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TA 제도 벤치마킹한 진정한 ‘신속획득’ 방식 추진해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현행 신속획득제도, 사업 종료 이후 소요 반영 추진하고 양산단계 다시경쟁해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곧 출범한다. 새로운 정부가 바꿔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겠지만 방위산업 분야에서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문제로 ‘획득제도’가 거론된다. 방종관 전 육군기획관리참모부장(예비역 소장)은 “소요제기부터 전력화까지 ‘구매’의 경우 30여개 단계를 거치며 5∼10년이 걸리고, ‘연구개발’은 70여개 단계를 거치면서 15∼20년까지 소요된다”고 말한다.
이를 개선하고자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2020년부터 신속시범획득제도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창의적 신기술이 적용된 민간 제품을 구매하여 군에서 시범 운용한 후 소요결정과 연결하여 후속(양산) 물량을 신속히 전력화하는 것이다. 연간 300억원 내외 예산으로 추진된 신속시범획득사업은 그동안 30개 과제가 선정됐고 현재까지 10개 과제가 사업이 종료됐다. 이 중 3개 과제가 소요결정이 이뤄졌으며, 양산업체는 선정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 제도의 실효성 여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벌써 ‘신개념기술시범사업(ACTD)’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이유는 최초 과제 선정 시 소요군의 참여가 미흡해 사업 종료 후 소요 반영이 쉽지 않은데다, 어렵게 반영해 소요결정이 되더라도 양산사업에서 다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시범 운용 제품 몇 개 파는 것 외에 별다른 이익이 없는 구조이다.
한편, 방사청은 올해 신속시범획득사업의 범위를 연구개발까지 확장한 ‘신속연구개발사업’도 도입했다. 3년 안에 시제품을 개발해 시범 운용을 거쳐 군 활용성이 확인되면 소요결정과 연결하여 전력화하는 것으로서, 예산도 신속시범획득사업보다 많은 460억원이 책정됐다. 이 사업에 대한 첫 설명회가 지난 1월 하순 열리자 많은 기업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신속연구개발사업도 신속시범획득사업과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 미국, 주요 무기체계 신속획득 대세…개발 성공 후 활용성 확인되면 수의계약
이와 관련,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미국의 신속획득제도를 연구했던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신속획득이 대세”라면서 “한국도 미국처럼 주요 무기체계 대부분을 신속획득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제 새로운 무기체계 개발은 거의 없고, 대부분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기존 무기체계의 성능개량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신속획득법령(OTA)에 기초하여 소요제기, 시제품 개발, 양산·전력화까지 5년 이내에 완료하는 ‘신속획득시스템(MTA, Middle Tier Acquisition)’을 신설했다. MTA는 혁신적 신기술을 사용해 시제품을 만드는 ‘신속시제품개발사업’과 검증된 기술로 최소한의 개발을 통해 신형 또는 성능개량 무기체계를 양산하는 ‘신속전력화사업’으로 구분되며, 개발에 성공하고 군 활용성이 확인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미 국방부는 신속획득사업을 추진할 조직으로 2015년 실리콘 밸리에 국방부 예하의 ‘국방혁신센터(DIU)’를 신설했고, 이후 오스틴, 보스톤, 워싱턴 D.C.로 확대했으며 올해 시카고에 5번째 DIU를 신설할 예정이다. 지난 6년(2016∼2021)간 DIU는 민간 기업으로부터 3424건의 제안서를 접수받아 279건의 신속시제품개발사업을 계약했고, 이 중 44건의 사업을 완료하면서 35건은 신속전력화사업으로 연계했다.
미 육군 또한 2018년 신속한 업무를 위해 획득 관련 조직들을 하나로 통합한 ‘육군미래사령부(AFC, Army Future Command)’를 신설하고 장거리 화력체계, 차세대 전투차량, 미래형 헬기 등 8개 분야에 5년간 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신속획득사업을 통해 5년만인 2023년까지 장거리 극초음속미사일을 포함한 35개 무기체계를 현대화해 전력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DIU와 협력을 위해 육·해·공군 및 우주군에 신속획득실도 만들었다.
■ MTA 제도처럼 신속획득 성과 확실히 거두려면 법령 제·개정 작업 필요
이런 미국의 흐름과 우리의 신속획득제도를 비교해 보면 크게 4가지 차이점이 나타난다. 첫째로 최초 과제 선정 시 소요 반영과 무관하게 사업이 진행되는데다, 둘째로 국가계약법을 일괄 적용해 경쟁을 거쳐 과제에 참여한 업체가 양산사업에서 또 다시 경쟁해야 한다. 셋째로 별도 조직 없이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 부설 방산기술지원센터가 업무를 수행하며, 넷째로 주요 무기체계 사업을 신속획득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발상은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현행 제도가 신속획득의 성과를 거두려면 사업 초기 단계부터 소요 반영을 추진해 사업 종료와 함께 소요결정이 이뤄져야 하며, 과제에 참여한 업체가 양산사업 단계에서 새로운 경쟁 없이 수의계약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사업 종료 이후 소요 반영이 추진돼 언제 소요결정이 이뤄질지 알 수 없다. 또 현행 법령상 수의계약도 어려워 과제 참여업체에 약간의 가산점을 주지만 경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방산 전문가들은 “사업 초기부터 각 군에서 적극 참여해 소요 반영이 가능한 과제들을 검토하고, 과제가 선정되면 곧바로 소요 반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의계약에 대해서도 “신속시범획득사업은 시범 운용을 거치면서 개조 개발할 부분이 나오면 이를 근거로 방법을 찾고, 신속연구개발사업은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고 군 활용성이 입증되면 방산물자로 지정하거나 연구개발확인서 발급 등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사업 초기부터 소요 반영 추진과 양산사업의 수의계약이 가능해지면 현행 제도도 상당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처럼 주요 무기체계 사업들이 ‘신속획득’ 방식으로 추진돼야 하며, 이렇게 획득업무가 달라지면 이를 위한 업무분장과 관련 조직도 적절히 구성돼야 한다. 결국 이런 내용을 모두 담아낸 법령 제·개정 작업이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