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오너 3·4세, 잇단 초고속 승진…경영 능력 시험대 올랐다
[뉴스투데이=남지유 기자] 유통업계 오너가(家) 3·4세들이 경영 전면에 본격 나서고 있다. 경기 침체와 글로벌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3·4세 경영인들이 젊은 리더십을 발휘해 경영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전무는 이번 정기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지난 2022년 롯데케미칼 상무, 지난해 롯데지주 전무로 승진한 데 이은 또 한번의 초고속 승진이다.
신 부사장은 올해 본격적으로 신사업과 글로벌사업을 진두지휘할 방침이다. 바이오CDMO 등 신사업의 성공적 안착과 핵심사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본격적으로 주도하면서 그룹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신 부사장의 승계 작업이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앞서 신 부사장은 지난 6월 롯데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롯데홀딩스는 제과회사 일본 롯데와 일본프로야구 치바 롯데 마린즈 등 일본 롯데 계열사의 지주회사이자 한일 롯데그룹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신 부사장은 올해 들어 책임 경영 차원에서 롯데지주 보유 주식도 늘려가고 있다. 지난 4일 롯데지주는 신 부사장이 주식 4620주를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앞서 신 부사장은 지난 6월과 9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롯데지주 주식을 사들인 바 있다. 이에 따라 신 부사장이 보유한 롯데지주 주식은 총 1만6416주, 지분율은 0.02%가 됐다.
특히 신 부사장은 병역 리스크를 해소하며 경영 승계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일본 국적의 신 부사장은 올해 38세를 넘겨 국내 병역법상 한국 국적을 회복하더라도 병역 의무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경영 보폭을 넓히기 위해선 한국 국적을 회복할 필요가 있기에 업계는 신 부사장이 한국 국적을 곧 취득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GS그룹은 지난 27일 오너 4세인 허서홍 부사장을 새로운 대표로 내정했다. 그동안 GS리테일을 총괄해온 허연수 부회장은 용퇴한다. 허 신임 대표는 GS그룹 허만정 창업주 증손자이자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이다.
1977년생인 허 부사장은 GS미래사업팀장을 수행하며 GS그룹의 신사업 투자 전략에 기반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왔다. 특히 ‘휴젤’ 인수합병(M&A)을 완수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올해부터는 GS리테일 경영전략SU(ServiceUnit)장으로 이동해 1년여 간 경영지원본부와 전략부문, 신사업부문, 대외협력부문 등의 조직을 한데 모아 관장하며 지속 성장을 위한 방향과 동력을 모색해 왔다.
허 신임 대표는 신선식품과 퀵커머스 강화를 비롯해 신성장 동력 확보로 GS리테일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허 신임대표는 매형·처남 관계인 홍정국 BGF리테일 부회장과 편의점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홍 부회장은 지난해 BGF 대표이사 부회장 겸 BGF리테일 부회장으로 승진한 바 있다. 현재 그룹 전반의 신성장 기반을 발굴하고 편의점CU의 해외진출 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재 편의점 시장은 GS리테일이 매출에서는 1등을 차지하고 있으나, 편의점 수 등 측면에서는 CU가 앞서고 있다. CU는 매출 격차도 2019년 9000억원 이상에서 지난해 1140억까지 크게 좁힌 상황이다. 또 올해 3분기 매출에서도 CU 영업이익은 824억으로 1위에 올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도 그룹 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부사장으로 승진한 김 부사장은 현재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과 한화로보틱스 전략기획담당, 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 등을 겸임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지난 8월 전략본부장에서 ‘미래비전총괄’이라는 직함을 새로 달았다. 단순 신사업을 넘어 회사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역할이다.
미국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를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성과를 인정받아 해당 직함을 새롭게 부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부사장의 주도로 지난해 6월 들여온 파이브가이즈는 국내 4개 점포가 글로벌 매출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순항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자사주를 매입해 책임 경영에 대한 의지도 확고히 나타내고 있다. 지난 9월 한화갤러리아 보통주 3400만 주를 주당 1600원에 공개 매수하는 등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여왔다.
최근엔 사내 복지를 강화하며 임직원들의 삶의 질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와 갤러리아는 내년 1월부터 ‘육아 동행 지원금’을 시행한다. 횟수에 상관없이 출산 때마다 1000만원, 쌍둥이의 경우 2000만 원을 지급한다.
이처럼 유통업계에서는 오너가 3·4세가 속속 그룹 내 중책을 도맡아 경영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이들은 최근 격변하고 있는 경영 환경 속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조직 분위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오너가의 초고속 승진에는 이에 걸맞는 경영 경험과 능력 검증이 선행돼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오너가 3·4세의 승진이 경영 능력이 검증돼서 이뤄졌는지, 아니면 그저 ‘로얄 패밀리’라서 됐는지 알 수 없다”며 “향후 이들이 어떤 업무를 맡았고, 성과를 냈는지 정확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러한 초고속 승진 인사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