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정부가 올해 400조원 규모로 성장하는 퇴직연금 시장 경쟁 촉진에 나서면서 은행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대규모 ‘머니 무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은행권이 공 들이고 있는 비(非)이자 부문에서 퇴직연금 수수료가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한 만큼 경쟁력 제고를 통한 시장 선점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은행들은 고유의 강점인 ‘안정성’ 중심의 경쟁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가지고 있는 상품은 그대로 둔 채 운용하는 금융사만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연금 상품 실물 이전 방안’을 마련·발표할 예정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2019년 212조2000억원으로 200조원을 넘어선 뒤 2021년 295조6000억원, 2022년 약 336조원까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시장에선 올해 4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은 빠르게 몸집을 키워가고 있지만 저조한 수익률과 경쟁 부재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이에 가입자 중심의 체계 개편으로 시장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번 정책은 퇴직연금 계좌 이동 시 가입자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설계될 전망인 만큼 금융사 간 고객 유치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이미 증권사 등은 전문 인력 배치 등으로 참전 준비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은행권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의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적립금 기준)은 51.5%로 과반이 넘지만, 여전히 1%대에 머무르는 ‘쥐꼬리 수익률’이 고객 이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3가지로 나뉜다. 적립금 비중이 가장 높은 DB형 기준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3년 수익률은 1.28~1.44%다.
DC형과 개인형 IRP로 가면 0%대 수익률이 수두룩하다. 현재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나 물가 상승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사실상 적자다. 실제 원리금 비보장 방식으로 가면 마이너스(-) 수익률도 나온다.
전통적으로 퇴직연금 시장은 대형 은행과 보험사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으나, 본격적인 업황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오는 7월 본격 시행되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도 시장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퇴직연금 시장 경쟁에서 은행권은 강점으로 꼽히는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수익률도 제고하는 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 고객 특성상 원금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 수익을 내는 보수적 투자 선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초장기 상품이고 노후에 쓸 자금이기 때문에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안정성도 빼놓을 수 있다”며 “투자의 개념으로 봤을 때 퇴직연금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인데, 생각보다 안정성을 우선으로 해 은행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설명했다.
은행 입장에선 퇴직연금 시장은 중요한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특히 영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이자 수익 의존도 낮추기에 한창인 은행들에겐 퇴직연금 수수료가 중요한 비이자 수익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1598억원과 1563억원을 퇴직연금 수수료 수익으로 챙겼다. 하나은행(1161억원)과 우리은행(1084억원) 역시 퇴직연금 운용으로 1000억원대 수익을 거뒀다. 시장 흐름을 봤을 때 수익 성장 전망도 밝은 상황이다.
시중은행 퇴직연금 부서의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시 금융 소비자들의 권익 증진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퇴직연금은 매년 약 20%씩 성장하고 있다. 고객에게는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제공하고, 장기적인 거래를 통한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