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근접방어무기체계 ‘골키퍼’의 국내 창정비 중단 사태, 바람직한 해법 강구에 주력해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국내업체 최초 도전한 창정비 사업, 인건비 낮아 더 이상 추진 어려워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해군 함정에 장착된 근접방어무기체계(CIWS)인 ‘골키퍼’의 창정비 추가 계약이 2년 가까이 중단되고 있다. 현재 17문 중 8문의 창정비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그동안 창정비를 맡아온 LIG넥스원이 더 이상 적자를 감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해군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골키퍼 창정비의 방산물자 지정을 추진했으나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함정에 접근하는 적 항공기나 대함미사일을 요격하는 ‘골키퍼’의 창정비는 해외도입 무기체계의 국내 창정비로선 최초의 사례다. 이것이 성공해야 국내기업들이 해외도입 무기체계의 창정비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대다수 해외도입 무기체계는 해외에서 창정비가 이루어져 비용도 많이 들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 따라서 유사시 적절한 대응이 어렵고 이로 인한 안보 공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처음으로 국내업체가 도전한 창정비가 골키퍼이다. 네덜란드 탈레스에 기술 인력을 파견해 정비 기술을 이전 받은 LIG넥스원은 우수한 창정비 능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창정비는 부품을 거의 외국에서 구매하기 때문에 대부분 비용은 인건비가 차지한다. 방산물자로 지정되면 일반물자일 경우보다 인건비가 상승해 업체의 적자를 메꿀 수 있으므로 해군은 방산물자 지정을 추진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 30일 개정된 ‘방위산업물자 및 방위산업체 지정 규정’ 제10조(방산물자 지정 관련 국산화율 검토) ②항에 따르면 국내에서 정비하는 국외 도입물자는 국산화율이 50% 이상인 물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창정비에 소요되는 부품의 국산화가 이뤄져야 방산물자 지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외업체가 이미 개발한 완제품에 국내 부품을 상당수 포함시키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 방사청,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 검토한다지만 실제 결과와는 달라
박영욱 한국국방기술학회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열린 글로벌항공우주산업학회 세미나에서 창정비 사업 관련 발표를 통해 “이 조항으로 인해 방산물자 지정을 받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반물자로 원가 적용이 되면서 실제 임율의 약 77%만 적용 받아 경제적 손실이 크기 때문에 국내 방산업체들이 창정비 사업 참여를 주저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당시 기자가 방사청 담당자에게 문의하자 그는 “제10조 ③항에서 사업의 특성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 방산물자로 지정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또한 “제9조(방산물자 지정 시기) ⑧항이나 제11조(방산물자 지정 형식 및 범위) ⑤항 등도 그와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해당 사업이 국내 정비 능력 개발에 도움이 된다면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방산 전문가들은 “제10조 ③항의 ‘사업의 특성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란 표현은 모호하며, 상황에 따라 방사청의 입장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알 수 없다”면서 “현 조항에 ‘국산화율이 낮은 타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란 표현을 추가 삽입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별도로 마련해 방산물자·업체 지정 규정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규정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방산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일이 방사청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했다. 제10조 ③항에 의하면 사업의 특성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 방위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의 방산물자 지정에 관한 심의·조정을 거쳐 방산물자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9일 개최되는 이 위원회에 상정하려던 골키퍼 창정비 안건이 방사청 내부 검토 과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 잘못된 선례 만들면 향후 어떤 업체도 창정비 사업에 도전하지 않게 돼
이제 골키퍼 창정비가 가야 할 길은 다음의 3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LIG넥스원이 계속 적자를 감수하고 창정비를 맡는 방법, ② 해외 원제작사 정비로 되돌려 현재보다 2∼3배 비싸고 오래 걸리는 창정비를 추진하는 방법, ③ 4∼5년 후 개발 완료될 예정인 국산 CIWS로 대체할 때까지 해군이 창정비 없이 버티는 방법 등이다.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은 정부가 업체에게 말도 되지 않는 갑질을 하는 모양새이고, 세 번째 방법은 해군이 안보 공백을 버젓이 알면서도 좌시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결국 두 번째 방법뿐인데, 이것 또한 국내 창정비 능력이 우수함에도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해외업체에 맡기는 것이니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이 경우 원제작사인 탈레스는 창정비 사업을 수주한 후 LIG넥스원에 하도급을 줄 가능성도 높다.
제일 큰 문제는 해군이 최초에 골키퍼 국내 창정비를 추진하면서 방산물자 지정이 되도록 만들 테니 일단 하라고 업체에게 강권한 것이다. 해군은 권한도 없으면서 업체에게 마치 해줄 수 있을 듯한 얘기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이미 문제가 불거져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방사청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것과 관련된 방산물자 지정 규정도 결국은 국산화율을 높이자고 개정한 것이다. 그런데 국산화율 비중을 너무 높게 설정해 국내 최초로 해외도입 무기체계의 창정비 능력을 갖춘 업체가 더 이상 창정비를 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선례가 만들어지면 국내업체는 어느 누구도 창정비에 도전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해당 규정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고 당연히 부품 국산화율 견인 효과도 나타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해군은 함정의 전력 공백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현재 감사와 책임에 자유로우면서 가능한 해법은 방산물자 지정 외에 없어 보인다. 다른 방식은 모두 특혜 시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방부차관과 방사청장이 공동 주관하는 ‘방위사업협의회’에 이 사안을 상정해 전력 공백을 막는 합리적 해결책 논의와 함께 향후 창정비 사업의 발전방안도 모색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