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64)] 실패한 GOP과학화경계시스템 보강, ‘감시시스템’ 말고 ‘감지시스템’ 개선해야
군 수뇌부와 국방위 국회의원들 참석해 직접 성능 확인하는 ‘현장성능평가(BMT)’ 꼭 이뤄져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평상시 수시 오경보 울려 사건 당시 CCTV 영상 확인 없이 오경보 처리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020년 11월 3일 22사단지역 철책을 넘어 귀순했던 김모(30세)씨가 1년여 만인 올해 첫날 귀순했던 지역 인근의 철책을 넘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초유의 월북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와 언론은 ‘기강 해이’를 지적하면서도 22사단의 경계 책임구역이 타 사단의 3∼4배에 달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는 점 또한 원인으로 짚었다.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넓고 산악과 해안을 동시 담당하는 지리적 악조건을 극복하려면 과학화경계시스템의 효과가 어느 지역보다 중요한 부대임에도 지금까지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분석을 통한 보완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2012년 ‘노크 귀순’에 이어 2020년 ‘점프 귀순’, 2021년 ‘오리발 귀순’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22사단은 일명 ‘별들의 무덤’이 됐다.
특히 군은 2020년 귀순 사건 이후 5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2월말까지 과학화경계시스템을 보완했고, 이번 월북 사고 당시에 감지시스템과 감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경보가 울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당시 상황이 저장장치에 녹화되었음은 물론 주변의 3개 CCTV에 5차례나 식별된 사실도 조사 결과 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시간 가까이 경과한 후 열상감시장비(TOD)에 포착된 영상을 확인하고 귀순유도 작전을 전개하는 부실한 상황조치로 결국 신병 확보에 실패했고, 김모씨는 월북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왜 3시간 정도 지나서 그것도 과학화경계시스템의 감지시스템과 감시시스템이 아닌 TOD로 확인된 다음 상황조치가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이와 관련, 현지 부대의 상황병과 직접 통화한 복수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발생 당시 감지시스템에서 경보는 울렸지만 평상시 수시로 오경보가 울렸던 터라 CCTV 영상 확인도 없이 습관적으로 오경보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즉 장병들이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주 감시수단인 감지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게다가 2020년 귀순 사건 당시 현장을 점검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은 경보가 울리지 않은 원인을 광망 감지시스템의 오작동이 아닌 상단감지유발기 탓으로 몰아갔고, 이후 과학화경계시스템 보완 예산도 상단감지유발기 교체에 대부분 쓰였다. 본지는 당시 이 판단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기사(과학화경계시스템 미작동 논란, 광망 놔두고 감지유발기 탓?)를 보도했으나 군 당국은 개선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현재 GOP서 오작동 발생하는 ‘광망감지’보다 ‘장력감지’ 방식 더 우수
당시 기사에서도 언급됐지만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오작동(미작동 또는 오경보 빈발) 문제는 감지시스템에 있고 이번 월북 사고로 다시 한 번 사실로 입증됐다.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감지시스템은 수십 가지 종류가 있으나 크게 구분하면 선(線)감지 방식과 면(面)감지 방식으로 나뉜다고 한다.
線감지 방식은 울타리 전체에 2∼3가닥의 센서케이블 또는 센서를 설치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센서케이블이나 센서가 지나가지 않는 울타리 면적을 감지하기 위해 진동 감지를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동물 또는 식물에 의해 충격이 가해지거나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경보가 울릴 수 있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面감지 방식은 울타리 전체에 20∼30가닥의 장력선 및 센서를 설치해 감지하는 장력감지 방식과 광케이블을 뜨개질 하듯이 그물 형태로 짜서 울타리 전체를 덮는 광망감지 방식 등 2종류가 있다. 이들은 울타리 전체를 진동이 아닌 장력 또는 광신호의 변화로 감지하기 때문에 절단이나 굴절이 있어야 경보가 울린다. 즉 동·식물이나 바람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있음에도 상당수의 후방지역 부대들이 線감지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설치가 간편하고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線감지 방식은 몇 가닥의 센서케이블을 설치함에 따라 1㎞당 비용이 최저 3천만원에서 최대 1억원을 넘지 않는다. 반면, 面감지 방식은 최소 20가닥 이상의 케이블이 소요돼 평지는 3억원, 산악지역은 5~6억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GOP과학화경계시스템으로 面감지 방식인 광망감지 방식이 선정된 것이다. 그런데 광케이블은 동절기에 얼었을 때 충격을 받으면 케이블 내에 있는 광심선이 미세하게 깨져 감지신호가 점점 줄어든다. 이런 현상이 누적되면 경보가 울리지 않거나 오경보가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 통상 설치 후 2년 정도 지나면 오작동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 감시시스템이 ‘감지시스템’ 대체 못해…BMT 실시 후 검증된 제품 경쟁해야
이에 비해 장력감지 방식은 오작동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현재로선 가장 적합한 감지시스템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도 모든 공항은 물론 발전소, 화학공장, 제철소 등이 엄격한 성능평가를 거쳐 이 방식을 채택하는 추세다. 그러나 GOP과학화경계시스템 보강은 우수한 감지시스템 선택이 아닌 지능형CCTV 도입과 AI 분석 등 감시시스템 보완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감시시스템 보완이 ‘감지시스템’ 기능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번에도 3대의 CCTV에 5차례나 식별됐지만 인지하지 못했다. 상황병이 여러 개 모니터를 장시간 계속 확인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지시스템이 제대로 감지해 경보를 울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만 상황병이 CCTV 영상을 확인하게 되고 사람임이 밝혀지면 필요한 상황조치가 이뤄져 경계 작전이 성공하는 것이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의 또 다른 문제는 후방지역 중요시설에 설치되는 경우다. 대부분 예산 절감을 이유로 감지시스템을 저가의 線감지 방식만 입찰이 가능하도록 예산을 책정하거나, 최저가 입찰을 통해 성능이 우수한 제품 도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이와 같이 사업을 진행하면 빈번한 오작동으로 이번처럼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있어도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된다.
향후 군이 경계 실패의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과학화경계시스템 사업 추진 이전에 ‘감지 방식별 현장성능평가(BMT)’를 공개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 BMT에 군 수뇌부와 국방위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어떤 방식이 가장 GOP 경계근무에 적합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계약을 담당한 방위사업청도 검증된 제품들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결국 사건이 터져야 감지시스템 오작동 문제가 드러나지만 지금껏 정확한 원인 진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업 추진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경계 실패는 계속돼 왔다. 이번 기회에 기술력이 뛰어난 감지시스템이 도입될 수 있도록 민간의 도입방식을 참고해 엄격하고 공정한 평가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계 실패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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