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수출 확대하려면 방산업체 대형화·전문화 추진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해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세계 6위권 수준까지 진입했으나 현재 방위산업 구조로는 한계 많아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지난해 방산수출 실적(계약기준)이 역대 최고 수준인 70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올해 수출 목표를 150억 달러로 야심차게 설정했다. 천궁Ⅱ의 UAE 수출과 K9 자주포의 이집트 수출 성사를 발판삼아 호주의 레드백 장갑차(5조원), 노르웨이·폴란드·오만·이집트의 K2전차(10∼13조원), 말레이시아의 FA-50 경공격기(1조원) 등을 적극 수주해 보겠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방위산업의 수출산업화 정책이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방산수출 Big 4’ 진입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2020년 기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방산수출 순위에서 한국은 시장점유율 3.6%로 미국(41%), 러시아(14%), 프랑스(8.7%), 독일(5.4%), 스페인(5.3%)에 이어 세계 6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출 실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향상시키려면 현재의 방위산업 구조로는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방산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방산업체 대형화·전문화를 병행 추진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우선적으로 “과거 방사청 개청과 함께 폐지된 ‘전문화·계열화 제도’ 수준의 체계적인 방위산업관리제도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다수의 업체가 어떤 품목이든 개발·생산할 수 있지만 민수와 호환성이 적고 대규모의 설비 투자가 필요하거나 국가적 차원에서 기술·설비 등의 중복투자 발생 가능성이 높은 일부 분야는 물자와 생산업체를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하여 연구개발과 기술도입생산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계약 및 원가인정 특례 등 정부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 수준의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 필요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 후 이와 같은 보완책도 없이 방위산업에 자유경쟁 체제가 도입됨에 따라 업체 간 과당 경쟁, 중복 투자, 개발기술 사장 등 다양한 부작용이 빈발하고 있다. 지금처럼 탐색개발 업체가 체계개발 사업 입찰에서 탈락하고, 체계개발 업체가 초도양산 사업에서 탈락해 배제되면 투자 및 기술개발 동기나 유인이 사라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장보고-Ⅲ(3천톤급 잠수함) 사업’의 경우 대우중공업과 현대중공업 사례와 KF-21용 AESA레이더 사업의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 사례를 들 수 있다. 결국 수주에 성공하지 못한 기업은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과거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 수준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방산업계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한편, 정부재정 대비 국방비 규모가 2000년 16.3%에서 2021년 13.9%로 지속 감소하는 추세인데다 팬더믹 상황 등 국가적 재난으로 인한 긴급예산 지출이 증가해 신규 방위력개선사업 반영 비율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국내 방산소요도 점차 감소하고 있어 방산업체가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발전해나가려면 방산수출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방산수출을 확대하려면 앞서 언급한 체계적인 방위산업관리제도 복원과 함께 방산업체를 대형화·전문화하는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현재 AESA레이더를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이 각자 개발하고 있는데, 레이더 전문업체를 별도 지정하거나 기술별로 달리 육성하면 과당 경쟁을 막고 글로벌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 이스라엘·미국 등 벤치마킹해 자율적 추진하되 정부 적극 지원해야
이와 관련, 방사청 계약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송학 댑컨설팅코리아 대표는 “이스라엘은 IAI, Rafael, Elbit System 등 3개 방산업체로 대형화하고 600개 협력업체를 전문화·계열화했다”면서 “방산제품의 75%를 수출해 국가 전체 수출액의 14%를 방산제품이 차지하는 이스라엘의 방위산업 구조가 우리가 향후 추구해 나가야 할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도 1990년대 ‘Bottom-up Review’라는 대대적인 국방획득체계 검토 작업을 통해 정비창·보급창 통폐합 등 획득구조 개혁과 함께 무기체계 분야별 대형화·전문화 작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전술미사일은 13개 업체를 3개(Raytheon, Lockheed Martin 등)로, 고정익항공기는 8개 업체를 3개(Boeing, Lockheed Martin 등)로, 함정조선소는 8개 업체를 2개(General Dynamics 등)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미 대형화·전문화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1999년 IMF 시기에 적자업체인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을 통폐합하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설립했고, 2016년 한화테크윈이 두산DST를 인수합병(현 한화디펜스) 후 집중 투자 및 첨단 연구개발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K9 자주포 수출 성공과 호주 육군의 장갑차 사업에서 독일업체(Rheinmetall)와 당당히 경쟁하게 됐다.
방산업체 대형화·통합화를 주장해온 최기일 상지대 교수 또한 “지속 가능한 방산 생태계 육성을 위해 업체 간 인수합병은 물론 국내업체가 해외업체를 인수하는 ‘Out Bound’ 형태의 기업결합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 통제보다는 기업 자율에 맡겨 진행하되, 정부는 이 과정에서 각종 규제와 제약을 철폐하는 적극적 지원 또는 조력자 역할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투자와 기술개발에 적극적인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과 함께 국내 방산업체들의 대형화·전문화를 추진해야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방산수출이 확대될 수 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출범할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러한 방산 전문가들의 의견과 업계 분위기에 귀 기울여 의미 있는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진정으로 방산수출을 주도하는 바람직한 정부의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