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97)] 중소기업에 불리한 대기업 중심의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방식 개선 필요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3.10.04 10:53 ㅣ 수정 : 2023.10.04 11:19
제품의 핵심기술 평가에 주안점을 두지 않는 데다 중소기업 참여 가점도 대기업과 차이 없어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달 20일 한국방위산업학회는 충남대 국방연구소와 공동으로 서울시 용산구 육군회관에서 K-방산 지속 성장을 위한 방산기업 경쟁력 강화 및 수출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방산 중소기업 수출경쟁력 향상과 관련한 연구과제를 진행 중인 심행근 충남대 교수는 ‘현행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할 경우 제안서 평가방식의 문제를 제기했다.
■ 중소기업 기술력 뛰어나도 대기업에 유리한 정량평가 등으로 수주 어려워
심 교수는 “기존의 방산 중소기업 관련 제도는 중소기업의 역할을 부품 공급자로 상정하고 있어 소형 완성품 전문업체로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육성책이 미비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이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개발·공급이 가능한 완성품 분야에도 대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때 현행 제안서 평가방식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불리한 입장이다”라고 지적했다.
현행 제안서 평가방식은 기술능력 평가(80점), 비용 평가(20점), 가·감점 평가 등 3가지로 구성되는데, 기술능력 평가 시 해당 완성품의 실질적인 개발 및 생산 능력보다는 업체의 규모에 의해 좌우되는 정량적 항목이 많아 대기업에 유리하다고 한다. 심 교수는 “중요한 평가요소인 보유기술도 해당 완성품에 필수적인 특정기술이 아니라 넓은 범위의 연관기술을 포함해 평가함으로써 대기업은 특정기술이 부족해도 좋게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감점 평가의 경우 중소·중견기업 참여 가점이 있지만,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관점에서 마련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컨소시엄 구성 방식을 통해 우회적으로 제안하면 별다른 차이가 없어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완성품을 개발·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특정품목의 개발실적 및 개발기술 보유 수준이 평가의 핵심이 되어야 하나 신용평가 등급, CMMI 인증 등급, 참여 전문인력(석·박사급) 숫자 등 대기업에 유리한 정량평가와 제안서 작성 스킬이 지배적인 평가요소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현행 제안서 평가방식으로는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뛰어나도 대기업에 유리한 정량평가 등으로 인해 사업을 수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직접 경쟁하면서 우수한 중소기업 육성되지 못해
실제로 2015년에 완성품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하는 상황이 최초로 발생했고 그 결과 해당 제품을 오랫동안 개발해와 핵심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던 중소기업이 한 번도 그 제품을 개발해본 경험이 없는 대기업과 경쟁해 수주에 실패했다. 이후에도 몇몇 사업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방산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는 대기업과 직접 경쟁하고 있어서 특정 분야별로 우수한 중소기업이 육성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은 완성품을 직접 수출하는 사례가 발생하기 어렵고 내수 시장에서도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게 된다.
게다가 대기업은 개발비용을 저가로 제시해 사업을 수주한 다음 중소기업보다 높은 대기업의 원가구조를 양산원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전체 양산비용이 높게 책정된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심 교수는 “개발비용 평가점수를 낮추고, 양산목표가를 평가점수에 포함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이 경우 대기업의 경쟁력도 유인할 수 있어 방산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사업을 수주한 업체가 개발 완료 후 제시했던 양산목표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존 평가결과가 잘못된 것이란 문제가 발생하고, 탈락업체의 민원제기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양산목표가를 평가에 포함하는데 신중한 입장이었다.
■ 중소기업 보유기술 및 개발능력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돼야
이날 세미나에서 심 교수는 현행 제안서 평가방식의 문제를 보완한 개선방안도 내놓았다. 먼저 해당 제품에 관한 보유기술 및 개발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평가항목을 조정하고 배점도 증가시키되, 대기업에 유리한 정량평가 부분은 적절한 수준에서 합격 여부만 가리도록 하는 평가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평가위원 선정도 중소기업에 대한 이해와 기술적 전문성을 고려하는 등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체계·협력업체 간 상생 협력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한 라미경 서원대 교수는 연구개발 주관업체로 중소기업을 우선 선정해 품목을 지정하는 ‘중소기업자 우선 선정 품목지정 제도’를 확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부품 단위 위주로 사업별 품목이 지정되는데,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보유한 품목은 완성품도 활발하게 지정되도록 해야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육성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방위산업 육성·발전 정책을 장기간 연구해온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무기체계 평가지표를 과도하게 재편하는 것은 업체 간 민원 발생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충분히 검토해 추진돼야 한다”면서 “우선 기술 역량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심사해 해당 기술 전문기업으로 지정한 후 그 기술과 직접 관련된 연구개발 사업에 주관기업으로 참여할 경우 가점(최대 5점)을 부여하는 제도 신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충분히 개발해 생산할 수 있는 완성품도 이왕이면 대기업이 공급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아직 완성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제는 중소기업이 완성품에 충분한 기술력을 보유했다면 그 사업에 필요한 능력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강소기업으로 발전되도록 뒷받침하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대기업이 현행 제안서 평가방식의 유리함을 이용해 전문중소기업이 육성될 수 있는 완성품 영역까지 무분별하게 잠식하지 않도록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제도적 보완과 세심한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