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69)] SG생활안전, K5방독면 코틀고무 전량 교체하는데 ‘하자’ 아니라고?
양개 K5방독면 제조업체 제품 면밀히 비교해 차이점 정확히 식별하고 적절한 조치 취해져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K5방독면 제조업체 간 최초로 방독면과 수리부속품 호환성 문제 발생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육군훈련소 훈련병이 사용하던 K5방독면의 들숨날숨용 ‘코틀고무’가 망가져 교체 수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수리부속품인 코틀고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코틀고무와 연결구 링의 치수가 맞지 않아 결합이 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육군은 사용자 불만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지난달 11일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이하 국기연)에서 ‘사용자불만심의위원회’가 열렸다.
K5방독면은 ‘한컴라이프케어(구 산청, 이하 한컴)’가 최초로 연구개발에 성공해 군에 제조·납품했고, 치수가 맞지 않는 코틀고무 등은 ‘SG생활안전(이하 SG)’이 제조·납품했다. SG는 K5방독면 초도양산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무리하게 추가 방산업체 지정을 강행한 CJ그룹 계열사다. 이 위원회에 출석한 SG 관계자는 호환성 문제가 발생한 점에 유감을 표명하고 전량을 다시 제작해 교체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안은 국방규격 치수 불일치 문제로 보인다. 통상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규격 오류인지 제작 오류인지를 정확히 따져서 규격 오류라면 규격을 정비하고 제작 오류라면 하자 판정을 통해 적법한 하자 보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위원회는 호환성 문제임을 확인하고도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기자가 국기연 담당자에게 문의한 결과, “통상 자체 판단이 애매할 경우 사용자불만심의위원회를 여는데 이 사안은 위원회에서 하자가 아니라고 결정됐다”면서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임의로 설명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참고치수 운운하며 규격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를 지적하는가 하면, 방독면 제조업체가 2개로 늘어나면서 수리부속품의 호환을 엄밀히 따져 품질 검사를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SG는 지난해 2월 4일 방사청 화생방사업계약팀에 방독면 46개 품목의 견본지원 협조 요청까지 한 사실이 있다. 그럼에도 제조업체 간 코틀고무와 연결구 링의 치수가 달라서 방독면을 해체해 기준에 맞는 코틀뭉치로 다시 교체하는 작업이 필요해진 것이다. 구형 K1방독면의 경우 2008년 추가 방산업체 지정으로 제조업체가 2개로 늘었지만 지금까지 수리부속품의 호환성 문제는 발생한 적이 없었다.
■ 업계 일각, “호환성 문제는 방사청의 무리한 추가 방산업체 지정에 기인” 주장
하자 판정을 받게 되면 법적·계약적으로 해당 기업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사용자 불만이 공식 제기될 경우 긴장할 수밖에 없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하자 판정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한다.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국기연이 SG로 하여금 해당 부품을 전량 교체하게 하면서 해당 부품에 대한 하자 판정을 하지 않은 것은 SG에 대한 특혜성 조치라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호환성 문제가 발생한 근원적 이유는 방사청이 무리하게 추가 방산업체 지정을 추진한데 기인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통상 추가 방산업체 지정은 개발업체(기존 방산업체)를 통한 충분한 후속양산 납품이 진행되고 정비·유지보수 등을 통한 안정화 단계를 거친 이후 군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져 왔다.
연구개발 제품의 초도양산 단계에서 추가 방산업체 지정이 진행될 수 없는 이유는 개발업체에 대한 최소한의 지위 보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초도양산 단계에서 조달원을 추가로 확보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개발업체 외에 엄격한 품질 보증을 담보할 수 있는 업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기업 계열사인 SG를 추가 방산업체로 지정하는 과정은 전혀 상식과 관행에 맞지 않았다. 방사청은 2014년 12월 K5방독면의 국방규격을 제정하고 방산물자로 지정했으며, 2015년 7월 산청을 방산업체로 지정했다. 그런데 산청의 초도양산 납품이 완료되기도 전인 2016년 7월 SG는 K5방독면에 대한 추가 방산업체 지정을 신청했다. 방사청은 SG의 신청을 추진하기 위해 K5방독면에 적용한 핵심기술 특허의 무상 양도를 산청에 요구했다.
하지만 산청은 법적 근거가 없는 요구라고 이를 거부했다. 이와 관련하여 2017년 5월 방사청 법무실도 업체에 무상 양도를 요구할 법적·계약적 권리가 방사청에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한컴그룹이 산청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컴 경영진은 2019년 1월 방사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핵심기술 특허에 대한 무상실시권을 허여했고, 방사청은 2019년 2월 SG를 추가 방산업체로 지정했다.
■ 호환성 문제이나 불량방독면 제조 납품 전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
SG는 방산업체 지정을 받은 후 9개월이 지난 2019년 11월 K5방독면 3차 양산사업 지명경쟁(산청/SG) 입찰이 있었지만 방사청의 요청에도 끝내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SG의 제조능력이나 기술숙련도에 문제가 있었기에 입찰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지 생산역량을 갖추었으면서도 입찰에 참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시 방사청은 방산물자를 생산할 의무가 있는 SG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SG는 2002년 국민방독면 41만개를 불량품으로 납품하여 43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업체다. 또한 SG가 2012년, 2014년, 2015년에 납품한 K1방독면 중 80%에 달하는 물량에서 전성배기변(음성전달기능품) 및 음료 취수장치 누출 등의 불량이 발생했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함유된 60만개 정화통 결함 문제도 있었다. 당시에도 방사청은 SG에 제대로 된 처벌과 책임을 부과하지 않았다.
이번에 육군이 사용자 불만으로 제기한 K5방독면 수리부속품 문제는 외견상 사소한 치수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과거 SG의 불량방독면 제조 납품 전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게다가 아직 사용자 불만이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K5방독면 렌즈 또한 SG 제품이 한컴보다 소재의 품질과 투명도 등에서 차이가 난다는 얘기도 나온다.
차제에 SG와 한컴이 생산한 K5방독면을 면밀히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확히 식별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아울러 방산업체 추가 지정 요건과 관리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정해 연구개발에 성공한 업체에 대한 최소한의 지위가 보장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연구개발에 성공한 업체의 지위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업체도 무기체계 연구개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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