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현대차그룹, 미국과 반도체·IT·자동차 사업 협력 강화 고삐 쥔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이 반도체를 비롯해 정보기술(IT), 자동차,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협력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낸다.
이를 위해 이들 주요 기업은 최근 한국에서 열린 제2회 ‘한미일 3국 경제대화’(TED)'를 통해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한 광폭행보에 나선다. TED는 3국 정·재계 주요 리더들이 모여 민주주의와 공동 번영을 위한 다각적 기회를 발굴하고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를 포함해 포괄적인 상호 이익 확대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하는 정책 세미나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서울에서 열린 TED에 참석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前) 미국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빌 해거티 상원의원(테네시주(州))을 비롯해 △존 튠(사우스다코타주) △댄 설리번(알래스카주) △케이트 브릿(앨라배마주) △에릭 슈미트(미주리주) △크리스 쿤스(델라웨어주) △개리 피터스(미시건주) 등 상원의원 7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 미국 상원의원과 국내 기업 총수들이 만나 이미 다방면에서 폭넓은 교류를 하고 있는 양국 기업이 향후 경제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에서 상원의원단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등을 접견했다.
삼성전자 영빈관인 승지원은 그동안 대규모 사업협력과 주요 사안 결정이 이뤄진 곳으로 알려졌다.
이를 보여주듯 이재용 회장은 2019년 6월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비롯해 △2023년 10월 LJF(이건희와 일본 친구들, 일본 협력회사 모임) △올해 2월 마크 저커버그 미국 메타(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모회사) CEO(최고경영자) 등이 승지원을 방문했다.
이에 따라 재계는 이 회장의 ‘승지원 경영’ 확대가 삼성의 △미래 신(新)사업 발굴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 강화 등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전자에게 가장 중요한 미국과의 협업은 단연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450억 달러(약 61조3000억원)를 투자해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조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9조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받게 됐다. 이는 미국 인텔, 대만 TSMC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액수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해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관련 영업사무소 2곳을 열어 미국 현지 영업망 강화에 본격 나섰다. 이와 관련해 한진만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은 영업사무소 개소 당시 미국 현지 주요 기관 관계자와 만나 협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미국 기업과의 대형 기업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전장(자동차 전기장비·장치) 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대형 M&A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초 주주총회에서 “기대하는 대규모 M&A는 아직 성사되지 못했지만 20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조만간 주주 여러분에게 (대형 M&A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기업 대형 M&A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만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 재판에 무죄를 판결한 1심에 검찰이 항소해 법정 다툼이 지속되고 있어 M&A가 아닌 기업 합작 가능성도 열려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일부 외신은 삼성전자가 지난 3월 미국계 다국적 냉난방·공기청정 솔루션 기업 ‘존슨콘트롤즈’가 매물로 내놓은 HVAC(냉난방공조) 사업 인수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미국 HAVC 기업 '레녹스'와 유통 전문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서울시 종로구 서린사옥에서 미국 상원의원들과 만나 양국 경제협력 증진 방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경계 단체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기도 한 최태원 회장은 이날 미국 의원들에게 SK를 비롯한 한국 기업에 대한 초당적 지원을 당부했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은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양국 AI(인공지능) 리더십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SK 에너지 사업도 글로벌 규모로 성장하고 있으며 전기차 배터리를 포함한 에너지 사업은 경제는 물론 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 발언대로 SK는 삼성전자와 함께 반도체 사업에서 미국의 핵심 협력국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미국 내 첫 반도체 공장 부지로 중부에 있는 인디애나주를 선정했다. 투자 규모는 총 38억7000만달러(약 5조2200억원)이며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이 최대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다.
인디애나주 공장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차세대 HBM(고(高)대역폭메모리) 등 AI 메모리 반도체가 2028년부터 본격 양산된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공장을 활용해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을 활성화하는 핵심기지로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미국에서 반도체뿐만 아니라 배터리 사업 확장도 추진 중이다. 이를 보여주듯 SK온은 2022년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와 합작사 ‘블루오벌SK를 공식 출범해 켄터키주에 2개, 테네시주 1개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최근 전기차 시장에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침체)이 불어닥치며 배터리 시장도 주춤한 모습이다.
그러나 시장조사기관 BNEF에 따르면 2027년 미국 전기차 예상 판매량은 450만대로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3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SK로서는 배터리 사업이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TED 세미나를 후원하는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직접 세미나에 참석해 한미 경제협력과 상호 이익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정 회장은 해거티 상원의원, 쿤스 상원의원 등과 기념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제협력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을 핵심 전략 시장으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를 상징하듯 미국 조지아주는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동화 핵심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6년 당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 사장은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서 기아의 미국 첫 생산기지를 뿌리내렸다. 이를 계기로 조지아주는 기아의 세번째 글로벌 생산 기지로 2009년 첫 가동한 이후 14년간 차량이 400만대 이상 누적 생산되는 등 기아의 북미 핵심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현대차그룹은 또 조지아주에 6조3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30만대에 이르는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설립을 진행 중이다.
공장 기공식에 당시 돈 그레이브스 상무부 부장관은 “이번 투자는 조지아에 수 천개 일자리를 만들고 스마트자동차 기술,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과 한국 간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무역협회는 한국이 첨단산업에서 미국과 공급망 연계를 강화하고 협력을 통해 양국간 시너지 창출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대미투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요시하는 첨단 산업 육성과 기후 변화 대응,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조하는 미국의 제조업 강화와 무역 불균형 해소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한국과 미국 산업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각국 주요 인사들이 서로 방문할 때 만나 현안이나 협력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정 중 하나”라며 “이는 협력을 추진 중인 사업에 속도를 내거나 향후 지속적인 협력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