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13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어 비상(飛上)한다④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11.19 19:54 ㅣ 수정 : 2021.11.20 02:19

황당한 상황에 맥이 풀리며 혼돈이 밀려왔고 치욕스러움에 몸이 떨리며 오한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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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방사 시절 필자의 모습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때 존경했던 00과장는 충동적인 안하무인(眼下無人)식으로 약해보이는 주변 동료 과장들과 부하들을 철저히 불신하며 상급자 및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공손한 약육강식(弱肉强食)에 부합된 전형적인 갑질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과에서 언성을 높이며 복도가 시끄러워지자 인접 사무실의 한 선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조용히 밖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필자를 불러낸 그는 삼사출신으로 수방사에서 똑똑하기로 정평이 난 선배 장교였다. 그는 따라오라며 앞서갔고 옥상 외진 곳에 도착하니 담배를 한 대 꺼내주며 피우라며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코에 걸린 안경을 쓸어올리며 그는 자신도 처음 수방사에 전입왔을 때에 필자보다 더 심한 모욕을 당했다며 참고 견디며 시간이 흐르면 모두 극복할 수 있고 필자가 야전에서 인정받았던 것처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영화처럼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끝까지 한번 버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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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수방사에 근무하던 시절에 전무후무한 매진 기록을 세우며 대히트했고 1990년에 11회 청룡영화제 각본상도 받았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영화 기사 및 포스터 (사진=김희철)

 

■ 문제가 생겼을 때 본인이 빠져나갈 구실을 만든 것을 참고하라며 자랑

 

필자를 우두커니 곁에 세워놓은 채 00과장과 선임장교는 훈련 지침 보고서를 검토하며 다람쥐 채바퀴 돌듯 몇번의 수정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완료된 보고서는 필자가 최초 작성한 내용과 별로 차이 없는 계획으로 완성되었다.

 

특이한 것은 마지막 행정사항에 ‘기타, 예외 등을 명시’한 것이었는데, 과장은 예외 지침을 삽입하여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본인이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었고 실무자들이 앞으로 다른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참고하라며 자랑하듯 말했다.

 

또한 인접 참모부에 임무를 분담하여 협업하도록 발전시켰는데 이것 또한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보다는 유사시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교를 부린 결과였다. 

 

결국 훈련 계획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어 사령관 결재를 받고 시행되었다.

 

시행 결과 다행히도 방패 및 지상협동훈련의 모든 과정은 잘 끝났다. 계획과 훈련 통제도 중요했지만 현장에서 예하 사단 및 직할부대원들이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고 군관민 협조도 잘했던 결과였다.

 

군에서는 훈련이 끝나면 항상 종합 강평 및 성과분석 회의를 한다. 

 

필자는 훈련 전체를 총괄하는 실무자여서 사령부 참모부 요원들을 편성하여 당시 서울시의 572개 동대 전체를 대상으로 현역 및 예비군들의 지상협동훈련 현장을 확인 점검하도록 했으며 필자 또한 주야 불문하고 감독했다.

 

따라서 매일 각 부대의 훈련 상태 점검한 결과를 정확하게 종합했고, 종합 강평 및 성과분석 회의를 앞두고는 우수부대와 미흡부대를 선정해서 과장에게 보고를 했다.

 

그리고 성과분석회의시에 발표할 종합된 훈련 결과를 PPT로 작성했다. 물론 과장에게 보고를 했는데 그는 다른 생각에 바빴는지 별다른 트집 없이 통과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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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협동 및 방패 훈련 중에 작전에 투입하는 예비군 모습 (사진=연합뉴스)

 

■ 나를 힘들게 만들지 말고 무능하면 빨리 다른 부대로 떠나라..XX야!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방패 및 지상협동훈련이 끝났고, 그 결과에 따른 성과분석 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회의에서 사령관은 높은 훈련 성과를 얻었다며 치하했다. 회의장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 예하 부대 지휘관 및 참모들은 복귀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까지는 잘 마무리되었지만 사무실은 또 한번의 홍역을 치루었다. 훈련 실태를 확인하고 점검한 결과을 종합해 56사단이 양호한 결과가 나왔고 사전에 검토까지 받았는데, 사무실로 복귀한 00과장은 성과분석 회의시의 발표 내용을 때늦게 트집 잡으며 돌변하였다.

 

흥분한 00과장은 누가 점검을 한 것이냐며 필자를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본인이 판단할 때에는 56사단이 결코 잘한 것이 아닌데 누가 무슨 결탁을 하여 그 부대를 우수부대로 선정했냐고 질책했다.

 

황당한 괴변이었고 게다가 흥분한 채 충동적으로 내지르는 고함의 주 표적은 물론 필자였다. 필자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사전 검토할 때에는 통과시키더니 회의 끝나고 충동적으로 다시 힐책하는 것은 무슨 이유이냐고 따져 물었다. 

 

필자의 이의 제기에 화가 더 치솟은 과장은 “이곳에서 나를 힘들게 만들지 말고 무능하면 빨리 다른 부대로 떠나라..XX야..!”고 쌍욕을 하며 목소리를 높혔다. 

 

사무실 고함소리가 점점 커지자 선임장교가 과장실로 들어와 필자를 사무실 밖으로 잠깐 나가있으라 하고 과장에게 우수부대 선정과정을 설명하고 이미 회의는 종료되었다며 자중시켰다. 

 

저녁 퇴근 시간이 되자 전형적인 갑질을 하던 00과장은 나머지 문서들을 정리하는 필자를 쬐려 보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필자는 육군본부에 전출 상신이라도 해야되는 것이 아닌지 혼돈이 밀려왔고 치욕스러움에 몸이 떨리며 오한이 왔다.

 

황당한 상황에 맥이 풀려 있을 때 인접 동료가 조용히 말을 건네 왔다. 

 

“이번에 대령 진급 심사가 있는데 우수하다고 칭찬받은 부대의 참모가 경쟁 상대인 동기라서 짜증을 내는 것 같다”며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필자가 이해하며 참으라고 위로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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