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김태규 기자] 대규모 적자 누적을 이유로 실손의료보험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들 중 기존 가입자를 위한 전환 상품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은 4세대 전환이 저조한 보험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압박에 나섰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 신규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 14곳(라이나생명‧신한라이프‧AIA생명‧푸본현대생명‧KDB생명‧KB생명‧DB생명‧미래에셋생명‧ABL생명‧동양생명‧AXA손보‧에이스손보‧AIG손보) 가운데 전환용 4세대 상품을 제공하는 보험사는 ABL생명과 신한라이프, 동양생명, KDB생명 등 4곳에 불과하다.
AIA생명과 라이나 생명은 전환용 상품을 제공하지 않을 계획이다. 실손 상품을 판매하지 않은 지 오래됐고 기존 가입자 수도 많지 않아 금융당국이 4세대 상품 판매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XA손보와 AIG손보, KB생명 등은 오는 4월까지 전환용 상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나머지 보험사는 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
실손보험은 국민 약 3900만명이 가입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보험상품이 됐다. 하지만 비급여 항목 과잉진료 등 손해율을 높이는 요소가 있어 보험사들은 막대한 적자를 안겨주는 상품이기도 하다. 또 손해율이 높아지는 만큼 가입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실제 실손보험의 손실규모는 2019년 2조3546억원, 2020년 2조2695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실손보험 적자 규모가 3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손보험 적자가 누적되면서 일부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1일 이 같은 상품구조를 합리적으로 개편한 4세대 상품을 내놓은 바 있다. 급여(주계약)와 비급여(특약)로 분리해 필수치료인 급여에 대해서는 보장을 확대하고, 환자의 선택사항인 비급여에 대해서는 의료이용에 따라 보험료가 할인 또는 할증되는 구조다.
금융위원회는 4세대 상품 출시에 맞춰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도 전환용 상품을 준비해 보험료 부담을 걱정하는 1~3세대 상품 가입자들이 원하면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손상품 판매를 중단한 보험사 대부분이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전환용 상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보험사가 전환용 상품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1~3세대 가입자들은 기존 가입 상품을 해지하고 4세대를 취급하는 다른 보험사에 신규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실손보험 신규 가입 심사가 까다로워져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다른 보험사에 신규가입 하는 경우 실손보험료 할인 혜택은 받을 수 없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1~3세대 가입자가 6월까지 4세대로 전환하는 경우 1년간 보험료를 50% 할인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같은 회사 내에서 전환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보험연구원, 보험협회 등과 함께 '지속가능한 실손보헙을 위한 정책협의체' 발족 회의를 열고 4세대 실손보험 판매 실적이 저조한 보험사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보험사의 실손보험 적자와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보험업계는 기존 가입자의 4세대 실손 전환을 위해 보험료 할인 혜택 제공과 온라인 전환 시스템 구축, 계약전환 유불리에 대한 가입자 안내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가 4세대 전환을 적극 추진하도록 전환 현황을 점검하고, 그 실적을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불이익을 주겠다고 예고한 만큼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실손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보험사들도 이전부터 전환 상품 제공을 준비 중이며,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품 전환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었다"며 "보험료에 부담을 느끼는 기존 가입자들이 장단점을 따져보고 문의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