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10.22 10:44 ㅣ 수정 : 2021.10.22 10:44
국군이 평양 점령 당시 안정화 작전중이던 군사경찰, 불의의 기습 받아 69명의 전사상자 발생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0월21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자등고개 북쪽 과거 헌병대대가 주둔하던 곳 위병소 앞자리에서 금화지구 희생 헌우(군사경찰 전우) 추도식이 열렸다.
코로나19의 위기속에서 개최된 이 추모식은 위난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자 불타는 충성심으로 군사경찰(헌병)의 투혼을 불사르며 장렬히 산화한지 71년이 되는 날이자, 당시 헌병감실과 생존 전우들이 위령비를 건립한지 25년이 되는 날이다.
행사는 대한민국헌병전우회(헌우회장 홍종설, 육사34기,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가 주관하여 치열한 전투 당시 생존자인 문기택, 박우제 및 유족 대표 김봉환(육사34기 예비역 준장), 최상배 등 관련자들이 진행했다.
또한 역대 헌우회장인 권영욱(육사28기)을 비롯하여 각지역 헌병전우회 및 산악회, 삼필회 그리고 3사단장 손식 소장(육사47기)과 국방부 및 육군의 군사경찰 지휘관 등 50여명이 참석하여 호국영령의 넋을 추모했다.
■ 국군장병, 그날의 희생정신과 교훈 되새기며 국가 안보 최전선에서 임무 수행
1950년 10월 1일 국군 1군단이 동해안에서 38선을 돌파했고, 유엔군은 10월 9일 서부지역에서 38선을 돌파하며 북진을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평양이었다. 이후 북한군이 결사적으로 평양을 방어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 선두 입성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국군 1사단은 11일 아침에야 고랑포 정면의 38선 진지를 돌파한 후 시변리(13일)-신계(14일)-수안(16일)-상원·율리(17일)-평양 동남쪽 지동리(18일)-대동강 동쪽 도달(19일 아침)까지 미 1기병사단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진격을 계속했다.
이때 국군 1사단장 백선엽 장군은 자신이 어릴 때 수영을 배웠던 대동강 동쪽 지역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미군의 도하공격 하루전인 19일 밤 도하장비 도착을 기다리던 미군을 제치고 국군 15연대가 대동강을 급속도하하여 본평양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한편, 국군이 평양을 점령하던 10월21일 6시30분경, 안정화 작전 수행을 위해 헌병사령부 제2대대 9중대는 철원군 금화읍 읍내리에서 치안경비와 포로후송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적의 기습을 받아 전사 18명, 실종 42명, 부상 9명의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전쟁중에 장렬히 산화하신 선배 헌병전우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길은 길고도 어려웠다.
결국 선배 헌병전우들이 금화지구에서 목숨을 바친 지 46년이 지난 1996년 10월21일에 이르러서야 당시 육군 헌병감실과 생존 전우, 헌병 7학병동지회를 비롯한 선후배 헌우 및 헌병병과 장병들의 정성이 모아져 추모의 위령비를 세울 수 있었다.
전몰 장소는 현 위령비 위치에서 20Km 이격된 민통선 북방이라 출입이 곤란하고 관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유족들의 참배와 관리가 용이한 당시의 3사단 헌병대 위병소 앞에 건립하게 되었다.
최근 백골부대인 3사단의 군사경찰 대대가 상부 계획에 의거 타 지역으로 이전했으나 현지 장병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위령비 관리와 행사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다시금 국군장병들이 이렇게 호국영령의 넋을 추모하며 숭고한 희생정신과 그날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고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임무를 다하는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