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4.06.19 05:00 ㅣ 수정 : 2024.06.19 10:00
최 회장-노 관장 항소심 결과에 SK임직원 '허탈감·불쾌감' 부글 이동통신사업, 최 선대회장이 10여년간 추진한 '공든 탑' SK, 이통사업 특혜 논란 불어지자 사업권 반납 '쓰라림' 겪어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에 검찰 조사...300억원 거론 되지 않아 지난 70년간 임직원 피땀으로 일궈낸 SK 위상, '6共 비호' 폄훼 심각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나비 아트센터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지난달 30일)이 난 지 20일이 지났다. 최태원 회장이 승리했던 1심과 달리 항소심은 노소영 관장의 손을 들어주며 판결을 뒤집었다. 특히 가사소송에서 다소 이례적인 재산분할과 위자료 규모도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을 포함한 SK그룹은 최근 항소심 판결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SK그룹은 그동안 말을 아껴온 'SK의 6공 특혜' 논란을 비롯해 '고(故) 최종현 회장 기여도 과소평가' 등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SK그룹은 최 회장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 노력의 결과물이다. 최 회장과 임직원들이 지난 71년간 젊음과 정열을 모두 바쳐 일궈낸 성과를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항소심으로 실추된 그들의 명예를 대법원에서 되찾기 위해 주력할 방침이다. <뉴스투데이>는 이번 항소심에서 불거진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기획 시리즈를 두 차례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나비 아트센터 관장의 항소심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사내 게시판 등은 판결에 대한 임직원의 허탈감과 불쾌감 등으로 가득 찼다.
항소심 재판부가 노 관장의 SK그룹 가치 증가와 경영활동 기여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70년간 이어진 SK 구성원들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노 관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에 6공화국(6공(共)) 당시 노태우 전(前) 대통령이 사돈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등에게 300억원대 비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노 관장 측은 약속어음과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출한 메모에는 ‘선경 300억’, ‘최 서방 32억’ 등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메모는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기재한 것으로 보고 노 전 대통령 비자금과 더불어 김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 약속어음이 최 선대회장에게 전달됐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를 노 관장의 SK기업가치 증가와 경영활동 기여도를 판단하는데 반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991년경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원고의 부친 최 선대회장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했다”며 “최 선대회장의 본래 개인 자금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유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태평양증권 인수 과정이나 SK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일종의 보호막·방패막 역할을 한 것”이라며 “그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의 유·무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SK그룹에 몸담아온 상당수 경영진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K가 한국이동통신 인수 과정에서 특혜 논란으로 사업권을 포기한 것은 이미 알려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업은 최 선대회장이 1980년대부터 10여년 간 추진해 온 ‘공든 탑’이다.
최 선대회장은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후 정보통신사업을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장기 경영목표로 낙점했다. 그는 이를 통해 ‘2000년대 세계 일류 정보통신기업’을 그룹의 새로운 비전으로 삼았다.
그리고 최 선대회장은 1984년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꾸려 미국이 지닌 정보통신 관련 정보기술을 습득했다.
또한 1989년 10월 미국 뉴저지 주(州)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를, 1990년 미국 IT(정보기술)업체 CSC사와 합작으로 '선경정보시스템'을, 1991년에는 '선경텔레콤(대한텔레콤)' 등을 설립하는 등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체신부는 제2 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선경그룹(현 SK그룹)도 사업자 경쟁에 참여했고 8388점이라는 최고점수를 얻어 사업권을 따냈다. 2위는 포항제철의 신세기이동통신(7496점), 3위는 코오롱(7099점)으로 1위와 큰 점수차를 보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당시 여당인 민자당 김영삼(YS) 대표를 중심으로 ‘현직 대통령 사돈기업에 사업권을 부여한 것은 특혜’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선경은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며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다음 정권인 YS 정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주도 하에 제2 이동통신 선정 재추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참여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는 막대한 인수 자금이 투입되지만 어떠한 특혜 논란도 남기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당시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약 8만원이었지만 민영화와 선경 참여 소식이 알려지며 30만원 가까이 상승했다. 그리고 선경은 당시 시가를 훨씬 뛰어넘는 주당 33만5000원에 한국이동통신 주식 23%를 인수했다.
이처럼 한국이동통신을 공개입찰을 통해 2배가 넘는 금액으로 인수했는데 이를 '6공 특혜'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게 SK그룹 입장이다.
또한 SK그룹은 300억원대 비자금과 관련해 관련 내용이 적힌 메모지 외에 구체적인 전달 방식과 사용처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 전 대통령은 일찍이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1995년 10월 19일 당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4000억원을 조성했다고 폭로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조사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최 선대회장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지만 드러난 사실은 없었다.
비자금 조사 당시 현재 논란이 된 메모지 속 300억원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고 어음 100억원 또한 이행 여부와 행방 등에 관한 명확한 후속 설명이 필요하다고 SK그룹은 주장한다.
최근 SK그룹 주요 경영진은 항소심 판결이 개인을 넘어 그룹 가치와 역사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판단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회의를 임시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경영진은 SK그룹이 마치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을 통해 성장한 것처럼 법원이 곡해했다며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논란 중심에 있는 SK텔레콤의 대표이사 유영상 사장은 “SK텔레콤 구성원으로 청춘을 회사에 바쳤으며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상용화하는 등 SK텔레콤 노력과 성과가 폄훼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이들 경영진은 SK그룹이 재계 2위로 안착하기까지 지난 수십년간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런데 회사가 6공 비호 아래 컸다는 취지의 항소심 판결은 자신들의 지난 노력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형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7일 열린 항소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번 소송은 개인 간 소송이기 때문에 그동안 회사 차원에서 개입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SK그룹이 비자금과 6공화국 비호 아래 성장했다고 왜곡했다”고 밝혔다.
이형희 위원장은 “이는 약 15만명의 회사 구성원과 수많은 투자자,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며 “SK는 6공 특혜로 성장한 기업이 절대로 아니며 해묵은 가짜 뉴스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하나하나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 통화에서 “만일 대법원 판결에서 6공 특혜 의혹에 관한 최 회장 측 주장이 받아 들여지면 재판 흐름 변화와 별개로 SK그룹 경영진과 임직원 간 결속력이 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는 향후 그룹 경영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