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38)] 부대이전사업을 통해 얻은 보람과 애환(하)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2.01.01 17:04 ㅣ 수정 : 2022.01.01 17:04

마지막 열정을 새로 이전하는 남태령 부대의 모든 경계 시설을 구축하는 것에 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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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많은 군인들이 선호했던 수방사 근무도 어느덧 1년하고도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생활은 정말로 지옥이었다. 

 

그동안 곁눈질 못하도록 만든 안대를 착용한 경주마처럼 너무도 직선 코스로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하지만 끝없는 바닥으로 향해 자유낙하 속도로 추락하는 위치에 처음 서서 벼티다 보니 한시라도 더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장교들은 일정 기간 지나면 보직을 옮겨야 한다. 일명 계획 인사로 당시에는 전방 생활을 어느 정도 근무하면 후방으로 가야하고, 후방 근무 2년이면 다시 전방으로 가서 근무해야한다.

 

벌써 필자의 후임자로 육군대학 교관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신원식 동기가 거론되고 있었다. 훌륭한 동기에게 자리를 인계하는 것은 좋지만, 같은 부서 또는 인접부서의 선후배들이 필자에게 기대한 것에 못 미친 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은 슬픈 일이었다.

 

특히 생도시절 같은 중대에서 아껴주었고 또 수방사 작전과로 추천해준 이윤배(육사 35기), 김영주(육사 36기)선배와 전방에서 같이 근무하며 이끌어주며 멘토 역할을 했던 김형배(육사 34기)선배에게는 더욱 죄송했다. 

 

반면에 가혹하리 만큼 호된 상급자 덕택에 너무 힘들게 생활했지만 추락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다보니 필자의 고통을 이해하며 관심과 배려를 보내주는 선배와 동료들도 많이 생겼다.

 

수방사 근무를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그때, 필자의 마지막 열정을 새로 이전하는 남태령 부대의 모든 경계 시설을 구축하는 것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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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태령 수방사 정문 담벽과 강화도 성벽에 설치된 총안구 모습 (사진=김희철) 

 

진지 위치와 설계도 모형까지 사전에 보고하여 나중에 또 질책을 받는 후환이 없도록 노력도...

 

관악산 줄기를 끼고 있는 남태령은 암벽 위주의 산악을 포함하여 과천으로 넘어가는 양호한 도로망을 접하고 있다.

 

따라서 원래 있던 기존의 진지를 참고하고 각 부대의 새로운 주둔지와 인원수를 고려하여 부대별 담당 책임지역과 초소 위치까지 두발로 직접 확인하며 선정하여 공사를 진행했다.

 

특히 도로변에 설치한 담벽에는 강화도 및 한양도성벽 처럼 총안구를 설치하고 밖에서 눈치 못채게 보안시설 간판으로 총안구를 가리며, 유사시에는 가림막을 제거하고 총안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또한 평시 경계초소는 높은 울타리 넘어도 관측할 수 있도록 한양도성길 경계초소와 GOP 근무초소를 참고하여 고가초소로 구상하여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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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악산 한양도성길 경계초소와 GOP 고가초소 모습 (사진=김희철) 

 

헌데 울타리가 전부가 아니였다. 본청과 상황실 벙커 앞에도 경계진지를 구축했는데, 상황실장으로 영전한 전 00과장에게 진지 위치와 설계도 모형까지 사전에 보고하여 나중에 또 질책을 받는 후환을 제거하려고 노력도 했다.

 

물론 본청과 상황실 앞에는 주변 환경과 미관을 고려하여 이동식 가각진지와 화단진지로 준비하여 공사업체에게 설계도면을 맡겼다.

 

사전에 보고한 진지 위치와 설계도를 확인하면서 공사를 담당한 업체를 독촉하면서 거의 매일 남태령으로 출퇴근했다. 본대가 이전하기 전에 모든 경계초소를 완료하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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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방사 상황실 앞에 설치한 것과 유사한 이동식 가각진지와 상황실에서 서울시 방위협의회 임원들에게 훈련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김희철)

 

심사숙고 후 부연하지 않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적시적인 지시가 가장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업무 보장 

 

드디어 터졌다. 상황실 앞의 화단 및 가각진지가 완성되어 상황실장이 확인하는 순간 그의 독설이 또 시작되었다. 

 

사전에 설계도면과 채색까지 모두 검토를 받았는데 채색이 잘못되었고 형태가 맞지 않으니 다시 만들어 오라며 필자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가각진지를 제작해온 업자도 안절부절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났지만 부족한지 이젠 울타리 진지도 확인하겠다며 수행하라고 했다. 

 

그동안 매일 밤낮을 출퇴근하며 현장을 확인했던 필자를 더 곤혹스럽게 만들려는지 후임 과장도 함께 따라오라며 앞서 나갔다.

 

담벽진지에 도착해서는 공사 업자가 구축한 진지를 보며 높이가 안맞고 방향이 틀렸다며 발로 뭉개버렸다. 시멘트가 아직 굳지않은 진지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담벽진지를 담당한 공사 업자도 그의 돌출행동을 보면서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는 설계도를 펼치며 뭐가 잘못되었냐고 따져 물었다. 상황실장은 필자를 돌아보며 공사 업자를 더 능력있는 회사로 바꾸라고 고함을 쳤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행한 과장과 필자를 남겨 놓은 채 휙하니 상황실로 돌아갔다.

 

현장에 남겨진 필자는 본대 투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조속히 공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우선 공사 업자들을 달래어 진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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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변과 상황실 앞이 설치한 이동식 가각진지 (사진=김희철)

 

상황실장의 돌발 행동은 재공사하는 불필요한 예산과 시간을 낭비했다. 사전 검토시에 심사숙고 후 정확한 지침을 내리는 것이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부연하지 않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적시적인 지시가 가장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업무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출 행동적이고 가혹하리만큼 호된 상황실장이자 전 00과장이지만, 많은 것이 부족한 필자에게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업무를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아무튼 현재의 남태령 수방사의 각 진지는 이전 초기에 이러한 시련과 애환 속에 완성되었고 30년이 지난 오늘도 작은 보람으로 다가온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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