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야생마 길들이기
[뉴스투데이=지상협 수필가] 나는 야생마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생각한대로 무작정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초원을 마음껏 뛰는 기질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행동하지 않았고 궁 하면 궁 한대로 그 상황을 극복하고 때로는 개척했다.
말은 장애물을 넘을 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 바로 앞에서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다 발목에 걸리면 넘어진다. 그것은 말한테 치명타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섣불리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일에는 마음과 다르게 순간에 결정하게 되고 그것으로 새로운 길을 만나기도 한다. 초원은 아니지만 말발굽에 먼지를 날리는 척박한 곳에서의 변화, 새로운 인생의 계기가 되었다.
우연히 지인의 권유로 봉사단체에 후원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 단체는 환경문제를 다뤘는데 음식물쓰레기 방지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을 하는 봉사다. 환경은 우리들 바로 앞에 닥친 문제이며 이웃의 어려움을 같이 해결하는 것 또한 해야 할 일이었다. 내게 멀리 있었던 일이 가까이 다가왔을 뿐 내 일은 분명했으므로 움직였다.
그러한 움직임이 쌓이다보니 몸담은 단체를 이끌게 되었다. 이끈다는 말은 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구심점이 되었다고 하면 더 부끄러운 것 같아서 이끈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나 언제나 껄끄러운 말이다. 그 이유는 조용히 하고 싶었던 일인데 확장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알려지게 되고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아직 할 일이 산적한데.
‘길거리 냉장고’라는 말이 낯설게 들리는 분이 많을 것이다. 우리 단체의 행동이며 마음이며 사회적 기여이다. 활발히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굶주림을 조금이나마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발걸음을 빠르게 한다.
‘필요한 냉장고가 내가 되자’ 라고 결심한 후 발걸음과 함께 달라진 것은 보폭이다. 그것을 넓혀야 그들에게 신선한 식자재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게 때문이며, 낮의 시간에다 밤의 시간을 보태서 움직였다. 푸드는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살아있는 식자재를 공급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순환고리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나의 안일이 사라졌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야생마의 초원은 다름 아닌 그들이 있는 기다리는 현장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가끔 오늘의 시간을 가족이 전부 이해해주는지 나에게 묻는다. 한참 뛰어 달리다가도 시선을 외면 할 수 없는 가족에게 마음이 머물면 자초지종을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하는 가 고민하는 때도 많다. 이해라는 게 좋은 일을 하면 다 이해되는 건 아니다. 한번 꺼낸 말이 씨가 되어 좋은 씨가 아닌 것으로 싹을 틔우게 되면 숨기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또한 숨기고 빼고 하는 것이 생기다보니 말문을 닫고 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누가 야생마를 길들이겠는가. 스스로 나를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봉사자로서 나서기 전에 경영자다. 그래서 봉사 또는 사업의 선택이 아니다.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시너지효과를 가지고 나눔을 해야 하므로 둘 중 어느 하나를 가볍게 할 수 없다. 굳이 다른 것을 찾는다면 사업의 키를 내가 쥐고 있다면 냉장고의 키는 나의 이웃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웃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니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을 해소시키려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 모두를 가족이 이해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이해를 멈출 수밖에 없다. 응원이 아니더라도 그냥 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봉사라는 그 자체만으로 이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욕심이다. 운동선수들이관중 모두의 응원을 다 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의 일도 그렇다. 아내와 딸과 아들 중에서 한 사람만의 응원이 크게 들린다면 그 힘으로 동력을 받는다. 모두 침묵으로 있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목표가 같은 사람들의 행진은 힘차다.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지칠 것 같으면 언제 보았는지 같이 받들고 힘을 나눈다. 힘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야생마처럼 뛰어 다니면서 터득했다.
야생마한테 우리 사회는 초원이다. 바람이 불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초원이다. 내가 초원 어디에서 꽃을 가꾸면 꽃밭이 된다. 꽃의 향기는 가둘 수 없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사람들의 삶을 향기롭게 한다.
나눔은 꽃이며 향기다.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면서 후회한 적이 없는 것은 꽃이며 향기인 나눔에 나또한 깨달아 나가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배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나의 마음 속에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나의 야생마 기질을 추켜세우며 스스로 뛰게 되는지 모르겠다. 야생마한테도 때로는 격렬한 응원이 필요하니까.
프로필 ▶ (사)재해극복 범시민연합 부산/경남 대표 / (사)부산 시민발전 재단이사 / 부산 불교교육대학 불교학과 회장 / (주)태성씨앤아이 대표이사 / 에코플라워 대표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