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46)] 살벌한 분위기의 전입신고 후 피어난 존경심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04.20 18:21 ㅣ 수정 : 2022.04.20 18:21

태풍전망대 등 대표적인 안보관광지인 무적태풍부대의 첫인상은 단호·엄격한 솔선수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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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소령시절 모습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징명칭이 ‘무적태풍부대’인 28보병사단은 6.25남침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18일 충남 논산에서 창설되었으며, 경례구호는 '태풍'이다.

 

부대마크는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폭풍우를 휘몰아치며 북진하는 태풍의 위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투에 임할때에는 북진의 교두보로서 적의 심장부를 일격에 무너뜨리겠다는 부대원의 결의를 담고 있다.

 

부대마크의 좌회전은 "영원불멸"을 상징하며, 바깥원은 "견적필살" "천하무적"의 총구를, 청색 바탕은 "정의"와 "평화"를, 백색은 "자유"와 "백의민족"을 의미한다.

 

창설 이후 강원도 사창리, 포천, 양평 등 4차례의 이동있었고 1966년 현 지역에 배치되어 중서부 전선의 최전방 GOP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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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보병사단 마크와 기념 코인 [사진=28사단]

 

부대가 위치한 연천군은 대표적인 안보관광지이다. 6·25남침전쟁 후 대부분이 수복지역으로 북쪽에서 흘러오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한탄강 유원지와 전곡 선사시대 유적지, 재인폭포, 감악산 비룡폭포 및 GOP지역 필승교 옆의 태풍전망대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고려 태조와 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경왕)·충렬왕·공민왕과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 외 15인에게 제사를 지냈던 숭의전이 있고, 태풍전망대에서 보이는 비무무장지대에는 6·25남침전쟁시 치열한 전투로 유명한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도 있어 역사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헌데 부대창설 후 지난 69년 동안 44회에 걸친 대간첩작전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적 사살 63명, 생포 8명, 장비 노획 1,308점이라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던 28보병사단은 국방개혁 2.0으로 2025년에 해체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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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28사단 사령부 본청 모습 [사진=28사단]

 

최전방 부대의 가을은 에너지 절약 운동으로 한겨울보다도 더 추위에 떨며 근무

 

쌀쌀한 가을 바람이 엄동설한의 겨울을 재촉하던 1991년 10월말 무적태풍부대 사단장실 앞에 필자는 사단 전입신고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최전방 부대의 가을은 청명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상쾌한 가을이 아니라는 것을 군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왜냐면 시원하고 상쾌한 날씨라기 보다는 이미 겨울이 성큼 다가와 옷깃을 여미며 삭풍이 몰아치는 추위와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에너지 절약 운동으로 사무실에서는 난로도 못켜게 하여 내복까지 속에 껴입고 잠바까지 걸치며 난로를 피우는 한겨울보다도 더 추위에 떨면서 근무하는 실정이었다.

 

육사 3년 선배인 사단 인사참모는 사단장이 매우 까다로운 분이니 각별히 실수 없도록 잘하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며 오히려 필자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사단 전입 신고를 위해 따뜻한 남쪽나라였던 수방사에서 출발한 필자는 내복도 안입고 야전상의만 걸치고 도착한 탓인지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에 적응이 힘들었고 인사참모가 긴장하며 던진 조언에 더 위축되었다.

 

긴장한 인사참모의 구령에 맞춰 몇 번의 신고 연습을 반복하고는 사단장에게 전입신고를 위해 굳게 닫혀있던 사단장실 문을 노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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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당시의 재향군인회 회장 고(故) 박세환(학군1기) 예비역 대장과 부회장으로 취임한 이재관(육사21기) 장군 모습 [사진=연합뉴스/김희철]

 

엄격하고 단호하며 거칠어 보이지만 본인이 가장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존경스러워

 

사단장실로 들어서자 난로도 켜지않은 싸늘한 사무실에서 두꺼운 장군용 잠바를 걸치고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던 사단장은 함께 들어온 인사참모를 쬐려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짝 긴장하던 인사참모가 ‘사단장님께 신고’라는 구령을 붙였고, 이어 필자는 경례를 하며 “태풍, 소령 김희철은 1991년 10월28일부로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전입 및 보직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라고 우렁하게 외쳤다.

 

신고를 받은 사단장은 자리에 앉으며 ‘차한잔 가져와’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필자가 사단장 앞 테이블에 앉자 문밖으로 나가려는 인사참모를 다시 불러 세웠다.

 

“인사참모, 넌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야? 지난번 소원수리 내용에 대해 후속조치를 빨리 하라고 지시했는데 깜깜 무소식이야 .. 멍청하게는 ...”라며 다시 쏘아 보았다.

 

나가려던 인사참모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칫하다가 지금 보고서가 준비되어 있으니 곧 보고드리겠다면서 절절매며 더듬거렸고, 부동자세를 버텨주던 무릅까지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의 신고 자리에서 필자는 사단장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도 안나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뜨거운 커피는 방안의 차가운 온도와 분위기 때문에 아이스 커피가 되어 버렸다.

 

지휘관들은 자신만의 색(色)을 가지고 있다. 전전 사단장 이상호 장군은 ‘교육훈련’을 강조 했고, 직전 사단장 김길부(육사20기) 장군은 ‘전투준비’위주로 부대를 지휘했다. 당시의 사단장 이재관(육사21기) 장군은 ‘부대관리’를 중점으로 안전 사고 예방에 치중하여 지휘했다.

 

아마도 이재관 사단장은 ‘부대관리’를 강조하며 필자에게 사단 전체를 총괄하는 차원의 업무를 하는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무리한 부대운용에 의해 사고를 유발시키지 않도록 전입 신고 면담에서 지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허나 엄격하고 단호하며 거칠어 보이지만 에너지 절약을 강조할 때에는 사단장 본인이 가장 먼저 사무실에서 난로를 피우지 않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는 추위를 견디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볼 때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웠다. 

 

이 장군은 사단장을 마치고 승승장구하여 4성 장군으로 진급했고 제1군사령관을 마치고 전역하여 재향군인회 부회장까지 역임하였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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