하기 때문에 점수 차이가 상당히 크다.
게다가 최초 제안서 제출 시 입찰가격을 포함해 제출하지만, 시험평가와 협상을 거치며 일부 성능과 조건이 가감되면서 그 내용을 반영해 최종적으로 가격을 다시 제출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구매사업에 참여한 드론업체들은 방사청이 최종 가격을 받으면서 처음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저가로 입찰하도록 상황을 유도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즉 업체들이 2차에 걸쳐 가격을 제안받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생긴 오해라지만, 그런 생각이 반영돼 저가로 제안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으며, 성능평가도 별반 차이가 크지 않아 가격이 수주를 결정하는 확실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이처럼 최저가 경쟁을 피하고 기술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종합평가 방식도 결국 저가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 시험평가 비용 정부가 보전하고 비용 평가 하한선 마련해 저가 경쟁 막아야
이와 관련, 지난 6월경 방산업계는 제안서 평가 시 업체가 적정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가격평가 기준(정부가 산정한 기초금액 × 적정비율)을 산정하고 일정 비율별로 차등 점수를 부여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그러나 방사청(계약제도발전과)은 국내구매사업의 경우 국가계약법에 따라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를 낙찰자로 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가격평가 기준 설정은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결국, 방사청은 최저가 낙찰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것이어서 국내구매사업에 참여하는 드론업체들은 사업을 수주하려면 중국산 부품을 최대한 사용할 수밖에 없다. 또 시험평가 과정에서 제품의 성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번처럼 물의를 빚는 사태가 지속 발생하거나 아예 드론업체들이 군이 발주하는 사업에 등을 돌리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란 따가운 지적도 제기된다.
이제라도 방사청은 시제품 제작을 포함해 시험평가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 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 외국처럼 돈도 벌고 기술 개발과 시험평가 경험을 축적하는 유익한 기회가 되어야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는 위험한 투자가 되어선 안 된다. 이대로는 저가로 사업을 수주한 업체도 납품 실적만 챙길 뿐 남는 게 별로 없다.
또한, 국가계약법의 기본 원칙만 고수해 업체가 저가 경쟁으로 내몰리는 상황도 달라져야 한다. 국내구매사업은 거래가격이 형성된 완성품 구매와 달리 군 요구 성능에 따라 시제품을 신규로 제작하고 시험평가를 거쳐야 하므로 연구개발 사업처럼 비용 평가의 하한선을 마련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따라서 업계가 제시한 의견을 방사청이 긍정적으로 검토해 합리적 대응방안을 찾아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