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 '조호바루' 한달살기 (5)] 동물원에서 "코뿔소 밥 먹이기"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1.27 05:15 ㅣ 수정 : 2024.01.27 08:37

싱가포르의 개방형 야생 동물원, 자연과 유사한 서식지에 300종 넘는 동물이 살고 있어
햄버거와 치킨을 곁들인 식사 중, 커다란 공작새 한 마리가 내 다리를 깃털로 간질여
아이들의 즐거운 경험=사육사가 조각내 바구니에 담아준 과일 조각을 코뿔소에게 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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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코뿔소 먹이주기 체험을 하고 있는 첫째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나는 어려서부터 동물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좀비가 숨어있을 것 같은 우중충한 건물들, 철조망에 가둬진 실험체와 같은 형체들은 유령처럼 출몰했다 금새 사라졌다. 퀴퀴한 냄새는 또 어떻고. 원숭이는 조현병 환자처럼 괴성을 지르며 날아다녔다. 과자를 내밀면 철망을 붙잡고 가까이 다가왔는데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읽혀지지 않았다.

 

이것이 내 어린 시절 대구 최초의 동물원이었던 달성공원의 기억이다. 다소 조숙한 어린이였던 나는 동물원 나들이가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즐거운 척을 연기했었고, 내 부모님은 휴일에도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이행했다는 만족감에 겨워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청소년 시절에 다녀온 용인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구경거리로 전락한 야생동물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동물원에 대한 반감만 들었다. 지금도 나는 동물원의 존재에 회의적이다.

 

2019년에 벳푸에 갔다가 아프리칸 사파리에 가게 되었는데 넓직한 고원에 방사되어 개체의 본성을 고려하여 길러지는 동물들을 보고는 이런 곳이라면 동물원이라도 그나마 괜찮겠구나 싶었던 기억이 있다.

 

무리지어 뛰어다니는 하이에나들과 우리집보다 깨끗한 우리에서 뒹굴거리던 사자. 유유히 산책하던 엄마 기린과 아기 기린. 아프리칸 사파리는 다음에 큐슈 지방에 가게 되면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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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종 2,800마리가 넘는 동물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 동문원. 펠리컨들이 날개를 치고 있다. / 사진=윤혜영

 

1973년 문을 연 싱가포르 동물원은 (Mandai야생동물 공원)은 개방형 야생 동물원으로 자연의 서식지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진 서식지에 300종 2,800마리가 넘는 동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2만보는 족히 걷게 생겼다.

 

Grab을 타고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열혈 K마더인 나는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에(본전을 뽑아야 함) 여행기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두루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MRT North shouth line을 타고 Khatib역에서 내린다. EXIT A로 나가서 왼편으로 돌면 동물원 셔틀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찾아가는 길을 잘 숙지하고 이번에는 헤매지 않았다. 인솔자로서의 뿌듯함이 느껴졌다.

 

셔틀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 사람들을 부지런히 쫒아가다 보니 싱가포르 동물원 입구가 보인다. 예약하지 않으면 매표소에서 긴 줄을 서야 된다고 해서 한국에서 미리 표를 예매해 두었다. 캡쳐본을 보여주고 입장권을 수령했다. 먹이주기 체험도 예약해두었는데 아이들은 벌써부터 코끼리와 코뿔소, 거북이에게 밥을 먹이겠다고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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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새 / 사진=윤혜영

 

동물원 내부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 것 같아 미리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입장하고 바로 KFC가 보여서 햄버거와 치킨을 곁들여 식사를 하였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는 자리가 없어 야외에 앉아 빵을 열심히 뜯어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내 다리를 깃털로 간질간질 하는 느낌이 들어 쳐다보니 맙소사, 내 다리 옆에 커다란 공작새가 한 마리 서 있었다. 신기한 마음이 들어 빵을 손바닥에 올려주니 받아먹었다. 애들은 ‘우와’를 연발하며 바로 햄버거를 내팽개치고 공작새를 따라다녔다.

 

이런게 바로 동물원이지! 시작부터 순조롭군. 기분이 좋아 한결 너그러워진 나는 공작새를 때리려는 둘째를 부드럽게 타이르며 산책로로 들어섰다.

 

생수를 두 병 사서 열대림이 양옆으로 우거진 길을 걷는다. 펠리컨들이 날개를 치는 오솔길을 지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접어들자 악어들이 선탠을 하고 있었다.

 

동물들을 보면 동심이 되는 것 같다.

 

정오 무렵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고 걷다가 지칠 즈음에 트램 정류장이 보여 냉큼 올랐다. 트램은 4곳의 정류장을 무한 순환하는데 지도를 보고 있다가 원하는 구역에 내리면 된다.

 

하마도 보고 하이에나도 보고 나무 위를 뽐내며 날아다니는 오랑우탄도 본다. 도중에 흰코뿔소 먹이주기를 했다. 사육사가 조각낸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서 건네준다. 아이가 코뿔소가 손을 먹을까봐 겁을 내니 사육사가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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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거북이에 먹이를 주고 있는 첫째. / 사진=윤혜영

 

자이언트 거북이는 너무 귀여웠다. 먹이바구니를 들고 있는 사람을 보고 거북이가 따박따박 기어 쫓아다녔다. 혓바닥을 낼름 내밀어 받아먹고는 또 주라고 머리를 들이민다.

 

연이어 1시 30분에 코끼리도 예약했었는데 길을 못 찾아 근방에서 헤매다가 시간을 지나쳐 버렸다. 나는 아이들의 책망을 피하려 코끼리가 낮잠을 자서 먹이주기가 갑자기 취소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이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원숭이를 보느라 잊어버렸다. 나가는 길에 기념품 샵이 보이니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기념품을 사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금방 실증을 내는 존재들이다. 아이 방 사물함에 머리가 뜯기고 옷이 벗겨져 방치된 수많은 인형들. 처음에는 빛나는 존재였건만 토사구팽 당한 수많은 장난감들을 생각하면 그간 투자한 돈이 떠올라 속이 쓰리다. 특히나 기념품샵은 합리적인 가격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나는 풍선처럼 기분이 들뜬 아이의 뒤를 바짝 붙어 쫓아다니며, “그건 메이드 인 차이나야. 싱가포르에서 만든게 아니야. 그런건 다이소에 가면 똑같은 거 열 개나 살 수 있어. 어제 무스타파에서 똑같은 거 봤어. 심지어 그게 더 퀄리티가 좋아.”를 계속해서 속삭였다.

 

결국 아이는 동물원 일러스트가 인쇄된 물컵 하나만 구매하여 나의 우려를 종식시켰다.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즐거움에 겨워 시간가는 걸 잊어버리다니. 이 얼마만인가.

 

더웠지만 자연 속에서 동물들을 실컷 보고 만지고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그랩을 호출했다. 무척 빠르고 편안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로는 바쿠테를 먹고 리버크루즈를 타러 가기로 했다. <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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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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